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06년 9월 총리에 올랐다가 2007년 9월 물러났다. 이후 일본 민주당의 후쿠시마 참사 대응 실패,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등의 이슈 여파로 2012년 12월 두번째 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전후 최장기 집권 총리'의 영예를 얻었지만, 아베의 첫 성적표는 초라했다. 1차 아베 내각의 실패 요인은 인사 참사다.
1차 아베 내각의 별칭은 '도모다치(友達·친구) 내각'이었다. '논공행상 내각'이라고도 불렸다. 한국으로 치면 국무총리 역할을 하는, 일본 정부의 '입'으로 불리는 관방장관에 임명된 시오자키 야스히사는 아베의 절친으로 정계에서 유명했다. 각료들 역시 모두 아베의 '친분 모임'에서 발탁된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일본 언론은 "아베 패밀리 일색"(도쿄신분), "단짝 내각에 대해 불안의 목소리"(마이니치신분), "논공행상이 지나칠 정도"(아사히신분) 등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정치 인맥이 넓지 않은 '3세 도련님 정치인' 아베는 유독 '패밀리 인사'에 집착했다. 그 인맥의 뿌리도 아베가 활동해 온 '일본인 납치', '평화헌법 개정', '과거사 왜곡' 등과 관련된 정치인, 학자, 논객 등 이 참여하던 극우 성향의 모임들이었다. '아베의 친구들'은 집권 후 정부 곳곳에 진출했고, 당의 여론을 좌지우지했다. 전문성보다는 친분과 성향, 의리로 뭉쳤던 아베 1차 내각은 각종 '망언'으로 구설에 오르기 일쑤였고, 결국 처절한 실패로 귀결됐다. 이런 모습은 일본에서 첫 정권교체의 씨앗이 된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는 1차 집권기의 '친구 내각' 실패를 반추하며 내각을 꾸렸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조각이 베일을 벗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스스로 윤석열 당선인과 "40년 절친"이라 '인증'한 바 있고, 원희룡 국토부장관 후보자는 윤 당선인의 '정적'인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 '대장동 저격수'로 활동했다. 그의 별명은 '대장동 1타 강사'다. 스스로 지은 별명이다. 캠프 출신 기용도 두드러진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총대'를 멘 김현숙 여가부장관 후보자 역시 윤석열 후보의 대선 캠프 출신으로 "캠프 내에서 정책 파트를 맡아 윤석열 정부의 밑그림을 함께 그린 인물"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역시 대선 캠프 출신이다. 문재인 정부 인사를 '캠코더(캠프, 코드, 더민주) 인사"라 비난한 국민의힘은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13일 한동훈 검사장의 지명은 '친구 내각'의 절정이었다.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 라인'으로 자타공인 윤석열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검찰을 관장하는 법무부장관, 경찰을 관장하는 행안부장관 등 양대 '권력 부서'에 자신의 '측근'과 '친구'를 지명했다는 점이다. 이상민 행안부장관 후보자는 윤석열 후보의 '충암고-서울대 법대' 4년 후배다. 윤 당선인 대선 캠프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해 왔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선거 사무를 담당하는 행안부장관에 고교-대학 후배를 낙점한 것도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통일부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권영세 의원은 본인이 스스로 "윤 후보와는 대학 때부터 아주 가깝게 지낸 선후배 사이로 형사정책연구회라는 모임에서도 함께 활동했다"라고 소개한다.
대선 막바지에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단일화에 합의하며 "종이 쪼가리 말고 날 믿어달라"고 '공동 정부'의 포부를 밝혔던 윤 당선인의 약속도 '허언'이 됐다. 윤석열 당선인의 인사에서 안철수 위원장의 배격 현상은, 윤석열 정부의 첫 내각에 '친구 내각'의 레테르를 붙이는데 망설임을 없애준다. 안철수 위원장은 '공동 정부'라는 수사 아래에서 인사 제언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게 드러났다. 이건 안 위원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어떠한가. 그가 사인했다며 언론에 공개한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서'에 윤 당선인의 '40년 지기'라는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이름이 적혀 있다. 한덕수 후보자가 복지부장관 후보자를 추천했는데 그가 하필 윤 당선인의 '40년 지기' 친구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람들이 이걸 보며 '책임 총리'라 불러주고 '총리 후보자가 인사 제청권을 행사했다'고 믿어주길 바라는 걸까. "국무총리 임면권을 대통령이 갖는 대통령제에서 '책임 총리'는 허상"(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라는 말이 틀린 게 없다. 세간에는 윤석열 식 '공정과 상식'은 '굥정과 상식'이 됐다는 평이 떠돈다. '굥'은 윤석열 당선인의 '윤'을 물구나무 세운 것이다.
벌써부터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녀 의대 편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출산은 애국"이라는 그의 과거 칼럼도 도마에 올랐다. 아베의 측근이었던 1차 아베 내각의 야나기사와 하쿠오 후생노동상이 "여성은 아이를 낳는 기계다. 한 사람 한 사람 분발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던 일이 생각난다. 1차 아베 내각의 스캔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규마 후미오 방위상은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발언해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베 대세론'을 앞장서서 밀었던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상은 정치자금 비리 의혹을 받던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도모다치 내각', '논공행사 내각'이라는 오명을 얻은 1차 아베 내각은 실패로 귀결됐다. NHK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자민당 의원 보좌관을 지내는 등 현실 정치에도 몸 담은 바 있는 프리랜스 언론인 우에스기 다카시는 <관저붕괴>(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아마추어 정부의 몰락>)라는 책을 통해 1차 아베 내각의 몰락 원인을 '측근 정치'에서 찾았다. 부실 검증으로 측근 추천을 받아 임명된 관료들이 계속해 사고를 쳤고, 측근들 사이에 '충성 경쟁'이 벌어지며 내각이 한 몸처럼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1차 아베 내각의 실패는 전후 최초 일본 민주당의 정권 교체로 이어진다.
실패로 귀결된 정권을, 이제 막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빗댄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당선인의 '친구 내각'은 위험해 보인다. 당장 한동훈 검사장의 법무부장관 기용으로 '검수완박'을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에 '명분'을 쥐어 준 셈이 됐다. 울고 싶은 아이 뺨을 때린 것이다.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합리적 조언자'도 보이지 않는다. '2달 안에 청와대 이전'과 같은 정치판 '돌관 공사'와 같은 모습이 인사에서도 엿보인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인사 파트를 담당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인사의 사유화'라는 표현을 썼다. 인사의 사유화는 국정의 사유화로 이어질 수 있다. 초보 정치인 윤석열의 '새정치'가 위태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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