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제14대 대선이 김영삼 후보의 승리로 끝난 뒤 김대중 후보를 밀었던 유권자들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가슴에 피웠던 희망의 모닥불이 꺼지고 차갑게 식은 재만이 응어리로 남았다. 그 비통함과 상실감은 영원히 씻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깊은 절망과 비탄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오히려 김영삼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돌아섰다.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도입, 공직자 재산 공개 등 집권 초반에 추진한 획기적 개혁 정책 때문이다. YS는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초기의 개혁 정신이 퇴색하고 결국 IMF 사태로 '무능 대통령'의 오명을 안고 퇴장했지만, 집권 초기만큼은 그의 정치 역정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는 대선 이후 당선자들의 정국 운영 방향에 대한 귀중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예이기도 하다.
전쟁의 뒤안길에는 대량의 난민이 발생한다. 대선의 치열한 포성이 멎은 뒤 이 땅에도 '정치적 난민'이 넘친다. 믿었던 당위와 실제로 나타난 현실 사이의 아득한 간격 앞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 비통함,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 증세는 14대 대선 직후보다 더 깊으면 깊지 덜하지 않아 보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런 집단적 우울증을 넘어 미래로 전진할 수 있을까.
선거가 끝난 뒤 모두가 '통합'을 말한다. 정당 간의 협치, 능력 우선의 인재 등용, 상대편에 대한 포용과 아량 등을 이구동성으로 합창한다. 대선 뒤 윤석열 당선인이 처음으로 강조한 것도 '통합·공정·상식'이었다. 국민의힘은 선거 기간 내내 혐오와 배제에 기초한 선거 운동을 벌였다. 언어와 현실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 심정은 괴롭다. 윤 당선인의 아름다운 말은 그래서 당위적일수록 더 공허하고 엄숙할수록 더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YS가 집권 초기 '통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실질적 통합에 성공한 요인은 '시대적 과제' '반전' '감동' 등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자신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희망과 염원을 수렴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시대적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반전의 미학을 수반한 감동을 안긴 것이다. 이것은 진보-보수를 떠나 대선의 승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참고할만한 미덕일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어떨까. 윤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전달한 메시지는 '정권교체'만이 거의 전부였다. 반면에 국내외 각종 현안에 대한 무지,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의 부재, 시대착오적인 아집 등을 노출했다. 혹자는 그의 '무지'에 '반전의 미학'을 기대하기도 한다. '평생 검사 생활만 한 사람이 국내외 각종 현안에 대해 언제 깊이 생각을 해보았겠는가. 급히 정계에 진출한 뒤 벼락공부를 한 정도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입된 인식일 뿐 자기의 생각도 아니고 몸으로 체화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사람을 잘 쓰고 현안을 올바르게 파악해나가면 오히려 기대보다 더 잘 할 수도 있다.' 대략 이런 이야기다 '준비 안 된 대통령'에 대한 '역설적 기대'가 씁쓸하기는 하지만 이런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마음 또한 절실하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권위'가 저절로 별책부록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강제력 행사를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권력과 자발적 동의를 핵심으로 하는 권위는 다르다. '권위 없는 권위주의'라는 말도 있듯이 제대로 된 권위의 부재는 오히려 권위주의 강화로 나타날 위험을 안고 있다. 권력자에 대한 경외와 존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권력 행사는 권력자 본인은 물론 나라 전체에도 불행이다.
도덕성은 권위 확립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도덕성을 인정받지 않고 제대로 된 권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윤 당선인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본인과 가족들이 너무 많은 도덕성 의혹을 노출했다. 윤 당선인의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수사 무마 의혹, 부인 김건희씨의 주가 조작 의혹 등 숱한 도적적·법적 책임이 대선 승리로 모두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김건희씨의 호칭이 '김건희 여사'로 바뀌는 것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쓴웃음을 짓고 있는가. 앞으로 당사자의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칠 때마다 관련된 도덕성 의혹을 국민이 떠올리는 것은 당사자나 국민 양쪽 모두 고역스러운 일이다. 당선인 패밀리의 도덕성 의혹 불식이 대선 전보다 오히려 대선 뒤가 더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합은 결국 사회 전체의 합리성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당선인과 가족의 도덕성 의혹 처리도 그런 합리성 축적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선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도덕성 의혹이 거론되는 것을 당선인의 발목잡기 차원에서 바라봐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권력을 의식한 검찰의 봐주기 무죄 처분' 역시 앞으로 새 정부가 끊임없이 강조할 공정, 상식, 법치의 구호를 희화화할 뿐이다.
선거 과정에서 윤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새 정부가 '잘할 리 없다'는 부정적 예상도 있지만 '어차피 정권을 잡았으니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마음 역시 강렬하다. 그만큼 유권자들의 의식은 소박하고 건강하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노력은 단순한 구호와 수사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기대에 역행하는 모습이 벌써부터 나오니 매우 유감스럽다. 여성가족부 폐지 강행 방침, 지역안배·여성안배 '자리 나눠먹기' 규정, 장제원 의원 비서실장 임명 등이 그렇다. 장제원 의원의 경우 그동안 '윤핵관'으로 구설에 휩싸인 인물인데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시절 '학내폭력' 문제까지 불거졌다. 체육계 쪽에서는 학창 시절 학내폭력이 뒤늦게 문제가 된 유명 스타들이 외국으로 '망명'을 떠나기까지 했다. 장 의원에게 고등학교 시절 폭력을 당했다는 당사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는데도 명확한 진상규명도 없이 '감투'를 안기는 게 과연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일까.
윤 당선인이 상대할 적은 172석 거대 야당도, '여소야대'의 정치지형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절반 가까운 국민도 아니다.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다." 대선이 끝난 뒤 다시 펼쳐본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한 구절이다. 이 말은 대선으로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비통한 자들' 보다 오히려 윤 당선인을 포함해 대선 승리로 '의기양양한 자들'이 더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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