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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의 한계를 넘어 협력사회로 가기 위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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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의 한계를 넘어 협력사회로 가기 위한 모색

[프레시안 books] 문성훈의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7년 11월, 한국이 사실상의 국가부도를 인정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한국 사회는 시장의 원리에 입각한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주도하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경쟁의 원리가 도입되었으며, ‘경쟁력을 확보하라’ 혹은 ‘실적을 내라’는 강한 압력이 사회 전반을 지속적으로 짓누르게 되었다.

고전적인 형태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의 신자유주의 사상가들에 따르면 시장은 최대한의 효율성을 산출하는 자생적 질서이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자유 경쟁에 입각한 시장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번영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들이닥치면서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 특히 비정규직들의 고통이 울분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분출되었으나 어쩔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라는 식의 논리로 적당히 무마되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끊임 없는 극한의 경쟁이 일상이 된 사회, 신자유주의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철저하게 구현되어 있는 사회이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가 약속한 바와 달리 한국 사회는 번영과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경쟁의 공정성을 훼손할 정도로 벌어진 사회적·경제적 격차에 대한 불만, 끝없는 경쟁으로 인한 피로와 사회 갈등, 그리고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절망과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의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문성훈 지음, 사월의 책 펴냄)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시의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만 하다. 이 책의 목표는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가 오늘날 한국이 추구해야 할 대안적인 정치 이념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의 실질적 자유 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이지만, 인간의 사회성에 기초하여 경쟁 사회를 협력 사회로 재구성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자유주의들과는 차별화되는 ‘사회적’ 자유주의이다. 이러한 자유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는 나의 자유 실현이 타인의 자유 실현에 방해가 되고 그 반대도 성립하는 자유, 타인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사회 밖에서도 실현 가능한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만 실현 가능한 자유, 즉 나의 자유 실현이 타인의 자유 실현에 기여하고 그 반대도 성립하는 사회적 자유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자유주의 앞에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이전에 토마스 힐 그린이나 레너드 홉하우스 등의 사상가들이 개인이 사회적 존재임을 강조하는 형태의 자유주의를 제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적’ 사회적 자유주의는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개념적 통찰에 이르지도 못했고, 그에 기초하여 경쟁 관계를 협력 관계로 재구성할 것을 주장하는 단계로 나아가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 책은 한국 민주주의의 정체성에 대한 진단에 기초하여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의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상당한 분량의 ‘예비적 고찰’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한국의 사회철학자로서 저자가 갖는 자부심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철학하는 우리도 마땅히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고유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에 대한 해결책을 철학적으로 스스로 모색하고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전통 또한 이제는 서구와 비교해도 못할 것이 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도 엿보인다. 자유주의와 관련되어 있는 정치·사회철학의 전통은 서구에 들어온 것이므로 이러한 저술들에서는 서양철학자의 이론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 앞세우고 후반부에 가서야 비로소 한국 사회의 문제들에 그러한 이론을 ‘적용’하는 식의 구성을 택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에서 저자가 그러한 구성을 뒤집은 배경에는 이러한 생각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새로운 ‘사회적 자유’ 개념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 3세대인 악셀 호네트(A. Honneth)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호네트의 개념을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간략하게 다루고 있을뿐 그의 논의에 거의 의존하지 않으며, 책의 대부분의 내용을 자신의 문제 의식에 입각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체적인 철학적 탐구의 방식은 한국에서 철학하는 모든 사람들이 배우고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본문의 1-5장까지는 홉스, 로크 등의 고전적 자유주의, 그리고 그린, 홉하우스 등의 고전적 사회적 자유주의를 다루고 있으며, 6장에서 하버마스, 호네트 등의 독일 사회철학의 전통에 기초하여 사회적 자유를 제시하고 7-9장에서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의 구성요소들을 제시하는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중 경쟁 사회에서 협력 사회로의 전환과 연관되는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6-9장이다.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시장의 원리에 입각한 경쟁 패러다임이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한계에 직면하였고, 경쟁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좀 더 탈경쟁적이고 탈시장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그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해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라는 정치 이념에 기초하여 하나의 철학적인 답변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점에서 그 자체로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서 이루어진 작업만으로는 그러한 답변이 완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경쟁 사회에서 협력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이론적 토대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경쟁을 기본 원리로 하는 자유주의의 도입은 경쟁이 심화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쟁을 불가피하게 하는 사회의 구성 방식이다. 협력을 기본 원리로 하는 사회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사회의 구성 방식이 제시되어야 실현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논의가 아직 충분하게 제시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존 롤스로부터 시작하는 현대의 정치적 자유주의 전통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8장에서 관련 논의를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자유만이 아니라 평등 또한 강조하는 현대 자유주의의 흐름이 그 중요성에 비해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 아쉬움을 낳는다. 굵직굵직한 저서의 형태로 자신의 연구 성과들을 지속적으로 출간해온 저자의 연구 경력을 고려할 때, 이러한 아쉬움들은 저자의 후속 연구를 담고 있게 될 또 다른 저서에 의해 곧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 (문성훈 지음, 사월의책 펴냄) ⓒ사월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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