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인 박수진 씨는 22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밀었다. 3년 전, 청와대 앞에서 피해단계 구분철폐, 판정 기준 완화 등을 주장하며 삭발을 한 이후 두 번째 삭발이다. '가습기살균제 4차 피해정보 공유모임'의 대표이기도 한 박수진 씨는 삭발을 진행하며 조정위가 피해자들에게 공개한 2차 조정안의 금액이 "터무니없는 금액"이라며 수정을 요구했다.
박 씨는 "오늘은 부모로서 나왔다"라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엄마인 제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기업들에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삭발한다"라고 말했다. 박 씨의 자녀 3명 또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 손상을 입었으나 피해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 2차 조정안에 따르면 박 씨의 자녀들은 7700만 원~7750만 원 사이의 금액이 지원금으로 나온다.
옥시, 애경 등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8개 기업과 피해자 단체의 조정을 위해 작년 10월 설립된 조정위는 지난 2월 1차 조정안을 피해자 단체에 공개했다. 그러나 조정안이 "피해구제법상 피해등급을 기준으로 만들어 안정적인 치료를 보장하지도 못한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조정위는 배상금을 상향한 2차 조정안을 발표했지만 피해자 단체들은 "여전히 피해 정도에 불충분한 금액"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2차 조정안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망자에 대한 지원금은 최저 1억5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상향됐다. 또 가장 높은 피해등급인 '초고도등급'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은 3억5800만 원~4억8000만 원에서 8392만2400원~5억3522만4000원으로 변경됐다. 연령대가 낮은 피해자의 지원액은 상향했지만 고연령층에 대한 지원액을 낮춘 것이다.
박 씨는 "현 조정안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받는 1세부터 9세까지는 대상자가 없는 허상의 조정안"이라면서 "현재 나이를 기준으로 보상을 하면 일신 수입(사고가 발생하면서 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 위자료 등을 고려했을 때 터무니없는 금액이 된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또한 "어렸을 때 폐 기능에 손상이 온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집 밖을 잘 나서지도 못하고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했다"라며 "조정안의 금액은 미래 치료비까지 전부 포함한 금액이므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보상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 씨를 포함한 피해자 단체는 조정안을 비판하며 21일부터 조정위 건물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는 조정위의 '불통'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범 단체 victims 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조정위가 전체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공청회도 없이 조정안을 만든다"라고 비판하며 단식 농성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투쟁본부 조순미 운영위원장은 "조정위에서 실제 피해 금액의 20%도 되지 않는 조정안으로 피해자를 압박하고 피해자의 말보다 기업의 입장을 우선시하고 있다"라며 "피해자들에 대한 조정안 설명 및 피해자들의 의견교환이 이뤄지는 공청회 없이는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또한 "조정위나 환경부 차원에서 전체 피해자에 대한 설명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라며 "조정안이 어떤지를 알아야 반대를 하든지 찬성을 하든지 할 텐데 피해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청회나 설명회 없이 졸속처리하거나 결렬시키겠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조정위는 3월 말까지 피해자 단체의 의견을 듣고 최종안을 낸다는 계획이다. 조정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기업과 피해자들 간의 조정이 성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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