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 중에 가장 근소한 득표차로 더불어민주당이 패배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우세가 예상되던 판세를 0.73%포인트 차인 초접전으로 몰고간 배경은 2030여성들의 막판 결집이었다. 그 중심엔 'n번방' 추적자였던 박지현 민주당 여성위 부위원장이 있었다.
박지현 부위원장은 12일 <프레시안>과의 화상인터뷰에서 "민주당도 대선 초반 여성을 배제하려고 했던 시도에 대해 반성하고 제대로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번 대선을 계기로 혐오정치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민주당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대선 결과에 대해 "혐오를 조장하고 폭력적인 공약을 내놓는 사람이 승리의 깃발을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여성들의 막판 결집이 유의미했다고 짚었다.
그는 "민주당은 비록 이번 대선에 졌지만 여성들의 결집력을 보여준 것은 큰 의미"라며 "더이상 정치권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이전처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재명 후보가 여성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막판 지지를 보내주셨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대 여성은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실제 선거에서 막판 결집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실시한 출구조사를 보면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세대에서 여성 표심은 이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58%가 이 후보를 선택했지만, 윤 당선인을 선택한 수치는 33.8%로 25%포인트 가량 차이가 났다. 대선이 끝난 직후 지난 10~11일 이틀 동안 민주당에 입당한 1만1천명 가운데 여성이 80%, 특히 2030세대 여성이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 부위원장은 대선 패배 이유로 지난 4.7 재보궐 패배 이후 민주당이 쇄신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점을 꼽았다. 그는 "광역단체장 3명이나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해왔던 것, 말뿐인 사과가 결국 민주당이 패한 요인"이라며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도 여성을 배제하는 전략에 편승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도, 후보도 대선 초반 여성을 배제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문제되는 글을 공유한 점, <씨리얼> 출연 무산 등에 많은 분들이 분노했다"며 "그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짚고, 반성하는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드려야 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선거 캠페인 도중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홍카단의 글을 공유하고, 안티페미니즘 성향이 짙은 남초 사이트에 게시글을 올리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경쟁하듯 여성을 배제하는 전략을 펴왔다. 하지만 박 부위원장의 합류 이후 이 후보는 민주당 내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TV토론에서 직접 사과했고, 구조적 성차별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박 부위원장은 민주당의 쇄신이 완료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이틀전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내 많은 의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친상에 화환을 보내는 모습에 분노를 느꼈다"며 "선거에서 지고난 뒤 바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나 우스운 꼴이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내로남불, 말뿐인 쇄신임을 다시 증명한 것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제대로 쇄신해야 한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며 "당내 2차 가해는 단칼에 잘라내는 게 필요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곳곳에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선 다음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 중인 그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일문 일답.
프레시안 : 대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박지현 : 외면하고 싶었다. 혐오를 조장하고 폭력적인 공약을 내놓은 사람이 승리의 깃발을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론조사 결과 등을 봤을 때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한 분들도 있었지만 저는 이재명 후보가 이길 줄 알았다. 근소한 표차이로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어서 아쉽다. 그래도 더 많은 수의 국민들이 선택한 결과니까 아쉬운 결과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 5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프레시안 : 민주당의 패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지현 : 이번 대선에서 많은 분들이 민주당을 찍은 게 아니라 이재명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잘못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권력형 성범죄나 2차 가해를 했을 때 당에서 제대로된 대처를 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나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 4.7 재보궐선거 이후 쇄신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이 문제였다. 광역단체장 3명이나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해왔던 것, 말뿐인 사과가 결국 민주당이 패한 요인이다.
이틀전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내 많은 의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친상에 화환을 보내는 모습에 분노를 느꼈다. 이재명 후보를 비롯해서 저도 계속 쇄신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결국 선거에서 지고난 뒤 이런 모습을 바로 보이는 건 너무나 우스운 꼴이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내로남불, 말뿐인 쇄신임을 다시 증명한 것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있는 상황이고, 정치적 권력이 있는 위치에서 화한을 보내고 조문을 간다는 것이 피해자에게 또다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피해자에게는 민주당이 안 전 지사를 챙기는 인상을 준다. 피해자 뿐 아니라 2030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트라우마다. 피해자 중심주의로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과제가 정말 많다.
프레시안 : 20대 여성들 표가 이 후보 쪽으로 막판 집결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 흐름은 어떻게 보나.
박지현 : 민주당은 비록 이번 대선에 졌지만 여성들의 결집력을 보여준 것은 큰 의미였다. 더이상 정치권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이전처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말처럼 정의당을 응원했던 분들 가운데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결단을 해주신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여성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막판 지지를 보내주셨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여성을 배제하는 전략을 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부위원장의 대결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혐오와 연대의 구도로.
박지현 : 썩 유쾌하지 않았다. 혐오와 연대는 'vs'로 놓일 의제가 아니지 않나. 이 대표의 혐오전략은 실패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시점이니, 이 대표도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대선 초반, 이재명 후보가 2030 남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면서 '홍카단' 글을 공유하고, 남초커뮤니티를 순회하며 여성을 배제하는 정치에 합류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박지현 : 당도 후보도 대선 초반 여성을 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문제되는 글을 공유하기도 했고 유튜브채널 <씨리얼> 출연 무산 등 많은 분들이 분노했다. 그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짚고, 반성하는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드려야 한다.
프레시안 : 민주당은 왜 그런 의사결정을 했나.
박지현 : 이준석 대표의 혐오전략이 먹히는 것을 보고 당 내에서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 정말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후보도 당의 의견이니 일부 수용하려고 했던 것 같다.
조직적인 관성의 측면도 있다. 선대위 본부장단도 대부분 남성 의원들로 꾸려지고, 여성들이 설 자리는 없을 뿐더러 여성 국회의원 비율도 적다. 안에서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여성 의원들도 많이 있지만, 그분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지 않아왔다. 그 목소리를 정말 크게 내야 들릴까 말까한 상황이 여태까지 반복되어왔다.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혁신하고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
프레시안 : 박지현 부위원장의 합류 이후 흐름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지현 : 제가 들어온 이후에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시니 후보도 용기있게 혐오와 맞서는 선택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전부터 후보도 권력형성범죄에 대해 사과를 해야하지 않겠냐고 직접 말씀했고, 당 여성위에서도 사과를 해야한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다. 하지만 그 건의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킬'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 당 내 남성 의원들도 기득권 속에서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있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으려는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프레시안 : 앞으로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할까.
박지현 : 대선 초반 여성을 배제하려고 했던 시도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제대로 쇄신해야 한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혐오정치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힘이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공약을 폈기 때문에, 혐오가 시스템에 실현되지 않도록 막는게 민주당의 할 일이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서도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당내 2차 가해는 단칼에 잘라나가는 게 필요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곳곳에 보여주는게 필요하다.
젠더나 세대를 아울러서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오해를 푸는 것도 민주당이 책임지고 가져가야할 과제다. 여성의 문제를 젠더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제가 추적해온 디지털 성착취와 텔레그램 n번방은 젠더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아니었나.
프레시안 : 비대위에 합류하나.
박지현 : 쇄신을 돕고싶다. 아직은 고민중에 있다.
프레시안 : 석달 뒤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7번의 지방선거에서 여성 광역단체장 당선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박지현 : 민주당 당헌 당규에 명시된 것처럼 여성 30% 공천을 지켜야 한다. 또한 비대위부터 당 내 위원회 구성에 남녀를 동수로 구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프레시안 : 대선 직후 2030 여성들이 대거 입당했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박지현 :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맙고 감사하다. 엄청난 응원을 보내주셔서 많이 울기도 했다.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권에서 이용당하기 쉽다고들 많이 하는데, 설령 누군가가 나를 이용하려고 해도 나에게 든든한 '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갈 테니 그 길에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윤 당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박지현 :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폐지해야 한다. 얼마 전 본인은 "젠더 갈라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인터뷰한 걸 보았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한 공약과 발언들로 증명된 사실인데 발뺌을 하는 건 대통령으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전략적인 수단이었음을 인정하고 잘못했다는 반성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재정비하는 게 대통령이 보여줘야 할 태도다.
프레시안 : 부위원장도 정치인의 행보를 이어갈 계획인가.
박지현 : 일단은 그럴 생각이다. 정치인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 건방진 말일 수도 있지만 박지현같은 정치인만 나오면 정치인 괜찮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정치인이 되고싶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아픔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인의 필수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그 덕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지만 앞으로 잘 채워나갈 테니 믿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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