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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너무 빨리, 영문도 모른 채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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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너무 빨리, 영문도 모른 채 어른이 된다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 16화. 천천히 자라도 괜찮아

"14살이 되면 생리가 시작되는데, 임맥이 통하고 태충맥이 충실해져서 월경이 때에 맞춰 나오므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

二七而天癸至 任脈通 太衝脈盛 月事以時下 故有子." -동의보감 내경편 권1 신형身形 중에서

자려고 제 방에 들어간 아이가 뜬금없이 책을 읽어달라 한다. 더 어릴 적에는 책도 읽어주고 즉석에서 이야기도 지어서 들려주다가 "오늘은 여기까지" 하며 야유를 뒤로 하고 재우곤 했는데, 참 오랜만이다.

작년 겨울에 읽어주다 만 민담집을 꺼냈다. 강원도 산골에서 가난하게 자란 소년이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판수를 구해 준 인연으로 위기를 넘기고 성공했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그랬었나? 라는 의문이 드는 구절이 눈에 띈다.

"그때 조정에는 김 정승과 이 정승이 있었다. 두 정승 모두 혼기를 넘긴 딸이 있어 사윗감을 찾고 있던 차에 장원 급제한 한영이를 사위로 점찍었다. 이 정승 김정승이 차례로 나서서 한영이를 사위로 맞으려 하니 서로 조금도 양보가 없었다, 결국은 임금이 결정을 하게 되었다."

"듣자니 이 정승 딸은 열여섯이고 김 정승 딸은 열일곱이라지? 한 살이라도 더 먹은 김 정승 딸과 맺어 주는 게 좋겠소."

- 세계민담전집(한국 편)/ 신동흔 엮음 / 황금가지 p195

요즘 같으면 미성년인 열여섯·열일곱이 혼기를 넘겼다니! 궁금해서 좀 더 자료를 찾아본다.

"1427년(세종 9년) 9월 17일조에 의하면, 예조에서 '혼인의 연한을 정하지 않은 까닭에 세간에서 혼인을 서둘지 않아 시기를 잃게까지 된다. 이는 다만 음양(陰陽)의 화합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혹은 남에게 몸을 더럽히게까지 되어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여성들은 나이 14세에서 20세 안에 혼인하도록 하고, 이유 없이 이 기한 내에 혼인하지 않으면 혼주(婚主)를 처벌하자'고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저 나이에 결혼하지 않으면 부모가 처벌받는다니. 이것은 국민의 수가 국력과 직결되던 시대의 출산장려정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 국왕의 평균 사망 나이는 46.1세고, 서민들의 평균수명은 35세 내외였다고 한다. 지금보다 높았던 유아사망률까지 생각하면 앞선 이야기들이 조금 이해가 된다.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대여명은 2020년 기준 83.5세다.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평균 2배가 넘게 살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초혼 연령은 여성의 경우 30세가 넘는다. 다양한 변화가 영향을 주었겠지만, 숫자만 보면 수명이 2배가 된 만큼 늦어졌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 역행하는 것이 있다. 바로 초경 연령이다. 최근에는 12.6세 정도로 점점 빨라지고 있고, 그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생리를 시작하는 성조숙증도 문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를 꼽는다. 환경호르몬과 같은 화학물질과 과도한 열량섭취와 운동 부족 등으로 인한 비만이 내분비계에 영향을 주어 사춘기가 빨라지고 성조숙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생리가 시작되면 키 성장이 덜 된다는 과학과 큰 키에 대한 환상이 더해져 빠른 생리와 성조숙증은 갱년기와 함께 또 하나의 의료시장이 되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물질적인 요인들 외에도 나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정보와 자극에 노출되는 것이 초경 연령을 앞당긴다고 생각한다. 몸의 변화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뇌가 '아, 나는 이제 많이 컸구나'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서 노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어른처럼 고민하고 공부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더 빨리 더 많이 공부하고 익히는 것이 권장되고, 각종 자극적인 정보들과 게임은 애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어른들의 성공 신화와 경쟁 기준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의 뇌가 자신을 어른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상한 세상에서 걱정되는 것은 빠른 생리와 덜 자라는 키가 아니라, 준비도 안 되고 영문도 모른 채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마음과 행복이 아닐까.

이야기를 다 들은 아이는 "그 판수 참 대단한데~" 라는 말을 하고는 좀 있다 이내 잠이 들었다. 잠든 얼굴을 보면서 '나는 아이에게 좋은 어른일까...' 생각해 보니 스스로 조금 부끄러워진다. 아이들이 저마다 개성 넘치는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이 아닐까 생각하는 밤이다.

ⓒ고은정

그녀들을 위한 레시피 : 딸기국수

초등학교 6학년에 나는 전교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였다. 키가 크다 보니 언제 어디서나 가장 뒷줄에 서야 했고, 뭐든 스스로 챙기고 알아서 잘해야 하는 고단한 6학년의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사실은 키만 컸었는데, 그해 여름에 갑자기 초경이 왔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없어 죽을병에 걸린 줄 알고 혼자 전전긍긍하는 키 큰 6학년이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께나 학교에서나 배운 바 하나 없어 도무지 알 수 없는 내 몸의 상황에 정말로 당황했었던 기억이 초경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그때는 지금과 달라서 아이들이, 특히나 여자아이들이 자신의 신체 변화에 대해 배울 기회 자체가 아예 없던 시대였다. 그래서 너무 무서운데 극심한 통증까지 동반하고 매월 찾아오는 손님을 좋아할 수가 없는 나이였다.

초경 이후 생리할 때마다, 통증을 느낄 때마다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늘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거나 온찜질을 하고는 했었다. 진통제도 먹었고 통증을 이길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어 했다. 매달 그렇게 시달리는 사오일 정도의 시간이 참으로 지옥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이었는데, 주변의 어른들은 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니 알아서 하라고 나 몰라라 하는 느낌이었다. 달달한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들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혼자 견뎌야 했고 혼자 알아가야 했다.

그런 시절을 다 보내고, 결혼을 하였고, 아이를 낳고, 세월이 흘러 폐경이 된 지도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아프게 기억되는 그때의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본다. 끝물의 단 향이 코를 찌르는 딸기를 한 바구니 갈고 호로록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면을 삶는다. 그리고 최대한 예쁘게 담아서 그때의 나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러본다. 그랬더니 글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향해 활짝 웃어준다.

<재료>

소면 4인분, 봄나물 약간

딸기소스 : 딸기 400g, 오미자청 4큰술, 레몬즙 2큰술, 간장 1큰술

<만드는 법>

1. 불에 소면 삶을 물을 올린다. 2. 토핑용 봄나물을 준비한다.

3. 딸기소스의 재료를 모두 같이 넣고 갈아서 소스를 만든다.

4.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궈 건진다.

①국수를 삶을 때는 물을 넉넉히 잡고 삶아야 면이 엉겨 붙거나 불지 않는다.

②물이 펄펄 끓을 때 국수를 넓게 펴서 넣고 삶는다.

③국수를 넣고 다시 물이 끓어오르면 찬물을 반 컵 정도 넣고 다시 끓이기를

2~3번 반복하면서 삶는다.

④찬물을 미리 넉넉히 받아두었다가 헹궈야 쫄깃하게 먹을 수 있다.

5. 봄나물을 간장과 들기름으로 무쳐 놓는다.

6. 국수에 딸기소스를 넣고 비벼 그릇에 담은 후 준비한 봄나물을 얹어서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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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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