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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감정에 휘둘릴 때는 뜨끈한 된장찌개에 밥 한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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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감정에 휘둘릴 때는 뜨끈한 된장찌개에 밥 한 술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 15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의意는 기억해서 잊지 않는 것이고, 지志는 오직 한 곳에만 뜻을 기울여 변하지 않는 것이다.

意者, 記而不忘者也. 志者, 專意而不移者也." - 동의보감 내경편 권1 신神 중에서 -

"이제 많이 편해졌어요. 잠도 좀 더 자고, 가슴 답답하고 어지러운 것도 좋아졌어요. 그런데 아직 작은 일에도 쉽게 불안해져요."

"오랜 긴장으로 인해 소통이 안 되던 것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몸과 감정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이 아직 회복이 안 되어서 그래요. 지금처럼 운동 꾸준히 해서 체력을 키우고, 치료의 방향도 그쪽으로 잡아갈게요."

풀어내지 못한 감정의 문제들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자주 본다. 몸에 나타난 다양한 증상으로 내원하지만, 천천히 병의 이유를 찾아가다 보면 절반 이상이 심리적 이유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회복탄력성이 좋을 때는 이것을 무시하고 증상만 없애면 낫지만, 병이 오래되었거나 감정의 상처가 큰 경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

한의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일곱 가지 패턴(기쁨·화남·걱정·고민·슬픔·놀람·두려움)으로 구분하고 칠정七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각각의 감정에 따라 기氣의 흐름이 변하고 몸이 반응한다고 본다. 한의학에서 감정 때문에 생긴 병을 치료할 때는 바로 이 기의 흐름을 바로 잡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기의 소통이 잘 이루어져서 본래 가야할 방향으로 잘 흘러가면 불편한 증상이 사라지고 감정의 문제에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을 중심으로 상담을 통해 생각의 변화를 끌어내고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워서 앞으로의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맷집을 키우도록 한다.

한의학이 기를 중심으로 본다면, 정신분석학이나 종교는 정신의 변화를 관찰하고, 대증의학은 감정의 변화가 가져온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약물로 조정하는 방식을 쓴다. 같은 감정의 문제라도 정신과 물질이라는 서로 다른 문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감정의 문제로 시달렸던 환자들은 드러난 증상을 풀어주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공황장애다.

'공황'은 한자로 '恐慌'이라고 적는데 사전적으로는 '놀랍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감정에서 시작된 불길이 잡히지 않고 정신과 몸까지 번 아웃시킨 상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대증약으로 급한 불을 끈다고 해도 온전히 해결되지 않곤 한다. 이럴 때는 풀어내서 소통시켜 준 후에 버티는 힘을 키워야 한다.

동의보감에서 '오직 한 곳에만 뜻을 기울여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한 '지志'는 글자를 풀면 '士 + 心'로, 나는 이 글자를 선비의 마음이라고 푼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굽히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 공황장애처럼 몸과 마음의 근간根幹이 흔들린 환자는 이 힘을 키워야 다시 세상을 자신 있게 마주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말의 뱃심과 배짱과도 통하는 말로, 이 힘이 있어야 배포가 두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세상의 겉모습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너무 많은 정보(알고 보면 별 의미도 없는)가 쉴 새 없이 쏟아지다 보니, 그것을 소화해 기억하고(의意),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뿌리 내리는(지志)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뿌리가 약하니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때론 송두리째 나를 잃기도 한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도 않지만, 일을 끝까지 해낼 정도의 의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세상의 바람에 자꾸만 내 몸과 감정과 정신이 흔들린다면, 피하고 웅크리고 바람을 탓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때론 '이놈의 세상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결기와 오기도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몸과 마음의 뿌리를 키우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고은정

된장찌개

나는 매일매일 세상과 만난다. 그 만남에서 늘 웃게 되거나 늘 즐거울 수는 없다. 때로 화가 치밀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에 젖어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세상과의 소통에서 실패하고 탄식을 하기도 한다. 기쁨에 차 개선장군처럼 귀가를 하기도 하지만 고개를 떨구고 집으로 기어드는 날도 있다. 분노에 차서 가족 누군가 내 분노의 이유에 무조건 동조해주기를 기대하고 현관문을 열기도 한다. 정말로 기가 막히는 경험으로 부들부들 떨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엔 어머니가 세상 밖에서 힘들게 부대끼며 생긴 널뛰는 내 감정을 모두 다 받아내고 응원을 해주셨다. 하지만 이 나이에도 어린 시절 그때처럼 어머니께 징징거릴 수는 없다.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고 역류하는 물처럼 감정이 꼬이는 날엔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한다. 냉장고를 뒤져 있는 재료들로 어설프게라도 된장찌개를 끓인다. 허겁지겁 밥을 떠넣는다. 그러면 연락 없이 찾아오는 손님처럼 나를 당황하게 했던 팽팽한 긴장과 불편했던 감정의 거대한 파도가 잠을 자는 평화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세상과의 소통,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가 내 안의 기의 불통으로 인해 쳐들어올 때마다 일단 된장찌개를 끓이고 본다. 다른 반찬 없이도 밥상 앞에 앉아 한 숟가락 입에 떠넣는 순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리칠 수 있다.

"까짓 폭풍우 따위 다 죽었어, 이놈의 세상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나에게 된장찌개는 그런 것이다.

<재료>

호박 1/2개, 두부 1/2모, 감자 1개(150g), 풋고추 1개, 홍고추 1개,

양파 1/2개, 깻잎 5~6장, 대파 1/2뿌리, 된장 3~4큰술, 고춧가루 1큰술

멸치육수 6컵

<만드는 법>

1. 호박은 큼직하게 썬다.

2. 감자와 양파는 껍질을 벗기고 호박과 같은 크기로 썬다.

3. 두부는 한 번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호박과 같은 크기로 썬다.

4. 대파는 다른 채소와 비슷하게 썬다.

5. 풋고추와 홍고추는 어슷하게 썰고 깻잎은 뚝뚝 자른다.

6. 멸치육수를 냄비에 넣고 끓이면서 된장을 푼다.

7. 된장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양파와 감자를 넣고 끓인다.

8. 호박과 두부를 넣고 감자와 호박이 무르게 익게 끓인다.

8. 마지막으로 고춧가루를 넣고 썰어놓은 대파와 깻잎, 고추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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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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