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기금은 2021년 8월에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새로운 기금으로, 2022년 정부예산에 총 2조 4천억원 규모로 조성되었다. 법에 따르면 이 기금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긴박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용도로 집행된다.
법에 따라 이 기금은 기획재정부가 관리, 운용하고 각 부처가 사업의 집행을 담당한다. 기금운용 첫 해인 2022년에 기획재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9천억원,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및 녹색금융 지원에 6천억원, 취약산업, 고용, 지역 등 공정한 전환에 2천억원, 탄소중립 제도·기반구축에 6천억원을 사용한다는 기금운용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국회예산정책처의 '2022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기후대응기금 소관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동 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사업을 수행하는 각 부처는 2022년 예산안의 첨부 서류로 국회에 제출된 성과계획서에서 기후대응기금 세부사업을 모두 성과관리 비대상 사업으로 선정하여 성과지표와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78쪽)고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산업통상자원부가 기후대응기금을 집행하는 사업에 관한 성과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국가재정법 제85조에 따르면, 해당 사업이 기관의 상위, 하위 목표와 어떻게 연계되고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의 여부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성과지표를 작성하는 성과계획서는 의무사항이다. 즉 산업통상자원부가 성과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은 법을 위반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모든 부처가 짠 듯이 법을 위반하다니 어찌된 일일까?
사업을 수행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기금이 기획재정부 소관이라며 성과관리 비대상 사업으로 분류했고, 기획재정부는 사업시행부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성과관리 비대상 사업으로 분류해 성과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서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미뤘던 이야기이다. 보통 결산을 할 때 성과계획서에 따른 성과지표별 목표의 달성도를 점검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점검할 기준이 없어진다.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집행하는 사업들은 성과를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일까? 이 중요한 기금의 운용방향을 잡는 기획재정부도, 사업집행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도 성과관리를 하지 않겠다니 황당할 뿐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기후대응기금에서 올해 49개 사업에 5,900억원을 집행하고, 이 49개 사업 중 28개 사업은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이고 21개 사업이 새로 편성되었다. 예산이 순증된 신규 사업들은 다음과 같다.
보다시피 대부분의 사업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기술 개발사업이고, 따라서 사업의 목표와 성과지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산업통상자원부는 기금의 운용부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성과관리 비대상 사업으로 분류했으니, 이 사업의 성과는 누가 측정하나? 그렇다면 왜 한 사업 당 수십억 원씩 예산(이라 부르고 세금이라 읽는 돈)이 집행되어야 할까?
국회예산정책처는 "그린뉴딜 사업 중 기후대응기금 사업의 성과계획서 미작성은 그린뉴딜 사업의 공식적인 추진 목표와 성과점검 방식이 부재한 문제를 초래한다"(79쪽)고 지적했다. 목표와 점검이 없는 위기대응이라니,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대응이다.
결국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말하고는 있지만 산업통상자원부 관료들의 머릿 속은 '하던 거 계속 하면 되지', '이 사업은 누가 책임지지?', '이런 건 우리 담당 아니야',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사이를 오가고 있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만 그럴까? 기금의 운용부처인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머릿 속은 어떨까? 다른 중앙행정부처 관료들의 머릿 속은 또 어떨까? 기후대응기금 외의 다른 예산사업들은 또 어떨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게 되면 정부는 대체 뭐하러 있냐는 나쁜 생각(?)으로 빠져들게 된다. 관료들의 관점이 바뀌어야 정책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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