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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류 언론'들이 말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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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류 언론'들이 말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실

[해외 시각] 미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책임이 없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법을 위반한 불의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설명할 순 없다. 우크라이나의 정치 상황과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라는 큰 맥락 속에서 이 전쟁을 짚어봐야 한다. 부당한 침공이라는 현상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죽음, 러시아 군인들의 죽음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럴수록 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다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까지 많은 논의들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치 상황들이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 '전쟁 반대'라는 당위성이 중요치 않다는 게 아니다. 이 비극이 발생한 맥락을 정확히 짚어 내야, 앞으로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서구 주류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견해를 여기 소개한다. 특히 미국의 주류 언론이 전쟁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갈등을 얼마나 비정하게 다뤄왔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냉정해져야 할 때다. 독립언론인 브라이스 그린이 지난 3월 4일 FAIR(Fairness and Accuracy in Reporting, 1986년 설립된 미 언론감시 단체)에 실은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편집자

많은 정부 인사와 언론인들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침략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2월 24일 연설에서 푸틴의 공격은 “근거 없는(unprovoked)" 침공이라고 말했다. 즉 외부의 도발이 없었는데도 일방적으로 공격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이후 “근거 없는”이란 말은 (미국) 언론생태계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근거 없는 침공 나흘째, 푸틴의 군대가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에 진입”(액시오스, 2. 27)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근거 없는 침공이 2주째로 접어든 오늘”(CNBC 3. 4)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우크라이나와 근거 없고 불필요한 전쟁을 시작한 푸틴의 결정“(Vox 3.1) 등등

그러나 “근거 없는”이란 형용사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미국이 주도한 수많은 도발적 행동의 오랜 역사를 은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다 세계가 이 지경이 됐고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미국이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다

이야기는 냉전 종식으로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가가 되면서 시작된다. 동서독 통일을 마무리 짓는 협상의 일환으로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동쪽으로 단 1인치도”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 정책가들 사이에서는 나토 확대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에 대해 1997년 수십명의 대외정책 전문가들이(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과 스탠스필드 터너 전 CIA 국장 등) 클린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나토를 확대하려는 미국 주도의 시도는...역사적 규모의 정책 실패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모든 정파들이 나토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나토 확대는 반민주적 야당 세력을 강화시키는 반면 개혁과 서방과의 협조를 원하는 세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또한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탈냉전 이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1998년 5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냉전 전략의 설계자이자 저명한 외교관인 조지 케난에게 나토 확대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당시 미국 상원이 폴란드, 헝가리, 체코의 나토 가입을 비준하는 등 동유럽에 대한 나토 확대가 추진되고 있었다). 5월 2일자에 실린 케난의 답은 다음과 같다.

“나토 확대는 새로운 냉전의 시작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러시아는 점진적으로 적대적 태도를 취할 것이며 이는 그들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토 확대는 비극적 실수라고 생각한다. 나토를 확대할 어떤 이유도 없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위협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나토 확대에 대해 러시아는 나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면 나토 확대 추진 세력들은 ‘거봐, 러시아는 언제나 저렇거든’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진단이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1999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가 나토에 가입했고, 2004년에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가입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이 논의되던) 2008년 미국의 전략가들은 다시 한 번 경고를 보냈다. 당시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였던 윌리엄 번스(현재 CIA 국장)였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비밀 전문(“아니라면 아닌 것 : 나토 확대는 러시아의 레드라인”)에서 번스 대사는 다음과 같이 예언적 경고를 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모든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지역 안정에 대한 심각한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는 (나토 확대로 서방측에) 포위되고 나아가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잠식당하고 있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사태 전개에 따라 러시아의 안보 이익 자체가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러시아는 특히 나토 가입에 대한 우크라이나 내부의 심각한 찬반 대립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러시아계 주민들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토 가입이 강행된다면 폭력사태, 최악의 경우 내전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거대한 균열이 발생할 것이다. 그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개입해야 할지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 러시아는 그러한 선택에 직면하기를 원치 않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오른쪽)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지난 3월 16일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이 만남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는 미국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NATO 홈페이지

우크라이나, 사실상의 나토 동맹국

러시아가 그러한 선택에 직면하도록 밀어붙인 것은 미국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 반면 나토의 핵심부는 동맹의 ‘문호 개방 정책’의 유지를 강하게 주장했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해 거듭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토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버그 장군은 우크라이나 가입에 관한 2008년도 나토의 결정이 실천돼야 한다고 고집했다(뉴욕타임스 ‘21, 12. 16) 바이든 행정부는 보다 우회적 방식을 택했다. “자신의 안보와 동맹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키이우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식의 추상적 표현으로. 그러나 그 의미는 명확했다.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나토에 가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나토의 동맹국이 됐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러한 사태 전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 푸틴은 군 고위관리들에 대한 연설을 통해 자신의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수년간 우크라이나 영내에서 군사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나토 가맹국들의 병력 전개가 거의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은 이미 지휘 통제 측면에서 나토에 통합된 상태다. 이는 나토 지휘부가 우크라이나 군에 대해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이우는 오랫동안 나토 가입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주장해 왔다. 물론 어떤 나라든 자신의 안보 체제를 선택할 수 있고 군사동맹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 여기에는 하나의 단서가 전제돼야만 한다. 안전보장의 원칙은 모든 국가에 동등하게 적용돼야 한다. 즉 차별적으로 적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안보를 약화시키면서까지 자국의 안보만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 이는 모든 국제조약들이 명확하게 표명하고 있는 대원칙이다.

다시 말해 자국의 안보 강화를 위한 선택이 다른 나라의 안보에 위협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다.“

2월 24일자 뉴욕타임스 해설 기사는 나토 확대를 전쟁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신문은 나토가 동쪽으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이후 이 약속을 파기하는 과정의 핵심적 맥락을 빠뜨렸다. 미국 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과정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미국의 외교관과 대외정책 전문가들이 나토 확대에 대해 수많은 경고를 발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2014년의 마이단 쿠데타

2014년 폭력적이고 위헌적 방법에 의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축출은 미국/우크라이나/러시아 관계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2010년 (동부의 압도적 지지와 서부의 압도적 반대 속에) 선출된 그는 2014년 초 부분적으로 극우 극단주의세력이 주도한 수개월의 반정부 시위 끝에 실각했다. 그의 실각 수 주일 전, 누군가가 미국 관리들 간의(빅토리아 눌란드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와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전화 통화 녹음을 유출했는데, 그 내용은 우크라이나 신정부에 누구를 참여시키고 누구를 저지할 것인지 등을 논의한 것이었다. 야누코비치 실각 후 당시 미국 관리들이 “그 친구”라고 지목한 인물이 새 정부의 총리가 됐다.

이러한 미국의 개입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분열을 이용해 이 나라를 러시아 세력권에서 떼어내 미국 세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공작의 일환이었다. 야누코비치 실각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를 불법적으로 합병했다. 부분적으로 이는 친미적인 우크라이나 신정부로부터 크림반도의 주요 해군기지를 빼앗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뉴욕타임스(2. 24)와 워싱턴포스트(2.28)는 이 과정에서 미국이 한 역할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즉 미국 언론에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대한 미국의 영향이 완전히 제거됐고 따라서 현재의 전쟁에 이르는 과정의 중요한 단계를 삭제해 버린 것이다.

내전을 지속시키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야누코비치 실각에 대한 반응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나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과 자신들의 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내전이 발생, 수천명이 희생됐으나 2015년 민스크2 협정에 의해 내전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이 참여한 이 협정은 분리 독립 선언지역을 우크라이나에 다시 통합시키는 대신 이들 지역에 일정한 자치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자치 조항의 이행을 거부했다. 러시아 전문가인 아나톨 리벤(‘책임 있는 국정을 위한 퀸시 연구소’ 연구원)은 잡지 네이션에(‘21. 11. 15)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러한 이행 거부의 주요 원인은, 키이우 중앙정부의 권력을 인정한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돈바스 지역에 영구적 자치가 허용된다면 이 지역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및 유럽연합 가입을 저지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즉 돈바스 지역이 우크라이나 헌법상의 지위를 이용해 나토 및 유럽연합 가입을 끝내 반대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행정부와 정계, 주류 언론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협정 이행을 거부했고, 미국 정부는 협정 이행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것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은폐했다.“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에 자치를 허용하는 대신 이 지역의 갈등을 지속시켰고,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태도 변화를 위해 어떠한 압력도 가하지 않았다. 지난 1월말까지만 해도 민스크협정이 부활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안보책임자 올레크시 다닐로프는 서방에 대해 평화협정을 이행하라고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민스크협정의 이행은 이 나라의 파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AP 1. 31). 심지어 그는 8년 전 협정이 체결될 당시에도 “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협정의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미 명백했다”고 주장했다.

리벤은 민스크협정에 대한 러시아 측의 이행 의지도 아직 확실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푸틴은 민스크협정을 지지했고 2월 24일 침공 이전까지는 돈바스 지역의 자치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2얼 28일자 뉴욕타임스 해설기사는 민스크협정 실패의 원인이 협정 이행에 관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의견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적절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의회의 (돈바스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돈바스 지역에 특수 지위를 부여할 법안이 그동안 “유보돼” 왔다고 슬쩍 지나가듯이 인정했다. 다시 말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내전의 해결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미사일 위기

이번 위기와 관련해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측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토 국가에 배치된 미국 미사일의 역할이다. 미국의 많은 언론들은 푸틴을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그가 옛 소련 공화국들을 재점령해 “자신을 차르로 하는 러시아제국을 다시 세우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주류언론과 전문가들은 푸틴의 2월 21일 TV연설에 대해 소련 제국의 부활 기도이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주류언론은 최근 몇 달간 푸틴의 다른 공적 발언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푸틴은 최근 국방부 확대회의에서 미국/나토의 우크라이나로의 확대가 러시아로서는 주요한 군사적 위협이 될 수밖에 없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국의 지구방위시스템이 러시아 인근에 배치되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현재 루마니아에 배치돼 있고 앞으로 폴란드에 배치 예정인 MK41 발사대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발사용이다. 이 발사시스템이 계속 전진 배치된다면, 다시 말해 미국과 나토의 미사일시스템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된다면 여기서 발사된 미사일이 7-10분이면 모스크바에 도달 가능하다. 극초음속 미사일이라면 5분이면 충분하다. 이것은 러시아, 러시아 안보에 대한 거대한 도전이다.

미국은 아직 극초음속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는 갖게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미국은 극초음속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것이고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 주변 국가의 극단주의자들을 무장시킨 다음 적절한 때가 되면 러시아연방의 특정 지역, 예컨대 크림반도에 대한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저들은 우리가 이러한 위협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에 대한 이러한 안보 위협을 우리가 그저 방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인접지역에 (미국/나토의)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은 냉전 시절 핵전쟁을 방지했던 상호확증파괴(MAD)의 억지력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조치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러한 전진 배치가 미국에게 자신은 핵보복을 받지 않은 채 적을 선제 핵타격 할 수 있는 제1격 능력을 허용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의 전진 배치를 방치할 경우) 러시아 입장에서는 자신의 머리에 권총이 겨눠진 채 핵시대를 견뎌야 하는 신세일 수밖에 없다. 어떤 나라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미국 언론은 이처럼 핵심적인 문제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지는 않으면서 푸틴을 전쟁광으로 공격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기와 나토 기 ⓒNATO 홈페이지

긴장 완화를 거부하다

2021년 12월부터 미국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병력을 배치하면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푸틴은 긴장 완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서방에 대해 나토 확대를 중단하고, 동서 대립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을 협상하며, 비핵국가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를 철수하고, 러시아 인근에 배치된 미사일, 병력, 기지들을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아마 미국이 러시아의 처지에 있었다면 반드시 이런 요구를 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미국은 러시아의 핵심 요구들에 관해 협상하기를 거부했다. 물론 미국은 보다 광범위한 군비통제를 위한 진지한 제안을 내놓기는 했다(Antiwar.com 2. 2). 이에 대해 러시아는 그 진정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의 나토의 군사 활동이나 동유럽 국가에의 핵무기 배치 문제 등은 묵살했다.(Antiwar.com 2. 17)

나토 확대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나토의 문호개방 정책은 협상 불가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다시 말해 나토 확대라는 자신의 권리는 주장하면서 상대방인 러시아의 금지선(red line)은 무시한 것이다.

미국은 당분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유보한다는 비공식 협정은 맺을 용의가 있다는 신호를 보냈으나 이는 명백히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러시아인들에게는 탈냉전 당시 ‘동쪽으로 단 1인치도 확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허망하게 무산된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나토 관계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를 해소하는 대신 수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면서 푸틴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도 상황 악화에 일조했다. 긴장이 고조되던 순간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개발을 시사한 것이다.

푸틴이 분리 독립 지역에 대한 외교적 승인을 발표한 직후 블링큰 국무장관은 푸틴과의 대화를 취소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러시아 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이었다. 미국이 전쟁 방지에 진정 관심이 있었다면 긴장 해소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했던 것 아닐까. 하지만 미국은 모든 측면에서 그 반대 방향의 조치를 취했다.

2월 28일자 <워싱턴포스트> 해설기사는 러시아 핵심 우려사항에 대한 미국의 거부가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애써 축소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협상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서방 동맹은 나토 가입의 문호 개방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토의 문호 개방 정책은 변경 불가능하며 푸틴은 단지 이러한 서방측 입장에 자신을 맞추라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핵심인 이러한 전제, ‘나토 가입 문제는 협상 불가’라는 서방의 막무가내가 미국의 언론 생태계에서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고 있다.

'전쟁을 감수해도 되는 전략적 이유'

바이든 행정부는 왜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만 행동했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해 말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한 칼럼(2021. 12. 22)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감수해도 되는 전략적 이유’라는 도발적 제목의 이 칼럼은 어틀랜틱 카운슬의 연구원 존 데니가 작성한 것이다. 이 단체는 미국 및 동맹국의 자금지원을 받는 사실상 나토의 싱크탱크이다. 칼럼의 핵심 요지는 러시아와의 협상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협상 거부에 따른 어떤 결과도 미국에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런 협상 없이 푸틴이 물러난다면 푸틴은 큰 타격을 입는다. 국내는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그의 체면과 위신은 크게 손상될 것이다.

반대로 푸틴이 전쟁을 벌인다 해도 미국에 해로울 것은 전혀 없다. 첫째, 푸틴의 전쟁은 “유럽 전역에 걸쳐 반러시아 정서를 강화시킴으로써” 나토의 정당성을 높일 것이다. 둘째, 푸틴의 전쟁에 대해 “더욱 강력한 경제 제재를 단행함으로써” 러시아 경제를 약화시키는 한편 국제사회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도 약화시킬 수 있다. 셋째,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게릴라전을 유발함으로써” “러시아 군의 힘과 사기를 떨어뜨릴 것이며 이에 따라 푸틴의 국내적 인기와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를 약화시킬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희생을 담보로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나토의 두뇌집단이 제시한 것이다.

'전쟁보다 훨씬 나쁜 그 무엇'

마찬가지로 <뉴욕타임스> 2월 3일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주장의 칼럼을 실었다. 주변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권 형성을 방치하느니 차라리 전쟁이 낫다는 주장이었다. 칼럼 필자 이반 크라스테프(오스트리아 비엔나 소재 인문과학연구소)는 “유럽은 푸틴이 전쟁보다 훨씬 나쁜 그 무엇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칼럼의 제목)면서 ‘전쟁보다 훨씬 나쁜 그 무엇’이란 “탈소비에트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새로운 유럽의 안보체제”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록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지만, 유럽의 현 안보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나토는 침공에 강력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러시아에 대한 극단적 제재와 함께 모든 유럽 국가들이 일치단결할 것이다. 결국 푸틴은 분쟁을 심화시킴으로써 다른 유럽 국가들은 뭉치게 만드는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러한 논객들의 주장, 즉 러시아의 침공이 미국과 유럽엔 오히려 유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분석에 동의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며 특히 실제 사태는 이들 칼럼이 예측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푸틴의 침공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FAIR는 러시아의 침공이 불법적이고 파괴적이라는 점에서 단호하게 규탄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이 “근거 없는(unprovoked)" 것이라는 언론 보도는 이번 비극이 초래된 데 대한 미국의 책임을 은폐하는 것이다. 미국은 나토 확대 정책을 계속할 경우 거대한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러시아 및 미국 정부 관리들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했다. 그 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 전쟁은 전혀 뜻밖의 사태가 아니다.

이제 세계는 다시 한 번 핵절멸의 절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서방의 시민들은 인류를 현재의 위기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알고 용기 있게 저항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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