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새로운 대통령 취임식은 국가간의 외교관계를 보여 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 간 새로운 패권경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에 파견된 양국의 외교사절단이 대비된다.
중국은 국가 부주석 왕치산(王岐山), 미국은 부통령 남편인 더글러스 엠호프를 각각 파견했다. 홍콩 언론에서 언급한 대로 왕치산 부주석이 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한중관계의 중요성에 보다 무게를 둔 것이 확실히 보인다. 반면, 미국은 곧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이 연이어 계획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파견이다. 더욱이 중국과의 2라운드 패권 경쟁을 앞두고 한국의 도움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에서 과연 적절한 조치였는지 의문이다.
끝이 보이는 중미 관세전쟁
2018년 중국과 미국간 관세전쟁이 본격화된 이래 5년이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었고, 코로나 19로 양국간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를 유지하는 듯 보였다. 바이든 정부의 시작으로 새로운 대중국 압박 정책이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국의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이는 미국 국내외 상황이 중국과 본격적 경쟁에 돌입하기에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미국의 경제 상황은 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에 더해 고공행진 중인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갱신하면서 바이든 정부는 최대 국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국과의 관세전쟁으로 부과된 대중국 관세를 인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커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 3월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TV 부품, 해산물, 화학제품 등 352개 품목에 대해서 관세 예외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무역대표부(USTR) 발표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가 2018년부터 2019년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부과한 대중국 관세는 2022년 7월부터 차례로 만료를 앞두고 있어 이를 연장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검토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힌바 있다.
물론 대중국 관세부과 조치를 푼다고 해서 미국의 국내 상황을 변화시키는 근본적 해결방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대중국 고율관세 부과만 없애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1.3% 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트럼프 정부의 고율관세 정책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기대하는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지도 못했다. 이에 따라 만료를 앞두고 있는 고율관세를 다시 연장할 이렇다 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특히나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압박정책은 관세폭탄이 핵심이 아닌 만큼 관세를 매개로한 양국 간의 전쟁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중미 전쟁 2라운드의 서막,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그렇다면 그다음 미국의 전략은 무엇일까? 기대했던 것만큼은 획기적이진 않지만, 성공확률이 높은 전통적 방법인 '동맹강화'를 통해 공동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패권의 지위에 오른 후, 패권을 둘러싼 소위 방어전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자면 바로 동맹을 통한 '공동방어'였다. 2012년 즈음하여 미국은 중국을 새로운 패권 도전국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이후 꺼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이 중국을 압박할 핵심 카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 정부로 무산되었다.
5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백악관을 비롯하여 미국의 주요 기관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외 언론매체에서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가 핫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애초 설계하고 지금은 빠져있어 명칭이 바뀐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무엇이 다른가 하겠지만, 미국이 있고 없고가 이미 큰 차이다.
또한 눈에 띄는 가장 큰 차이는 국가 간 경제협력의 형태이다. 지금까지는 WTO를 중심으로 국가간 경제협력의 핵심은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없애고 무역자유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IPEF는 무역자유화 대신 '공급망 협력'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에 따라 IPEF 협정국간에는 강력하고 안전한 공급망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 비협정국에 대해서는 공급망 고립을 통해 경제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효과를 창출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공급망에 배제되는 국가는 중국이 거의 확실하다. 이와 더불어 높은 수준의 노동과 환경 기준이 적용된 무역의 발전을 위한 협력, 디지털 경제와 국제 데이터의 유통 관리 협력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다음으로 IPEF에 '인도'라는 국가 명칭이 포함된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TPP나 CPTPP가 태평양에 중점을 두었다면, IPEF는 좀 더 아시아로 치중된 모습이다. 그 범위가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확대된 모습이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즉, 인도, 스리랑카를 거쳐 아프리카, 유럽으로 향하는 해양실크로드(一路)를 견제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은 '인도'를 중국의 공급망 차단을 위한 지지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IPEF를 통해 중국을 고립시킬 공급망 동맹을 만들어 세계 유일의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IPEF 공급망의 핵심은 한국 반도체
IPEF를 통한 미국의 연합작전이 과연 과거에 미국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공급망 구축의 핵심은 미국의 경제적 번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다. 이는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의 대통령이 먼저 방한한 것도 처음인데 일본보다 한국을 우선 방문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국에 와서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겠다고 한 것이다.
자고로 외교의 묘미는 밀고 당김에 있는데,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너무 직진이다. 현재 미국이 얼마나 다급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반도체 최대 수출국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반도체의 수급이 막힐 경우, 중국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4차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에도 차질이 생길 것은 자명해 보인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과의 방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한국의 반도체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2라운드의 포문을 여는 한국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당장 5월 20일에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미국에게 어떤 요구를 할지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지만, 반도체를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회피할 수 있는 카드를 미국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의 선택으로 발생하게 되는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 경제적 보복조치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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