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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황홀한 봄! 섬진강 걸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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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황홀한 봄! 섬진강 걸을 때다

[2022년 4월 섬진강학교]  

황홀하게 핀 봄, 섬진강이 그리울 때입니다. 아름답고 예쁘고 수줍은 누이 같은 섬진강. 섬진강학교(교장 김용택, 시인)가 4월, 제14강으로 <시인과 함께 걷는 섬진강>을 준비합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 교장선생님은 이날 화려한 섬진강 가를 천천히 함께 걸으며 아름다운 강과 산, 문학에 대해 이야기해주십니다.

▲봄이 활짝 피어 더욱 아름다운 섬진강ⓒ섬진강학교

섬진강학교 제14강은 4월 30일(토) 당일로, 섬진강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교장선생님의 고향이기도 한 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약 4km의 비경을 휴식시간 포함, 약 3시간 30분 동안 여유롭게 걸은 후 천담에서 구담마을까지는 버스로 이동합니다. 교장선생님은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대하여, 그리고 강과 산과 문학에 대하여 구수하면서도 재미있게, 감동적인 이야기로 섬진강을 수놓아 주실 것이며, 이때 우리는 어느덧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이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천천히 걷는 교장선생님을 앞서 가는 사람은 교칙 위반입니다^^).

구담마을에서 교장선생님 특강과 간단한 간식타임을 가진 후, 버스로 전주시 한옥마을 식당가로 이동, 각자 늦은 점심식사로 제14강을 마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아름다운 시절> 등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들의 촬영지이며 때마침 4월이면 온갖 봄꽃들이 활짝 피어 더욱 화려한 꽃길이기도 합니다.

김용택 교장선생님은 섬진강가 작은 마을인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그 곳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인 덕치초등학교를 나와 덕치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을 하다 퇴임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며 그 작은 마을의 이야기들을 모아 시와 산문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시집 <섬진강> <맑은 날> <그 여자네 집> <나무> <연애시집> <그래서 당신> <속눈썹> 등과 산문집 <내가 살던 집터에서> <섬진강 남도 오백리> 등 전8권,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다> <할머니의 힘> 등이 있고,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섬진강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합니다.

눈이 온다. 산과 산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풀잎과 풀잎 사이, 집과 집 사이, 눈이 산을 그리고, 들을 그리고, 마을을 그리고, 산길 들길을 하얗게 그리며 눈이, 눈이 온다. 세상을 그리며 오는 눈송이들은 눈을 환하게 뜨고 강물로 무심히 사라진다. 눈이 온다. 산과 들은 희고 강은 큰 붓자국처럼 검고 힘차다.

꽃이 핀다. 산에 강에 언덕에 꽃이 핀다. 이 세상을 환하게 열어 제치며 꽃은 핀다. 강바람이 불고 꽃이 진다. 산을 날아온 꽃잎들을 강물이 싣고 간다. 세월처럼, 사랑처럼, 기쁨처럼, 슬픔처럼 강물은 꽃잎들을 싣고 흐른다.

오! 산아! 저문 산들이 마을을 데리고 강으로 내려와 얼굴을 씻고 일어선다. 달이나 뜨거라! 검은 산을 넘어 온 달이 강물 속에 눈부시게 부서진다. 강기슭을 허무는 달빛아! 소쩍새가 검푸른 산을 운다.

구절초가 피누나. 강가에 고마리 꽃이 피누나. 억새야! 산 아래 섬진강 강 언덕에 피는 희고 고운 내 님 손짓일레라. 나는 못 간다. 저 가을 섬진강 작은 마을 동구 단풍 물드는 느티나무 두고 나는 못 갈레라. 나는 못 갈레라. 내 핏속을 따라 흐르는 저 고운 강 두고 나는 못 갈레라.

강물이 흐르는 산 아래 작은 마을, 가난이 아름다웠던 작은 마을, 내 숨결이 살아난 작은 마을에 나는 세상과 숨을 쉬며 살았다네. 나는 산다네.

그 곳의 이야기를 찾아 간다.

▲이날의 섬진강 이야기는 교장선생님 생가에서 시작된다.ⓒ섬진강학교

김용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답사지인 섬진강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 꽃길을 걷는다

내게 무엇 하러 산중에 사느냐고 묻기에

問余何事栖碧山

웃기만 하고 답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한가롭다네

笑而不答心自閑

복사꽃잎 떠 흐르는 물 아득한데

桃花流水杳然去

이곳은 별천지라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네

別有天地非人間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오래 전이다. 늦가을 나는 이광웅 형님과 김남주 형님하고 우리 동네, 진메에서 천담 가는 이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 곁을 흐르는 물은 맑고, 산에 단풍은 화려하게 물들었는데, 그 단풍고운 산이 바람 한 점 없는 강물에 어리고 있었다. 산도 물도 허공도 나무도 풀잎도 참으로 해맑았다. 해 맑고 고운 가을빛의 한가운데에 우리들은 풀잎인 듯, 나무인 듯,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바위인 듯 그렇게 서서 산천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이 세상이 아닌 듯했다.

강물이 어찌나 그리 물에 적신 비단폭같이 화려한지. 푸른 하늘로 새들이 날고, 노랗게 물든 풀잎들, 물소리도 잠들어 버린 길, 우리들의 발길에 걸린 자갈들만 다그락다그락 뒤채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람이 산 흔적이 없는 별천지였다. 남주 형이 고개를 들어 산천을 둘러보며 말했다. “허어, 여그야말로 별유천지 비인간일세.” 형은 이백의 <산중문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이 말여 이런 데서 살아야 하는디.” 광웅이 형님은 그 특유의 수줍은 모습으로 웃기만 했다. 광웅이 형님 남주 형이 우리 집을 올 때마다 우리들은 이 길을 걸었다.

이 길, 이 길에는 산과 나무와 풀과 새들과 강물과 강가나 강물에 앉아 있는 바위들만 있다. 산을 세로로 자르고 막는 전봇대, 우리들의 시야를 이리저리 얼기설기 어지럽히는 전깃줄도 여긴 없다. 이 길은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길은 정리되고, 정돈되지 않은 자연의 길이다. 바위를 돌고, 바위 위를 지나는 물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새 소리는 공으로 들으면 되고, 사람의 손이 가지 않는 길가의 풀꽃들을 허리 굽혀 바라보면 된다.

보아라! 나는 꽃이다. 희고 붉은 고마리 꽃, 노랗고 붉은 물봉선화, 키 큰 마타리, 쑥부쟁이 꽃들이 서로 어울려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군데군데 그렇게 풀꽃들이 피어 있는 길에, 초가을은 온통 싸리 꽃이다. 깊고 깊은 오솔길을 만들어버린 싸리 꽃들이 그 길을 걷는 나의 몸을 스친다. 탄성과 탄복밖에 나오지 않는 이 꽃길에서 나도 너도 꽃이다. 그 곳에 가면 모든 것들을 잊는다. 삶의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진다. 그 곳에 가서 물을 보라! 산을 보라! 나는 새를 보라! 네가, 내가 스스로 꽃이 되어 피어나는 여기는 진정 사람이 살지 않는 별유천지다.

아! 달이라도 떠보라지, 이 길은 천상으로 가는 길이 된다. 달빛에 빛나는 저녁 이슬들을 그대들은 보았는지? 발등에 떨어지는 저녁 이슬로 그대들의 발등을 적셔는 보았는지? 달빛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어라. 흐르는 물을 따라 꽃길을 걸어라. 그대들이 휘어잡고 있는 두 손아귀의 모든 것들을 놓고, 홀로 걸어라. 그 강 길을. 흐르는 강물을 곁에다 두고 강물과 함께 걷는 삶의 행복함을 맛볼 것이다.

▲강물은 물에 적신 비단폭 같이 어찌나 화려한지...ⓒ섬진강학교

쓸데없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다 버릴 수 있다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우리 마을 진메에서 순창군 적성면까지 강길은 좁은 협곡에 굽이가 많고 때 묻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촌스러움을 간직한 마을이 산자락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진메마을에서 장천계곡으로 바삐 흐르는 강물을 따라 한 시간쯤 걸어 내려가면 툭 터진 천담마을에 이른다. 강물이 다시 굽이도는 곳에 서면 용골산이 보이는데, 빨치산이 기거했던 산이다. 천담에서 돌무덤, 선돌, 느티나무를 구경하고 아무 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살림살이들을 구경하며 우리네 쓸데없이 많기만 한 살림도구들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거기서 발길을 돌려 차근차근 산과 물을 구경하며 구담마을에 이르러 구담을 구경하고 징검다리를 건넌다. 그곳에 또 아름답고 웅장한 계곡이 펼쳐진다. 그 계곡을 지나면 우리는 쓸데없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다 버릴 수 있다. 가다가 지치면 아무 집에나 들러 빈 방을 얻어 잠을 자며 소쩍새 소리를 듣고, 밤바람 소리, 물소리를 들을 일이다.

깊은 밤 강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애써 힘들여 간직한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지, 우리가 아등바등 사는 날들이 그 얼마나 부질없는지, 삶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만이 이 세상 강물을 자기 마음 안으로 흐르게 할 줄 안다. 그럴 수 있을 때까지 강물을 마음으로 끌어들이며 밤잠을 설칠 일이다.

요강바위가 있는 장구목(장군목) 계곡을 빠져나가면 구미마을이 나온다. 구미 입구에 커다랗고 긴 두 개의 선돌이 길 양쪽을 지키고 있다. 구미 조금 못 미쳐 어치리에는 암수 두 개의 돌무덤이 마을 경계에 쌓여 있다. 어치리, 구미리는 동계면이다. 동계면은 옛날부터 없는 것이 없다는 곳이다. 이어 순창군 적성면이다.

진메에서 적성까지 차를 타지 않고 이 계곡을 걸으며 물소리를 따라가다, 물소리 저 혼자 가게 두고 강가 바위에 앉아 놀아보라. 신선이 따로 없다. 바위 그림자 물 아래 어리어 마음을 서늘하게 하고, 활짝 개도록 할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는 풀꽃, 나무에 피는 꽃, 풀잎 끝에 피는 꽃, 사운대는 나뭇잎, 붉게 물든 단풍잎, 깨끗하게 옷 벗은 정갈한 나뭇가지들이 산과 함께 강물에 어리리라. 가을날 강가의 갈대와 산자락 곳곳의 억새가 저무는 햇살 속에서 당신을 아름다운 세상으로 부르리라.

생각하고, 바라보면, 이 세상 이 땅의 풀잎 하나, 돌멩이 하나, 아무 것도 아닌 저 건너 작은 산 하나, 아름답고 예쁘지 않은 것들이 없다. 문제는 관심이고 애정이며 사랑이다. 어찌 감동 없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 계곡을 그냥 걸으며 보라. 아무 것이나 다 위대하며, 신비롭고, 다정하다. 그것은 본래 거기 있었고, 언제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좁은 강길을 걸을 땐 혼자 걸어도 좋다. 싸움이 잦은 부부는 싫증난 세상살이에 시든 사랑을 탓하지 말고 둘이 어깨도 부딪치고 손길도 스치며 이 계곡을 걸어보라. 계곡의 끝에서 그대들도 모르게 두 손이 꼭 쥐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랑을 얻어 찰떡같이 다시 붙으리라.

청춘 남녀는 서로의 사랑을 얻으려 도시의 복잡한 콘크리트 숲을 헤매지 말고 이 협곡을 지나가 보라. 아무 말 없이 이 계곡을 지나면서 여울지는 강물도 보고, 귀를 열어주는 새소리도 듣고, 작은 풀꽃에 마음도 주고, 문득 서서 강물에 빠진 산도 보고, 지는 해 아래서 적막한 산도 바라보면 이 계곡의 끝에서는 저절로 손이 잡혀 사랑이 강굽이를 돌며 여울지리라.

아름답고 예쁘고 때 묻지 않고 수줍은 누이 같은 섬진강. 잘난 것도 아니요, 빼어난 경치가 있는 것도 아니요, 유명한 사찰이나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시사철 사람들이 강과 산과 어울려 오래오래 사는 곳, 그곳에 가면 자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강물에 몸을 적시며 사는 섬진강 사람들ⓒ황헌만

강물 소리 듣고 사는 사람들은 소박하고 조촐하고 순박하다

사람들은 섬진강을 누이 같은 강이라고 한다. 여성적인 강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또 섬진강을 서러운 강, 봄소식을 전하는 강이라고도 한다. 이는 섬진강이 우리나라 5대 강에 속하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아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강의 흐름이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섬진강은 보이는가 싶으면 숨고, 숨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싶으면 슬그머니 얼굴을 내놓았다가, 다시 얼른 몸을 숨기며 굽이굽이 흐른다. 마치 수줍은 새색시가 옷고름을 만지작거리며 문설주 뒤에 얼굴을 숨기고 서서 낭군을 기다리는 모습 같다.

섬진강은 마을과 산과 나무와 바위와 소나무와 느티나무와 작은 풀꽃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을 자기 몸 안에 조용히 담고 그저 소리 없이 흐르다 부서지고 또 모였다가 부서지고, 부서지면 굽이치다 쉬고, 다시 흐른다. 섬진강은 그래서 통곡의 강이 아니라 흐느낌의 강이다. 그것도 크게 후드득거리는 흐느낌이 아니라, 여인네들이 잔잔한 어깨로 흐느끼는 것 같은 강이다.

섬진강을 따라가다 보면 강물에 몸을 적시고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많은데, 그 중 강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있으니 전북 임실 덕치면에 있는 마을들이다. 덕치면에서 제일 높은 산은 800미터쯤 되는 회문산이다. 그 다음이 500미터쯤 되는 원통산, 용골산, 성미산인데 이 높지 않은 산들 사이를 섬진강은 이리저리 감고 돌며 흐른다. 산과 산 사이가 넓지 않다. 모두 협소한 계곡이어서 논밭이 적다.

남도 지방, 특히 섬진강을 끼고 있는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입구나 뒤, 가운데, 그리고 마을 경계에 느티나무가 있다. 섬진강 마을의 문화는 어찌 보면 정자나무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자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어디를 가다가 감나무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오면 아, 마을이 가까워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느티나무는 섬진강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형식을 갖추고 사는 데 가장 필요한 나무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마을이라는, 마을의 표시이기도 한 이 느티나무 아래엔 꼭 돌무덤이 있었다. 덕치면 구담마을 뒤 고갯마루에도 느티나무와 돌무덤이 있다. 지금은 정자나무 그루터기만 남아있고, 돌무덤 또한 허물어져 흔적만 남아있다. 느티나무는 마을 뒤에도 있고, 마을 앞이나 가운데 적당한 곳에 서 있다. 마을 뒤를 지켜주는 느티나무는 뒤 당산 또는 할미 당산, 마을 앞이나 가운데에 있는 당산은 할아버지 당산이라고 부른다.

마을 앞 허전한 곳을 가려 동네를 안온하고 안정감 있게 해주는 느티나무는 덕치면 천담리 앞에 가면 볼 수 있다. 그 느티나무는 논 한가운데에 서 있다. 작은 느티나무와 큰 느티나무가 엇비슷하게 서 있다. 느티나무 두 그루는 참으로 조용하고 안정감 있고 단아하다. 이 느티나무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그 아래에 세워져 있는 내 키만한 예쁜 돌인데, 사람들은 선돌이라고 부른다. 단아하고 정감 있는 이 느티나무와 선돌은 마을을 더욱 마을답게 가꾸어주고 있어서, 어느 누가 이렇게 적당한 곳에 나무를 심어 가꾸고 돌을 세워 두었는지 신비롭기만 하다.

섬진강 마을 사람들의 삶은 강물을 닮았다. 어느 마을을 가나 강과 사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의 삶 이야기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강에 몸을 적시고 강물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들의 마을 문화는 소박하고 조촐하고 순박하다. 꾸민 듯 꾸민 것 같지 않은 농민 공동체 문화는 말 그대로 자연이었다.

▲여기는 별유천지인가.ⓒ섬진강학교

지금도 눈에 선한 그 예쁜 산수국, 그 꽃

나는 1990년부터 91년까지 2년에 걸쳐 우리 동네 진메에서 천담 가는 길까지 강길을 50분을 걸어 출퇴근했다. 강은 두 개의 활 끝을 이어놓은 것같이 굽어 있었다. 숫자 ‘3’처럼 생겼다. ‘3’자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길이가 4킬로미터다. 지프나 트럭은 힘들게나마 지나갈 수 있었지만 승용차는 다니기 어려운 이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묵은 길이었다.

강의 한 굽이가 끝나는 곳이 살바위였다. 물이 무섭게 부서지는 곳이다.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났을 때 이 굽이에서 물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어지러울 정도로 물은 무섭게 흘러갔다. 아침마다 10리를 걸어 다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나는 이슬에 젖은 옷을 학교에 가서 갈아입곤 했다. 그러나 내겐 출퇴근하며 걷던 그 강변의 10리 길이야말로 천국의 길이었다. 나는 그 강길 10리를 오간 2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봄이 되어 저리소에 눈이 녹고 햇빛이 돌아오면, 산 위엔 진달래꽃이 붉게 산에 불을 질렀다. 바위 난간이나 바위 틈틈이 핀 진달래꽃은 나를 느릿느릿 걷게 만들었다. 나는 그제야 진달래가 응달에 많이 핀다는 것을 알았다. 진달래가 지고 나면 하얀 조팝나무꽃들이 철쭉과 어울려 눈부시게 피어났다. 철쭉꽃은 길 아래 강가 커다란 바위 사이에서 피어났다. 무더기로 피어나는 철쭉꽃은 물에 어리어 강물까지 붉게 물들였다.

철쭉꽃이 지고 나면 찔레꽃이 피어 흰 무명띠처럼 강길을 휘돌아 감았다. 내가 걷는 길가에는 봄부터 가을 끝까지 온갖 풀꽃들이 피었다. 눈이 오는 겨울이면 산과 산 사이로 하얀 눈송이들이 날렸고, 나뭇가지에는 서리꽃이 피었다. 작은 새들이 날고 오리들이 강물에서 놀았다. 나는 그 꽃들을 사진으로 찍어놓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학교에 가고 어떻게 집에 오는지도 모르게 자연에 빠져 그 길을 오갔다. 그렇게 걸어서 오가는 2년 동안 나는 그 길에서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따금 트럭이나 지프차가 지나갈 따름이었다.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나는 목이 말랐다. 목이 말라 늘 물을 마시던 옹달샘으로 바삐 가고 있는데, 꼭 누군가 뒤에서 자꾸 나를 부르는 것도 같고, 옷깃을 잡는 것도 같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물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물소리는 길섶 풀이 우거진 곳에서 들렸다.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오는 풀섶을 헤쳐 보았다. 거기 보라색 산수국이 피어 있었다. 아! 그 꽃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는 그 꽃에 금방 반하고 말았다. “아, 네가 날 불렀구나. 날 불렀어.”

나는 가만히 산수국을 들여다보다가 산수국 작은 나무 주변의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손으로 받아먹었다. 학교 가는 것도 잊고 한참 동안 꽃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꼭 누군가 나를 가만가만 부르는 것도 같고,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것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눈에 선한 그 예쁜 산수국, 그 꽃.

이른 봄 어느 비탈진 산길을 지나는데, 구슬보다 더 작은 돌멩이 하나가 굴러왔다. 땅이 얼었다 녹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빠시락이었을까, 뽀시락이었을까, 다그락이었을까, 딸그락이었을까. 나는 흙같이 작은 자갈 하나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에 지구가 깨어나고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참새 가슴이 뛰는 맥박보다 더 미미하던, 그 돌멩이가 굴러가는 소리가 내 가슴을 울리곤 한다. 깨어나고 깨어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그 미세한 감정을 나는 사랑한다.

오, 아름다웠다. 봄날의 진달래꽃이여, 건드리면 구린내가 나는 닭의장나무꽃이며, 눈 속에 하얗게 파묻힌 들국화며, 며느리밥풀꽃이나, 고마리꽃, 마타리꽃, 싸리꽃, 철쭉꽃이며, 청명한 가을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오리들의 눈부신 날갯짓이며, 가을바람에 흔들리던 저물녘의 억새들이며, 물소리를 따라가다가 물소리를 잃어버리던 내 발걸음이며, 소리 없이 흐르던 저문 날의 물이며, 늘 나를 따르던 작은 산들이며, 저문 날 강물에 몸을 담근 적막한 산그림자들이며. 아! 이 세상 모든 풀과 나무에 피던 꽃들이며, 그런 것들이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섬진강 걷기를 마치고...구담마을에서ⓒ섬진강학교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카페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하여 섬진강학교 기사(4월)를 확인 바랍니다. 섬진강학교는 동호회원들의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자는 자신과 동행자의 건강을 위해 최종 백신접종을 완료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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