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이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예정됐던 출국 계획을 보류했다. 국회에서 진행 중인 '검수완박' 법안 논의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되는 가운데, 법안 상정권을 갖고 있는 박 의장의 역할에 눈길이 쏠린다.
박 의장 측은 20일 "계획했던 미국, 캐나다 방문을 보류했다"며 "외교 경로를 통해 방문 국가에 양해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 폐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두고 여야 대립이 펼쳐지고 있다. 민주당은 다음달 3일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법안을 공포하는 것을 목표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총력 저지를 예고하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국민의힘은 그간 박 의장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막아달라는 메시지를 내왔다. 172석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경우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박 의장이 법안 상정을 거부하거나 문 대통령이 통과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박 의장의 출국 계획은 검수완박 법안 처리의 주요 변수 중 하나였다. 박 의장이 출국하고 본회의 사회권과 법안 상정권이 민주당 소속인 김상희 국회 부의장에게 넘어가면, 법안 통과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앞서 박 의장은 지난해 9월 여야 합의를 촉구하며,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추진 중이던 언론중재법의 상정을 거부했다.
다만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박 의장의 입장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전날 박 의장은 양당 원내대표 회동을 주재하며 따로 중재안을 내지 않고 각 당의 입장을 들은 뒤 쟁점 사안 정리를 요청했을 뿐이다.
박 의장과 별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새로운 변수가 돌출했다. "국가 이익을 위하여 양심에 따라 이번 법안(검수완박법)을 따르지 않겠다"고 적힌 무소속 양향자 의원 명의의 입장문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며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걸림돌로 작용할지 관심이다. 이 입장문을 실제로 양 의원이 작성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양 의원이 이를 부인하지도 않았다.
양 의원은 지난 7일 민주당과의 교감 하에 안건조정위원회 문턱 넘기를 위해 법사위로 소속이 바뀐 인사다. 박 의장이 박성준 민주당 의원을 기획재정위원회로 보내고, 양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로 옮기는 사보임 안건을 결재한 데 따라서였다. 이를 두고는 과거 민주당 소속이었던 양 의원을 법사위로 불러들여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밑작업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법사위 보임 이후 양 의원은 상임위 내 유일한 무소속 의원으로서 이견이 있는 법안을 심사할 때 여야 3명 동수로 구성하게 한 안건조정위원회 위원이 됐다. 이에 따라 검수완박법 안건조정위 구성은 민주당 3명, 국민의힘 3명에서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무소속 1명으로 바뀌었다. 최장 90일 간 활동할 수 있는 안건조정위의 강제 종료를 위해서는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날 양 의원 명의 입장문이 퍼지며 상황은 반전됐다. 양 의원이 실제로 검수완박법 처리에 반대하면, 민주당이 목표로 삼은 4월 국회 내 법안 처리와 현 정부 국무회의에서의 공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법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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