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사과 입장문을 발표하며 '쇄신 갈등'은 마무리됐지만, 그가 지적한 민주당의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그가 제기한 의제들 가운데 '86세대 퇴진', '성 비위 엄정 대응' 등 비교적 오래 전부터 제기된 정치개혁 과제들 외에 '팬덤 정치와의 결별'이라는 표현이 특히 정치권에서 많이 회자됐다.
다른 의제들에 비해 '팬덤 정치' 비판이 더 눈길을 끈 이유는, 박 위원장이 민주당에 합류한 배경과 닿아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박 위원장을 발탁해 선대위에 합류시킨 이는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인데,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은 '개딸 아빠'인 이 후보 역시 비켜갈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선 후 당의 비대위원장이 된 박 위원장은 종종 '전임자'들 중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와 비교·대조되기도 한다. 5선 국회의원,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한 80대 남성 정치원로와, 독립언론인 출신의 20대 여성 청년이라는 배경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기존 민주화운동 세대 중심의 민주당 주류 세력과 대비되는 이질적 인자라는 점, 그로 인해 당 주류의 반발을 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다. 김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21년 1월 SNS에 쓴 글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은 오직 그것만 시청하면서 환호하고, 이러한 극성 '팬덤'의 지지를 기반으로 자라난 정치인들은 자질과 함량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동을 거듭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잡을 때 만주주의는 무너진다"는 미국 정치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서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박수치고 불리하면 법관을 탄핵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신들의 부정·비리를 덮으려고 검찰을 겁박한 행위를 '권력기관 개혁'이란 엉뚱한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한국 정치의 현실을 비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극단의 정치는 세상이 변해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믿고 싶다"며 "정치는 건전한 합리적 중도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 국민 모두를 위한 정치가 될 수 있다"고 했었다.
이는 "폭력적 팬덤정치와 결별해야 한다. 일부지만 팬덤정치가 우리 당원을 과잉 대표하고 있고, 이들을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그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고 당의 선택지를 좁게 만들고 있다"는 박 위원장의 27일자 SNS 글과 거의 같은 맥락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24일부터 사흘간 대국민 호소문, SNS 입장문,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팬덤 정치'를 민주당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그는 "우리는 팬덤 정치와 결별하고 대중정치를 해야 한다"며 "생각이 다르면 문자로 욕설을 날리거나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정당이 팬덤 정당"이라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며 "진정한 지도자는 소수 팬덤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 대중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썼던 글과 비교해 보면 한 사람이 썼다고 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한편 김종인·박지현 두 전현직 비대위원장의 차이점이라면, 물론 쌓아온 경륜의 높이가 다르다는 기본적인 차이 외에, 김 전 대표에 대한 반발은 주로 익명으로, 뒷소문으로 흘러나온 반면, 박 위원장에 대한 반발은 공개적으로, 그의 면전에서 터져나온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박 위원장에 대한 옹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박용진 의원은 최근 SNS에 "이해찬, 송영길, 이재명도 했던 사과를 박지현이 했다고 갈등이 생긴다면 사과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20대 여성이기에 무시당한다고 국민들이 느끼실까 매우 우려스럽다"고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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