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측 사이의 정권 이양 진통이 2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23일 한국은행 총재 인선을 놓고 양측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 성사가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정오께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은 총재 후임으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며 당선인 측과 조율된 인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은 곧바로 입장문을 통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대통령과 당선인 간 실무 역할을 맡은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통화 내용까지 언급하며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기자들과 만난 장 실장은 "(한은 총재 인사를) 발표하기 10분 전에 전화 와서 발표하겠다고 하길래 웃었다"며 "무슨 소리냐. 일방적으로 발표하려면 마음대로 하시라. 저희는 그런 분 추천하고 동의한 적 없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입장을 반박했다.
장 실장은 청와대가 윤 당선인측과 협의를 했다고 밝힌 의도를 "감사위원 임명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라며 "정식으로 당선인에게 추천을 요청하고 (당선인이) 수락하겠다고 해서 추천하는 상호간 협의나 절차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장 실장은 이 수석이 이 총재 지명자에 대해 의견을 물어왔다고 전하면서, "(이철희 수석이) '이창용 씨 어때요' 하길래 내가 '좋은 사람 같다' 그랬다. 그게 끝이다"며 "그걸 가지고 당선인 측 얘길 들었다는 게 납득이 가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청와대는 이미 상호 간 합의가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 수석이 장 실장에게 한은 총재 후보로) 두 사람을 물어봤다"며 "(두 사람 가운데) 이창용이라고 해서 이창용(을 지명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당선인 쪽에서도 이창용 국장에게 할 의사가 있느냐는 확인을 했다고 들었다"며 "인사를 원하는 대로 해주면 선물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한은 총재 지명이) 계기가 되어 (나머지 인사 문제가) 잘 풀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날 지명된 이 후보자는 과거 MB 정권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 인수위원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연달아 맡았던 경력에 비춰볼 때 윤 당선인 측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당초 지난 16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 결렬된 원인도 인사 문제였다. 청와대는 공석인 감사위원 두 명 자리를 각각 한 명씩 추천해 서로 협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윤 당선인 측에서 청와대 추천 인사에 대한 '비토권'을 보장해달라고 해 최종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내세우고 있는 원칙은 '재임 중 인사권을 행사하되, 당선인 측과 충분히 협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비춰볼 때 윤 당선인 측이 요구한 비토권은 문 대통령에 대한 월권이라는 인식이다.
현재 양측이 풀어야 할 과제는 한은 총재를 제외하더라도 감사위원 2명,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1명에 대한 인사 문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 등 첩첩산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은 총재 인사조차 진실 공방으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회동은 더욱 요원해진 상황이다.
물론 다양한 난제들에 대해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일단 회동부터 성사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역대로 (당선자가) 대통령을 만날 때 이렇게 조건을 걸고 만난 적이 없지 않느냐"면서 "두 분이 빨리 만나는 게 좋은 것이고, 나머지 세 자리는 빨리 협의를 하자, 이렇게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동을 위한 조율 과정에서 감정의 앙금까지 쌓인 데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예비비 활용 등 난제가 겹쳐 있어 '조건 없는 회동'이 쉽게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지난 9일 대선 이후 2주가 흘러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까지 걸린 가장 오랜 기간이던 9일을 넘어섰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9일 만에 이명박 당시 당선인과 만찬을 겸해 만났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9일 만에 박근혜 당시 당선인과 청와대에서 회동한 바 있다.
그 외에는 짧으면 이틀 길면 나흘 정도가 걸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당시 당선인과 대선 나흘 만에 만났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당선인과 대선 후 불과 이틀 만에 만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당시 당선인과 대선 사흘 만인 1992년 12월21일 회동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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