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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잊은 정치인들, 원전이 '안전'하다며 '핵 발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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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잊은 정치인들, 원전이 '안전'하다며 '핵 발전'하자?

[후쿠시마 핵사고 11주년] ⑤ '탈핵' 걸음 뗀 한국, 후쿠시마와 다른 길 갈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핵 사고가 발생한 지 11년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6개의 발전소가 있었는데 이중 3곳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리고, 3개의 발전소에서 연달아 수소폭발이 일어나면서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대기 중으로 바다로 퍼져나간 방사성물질들은 돌이킬 수 없는 방사능 오염을 일으켰다. 이때 주변지역으로 퍼져나간 대표적인 방사성물질인 세슘-137의 영향이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0년임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일본은 방사능 오염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아직 사고로 인한 위험과 추가적인 오염 발생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후쿠시마 원전 내부에 녹아내린 핵연료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개 호기에서 녹아내린 핵연료 300여 톤이 구조물과 콘크리트 등과 합쳐져 1000여 톤의 파편덩어리(데브리)들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고방사선 방출로 사람이 여기에 접근할 수 없어 전용로봇을 개발해 살펴보고 있으나, 이를 제거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여러 어려움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방사성오염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주입한 냉각수가 빗물, 지하수, 건물 내 오염수 등과 섞이면서 오염수는 계속 늘어나 130만 톤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작년 4월 많은 반대에도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해 무책임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 지난 2019년 3월 후쿠시마 핵 사고 8주기에 벌인 거리행진 퍼포먼스에서 한 참가자가 '끝내자 핵발전소'를 외치고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이제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탈원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전 세계는 원전의 위험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원전을 줄여나가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탈원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도 즉각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이러한 길로 이제 막 접어든 상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삼척과 영덕, 울진에 신규원전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노후원전 수명 연장을 금지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하지만 건설 중이었던 신고리 5·6호기를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이러한 계획은 현재 운영, 건설 중인 모든 원전의 가동을 보장함으로 인해 탈원전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느리고 낮은 수준의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이 지속된다고 하면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가 정지될 2080년대까지 60년 동안 우리는 원전 사고의 위험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직접적으로 폐쇄한 원전은 불법적으로 수명 연장시킨 월성1호기뿐이다. 현재 24기의 원전이 운영 중이고, 4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라는 점에서 탈원전 정책을 시행한 정부의 성적표는 너무나 초라하다. 이마저도 온갖 가짜뉴스, 편파적인 감사와 검찰 권력을 동원해 정쟁의 도구로만 전락된 월성1호기 폐쇄와 탈원전 논란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 원자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정례회의를 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

문제 많은 후쿠시마 후속 대책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원전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관심이 높아졌다. 원자력 규제와 진흥을 한 부서에서 하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1년 하반기 독립 출범하게 된다. 규제기구는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폐쇄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법 개정을 통해 국회가 일부 위원 추천권을 가지면서 원자력 이해로부터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되고 회의록 공개와 방청 등이 허용되었다.

국회와 언론, 시민들이 원전 안전에 관심을 가지면서 폐쇄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원전에 대한 안전성도 본격 점검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시험성적서, 품질보증서 등 위변조, 뇌물수수, 향응제공, 사기횡령 등 원전비리 사건이 고구마 줄기 드러나듯 연이어 터져 나왔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원전비리 사건 89건에서 205명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를 받았다. 이때 선고된 징역형이 총 340년 4개월에 달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내진 성능을 개선하고 지진해일에 대비해 해안 방벽을 높이고, 침수 방지용 방수문 설치, 수소제거기 설치, 이동형 발전차 확보, 격납건물 여과배기 설비 설치 등 50개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속대책을 내놓고 이행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18년 6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 이러한 이행 조치들이 상당수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고리 원전 부지의 경우 최고 해수위가 17m임에도, 그에 턱없이 모자란 10m 해안 방벽을 설치했다. 고리, 월성, 한울, 한빛 원전의 27개 시설이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내진 성능 확인이 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59개 시설은 현재 내진설계 기준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소 폭발로 인한 원전의 중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 수소제거기 역시 문제가 있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2021년 2월, 국내 원전에 설치된 PAR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공익 제보를 통해 밝혀졌다. 수소 제거 성능이 규격의 30~60%에 불과하며, 실험 도중 고온의 환경에서 살수(spray)하자 표면의 촉매체가 떨어져 나와 불티가 날려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중대 사고 시 원자로 압력을 낮춰 원자로 파손을 막기 위한 설비인 격납건물여과배기계통(CFVS) 역시 월성1호기만 설치한 후에 사업이 백지화되었다. 설치해도 효과가 떨어지고 방사선 피폭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연구과제 등 수백억의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또 월성1호기 CFVS를 설비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시공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차수막이 파손되어 방사성물질이 비계획적으로 유출될 수 있는 문제도 드러났다.

▲ 영광핵발전소 홍보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 실제로 핵발전소 안에는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한 핵폐기물이 쌓여 있다. ⓒ함께사는길

국민 안전 대신 핵 발전하자는 이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여러 변화가 진행 중이지만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로 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은 물론 시민들의 관심과 감시, 참여가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 탈원전을 더 빠르고 안전하게 가는 길이 중요하다. 하지만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주요 후보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의 안전은 적신호가 켜질 상황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말하며, 신한울 3·4호기,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공약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탈원전'이 아니라 '감원전'이라는 표현을 쓰며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신한울 3·4호기 백지화에서 한발 물러섰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원전이 탄소중립에 도움이 되는 해결책처럼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원전은 결코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후쿠시마와 같은 중대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아니더라도 핵폐기물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전을 건설하여 가동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 사이 원전 부지마다 고준위핵폐기물을 임시로 보관할 수 있는 시설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한 상태다. 10만 년 이상 위험이 사라지지 않은 폐기물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만들어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필수적으로 늘려야 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에 있어서도 원전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원전은 보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전은 출력조정이 쉽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가동과 정지를 유연하게 할 수 없다. 향후 재생에너지가 전력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 원전은 더더군다나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원전과 핵폐기장 서울에 건설할 수 있을까

원자력계와 보수정치인들은 원전이 안전하고, 핵폐기장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현재 원전이 있는 지역이 앞으로도 계속 위험과 문제를 감내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안전하고 좋다면, 더 이상 지역에만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서울에 원전을 짓겠다고, 서울에 핵폐기장을 건설하자고 말해야 한다.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사고와 위험은 책임지지 않으면서 당장의 눈앞의 이익만 취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미래를 위해 어리석은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 월성원자력발전소. ⓒ함께사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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