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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기사 언론사=파산'의 위험천만한 언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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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기사 언론사=파산'의 위험천만한 언론관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언론 인프라로 자리 잡는다면 공정성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2일 정책공약 홍보 열차 안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윤 후보의 '언론 정책'의 일단을 드러낸 이 말은 여러 가지 점에서 놀랍고 우려스럽다.

첫째, 윤 후보 특유의 '동문서답'이다. 이 말은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혁 방안'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이야기다.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와 편집권 독립의 제도적 보장은 해묵은 언론개혁 숙제다. 시민추천위원회, 배심원제, 공론화위원회 설치 등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과 경영진 선출 과정의 정치권 영향력 배제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윤 후보는 어떤 방식의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기자가 물은 것이다. 그런데 윤 후보는 '허위 기사를 쓰면 파산시키는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다.

둘째, 발상의 극단적 과격함이다. 윤 후보는 "미국 같은 경우에 규모가 작은 지방 언론사는 허위 기사 하나로 회사가 (파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말한 미국의 예는 일리노이주의 소규모 언론사 <앨턴 텔레그래프>의 파산 사례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그 지역 한 건설업자가 조직범죄에 연루돼 있는지를 문의하는 메모를 법무부에 보냈다가 당사자로부터 '신용 하락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송을 당해 1980년 초 법원으로부터 9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판결을 받고 파산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악의적 오보를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엄청난 금액을 배상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언론사 파산' 같은 극단적 경우는 미국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다. <앨턴 텔레그래프>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과도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허위기사=파산'은 말하자면 '거짓말하면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섬뜩한 사고 방식이다. 검찰총장 시절 균형과 절제를 상실한 수사로 일관한 윤 후보의 저돌적 모습이 겹쳐져 다가온다.

셋째,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하자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극렬히 반대해온 국민의힘 당론과도 동떨어진 이야기다. 언론중재법은 시행이 돼도 징벌 효과가 매우 위협적인 수준까지는 아닌데도 국민의힘은 "언론 재갈 물리기"라며 한사코 반대했다. 윤 후보도 지난해 8월에는 "과잉금지 등 헌법상 원칙 위배"라고 반대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과잉' 차원을 넘어 '사형 선고' 이야기를 하고 나서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윤 후보의 발언이 파문을 빚자 국민의힘은 "허위 보도에 대해 책임을 충분히 져야 한다는 원론적 이야기일 뿐"이라고 황급히 해명하고 나섰으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게 원론 수준의 이야기라면 윤 후보가 강조한 "강력한 시스템"이니 "언론의 인프라" 구축 등의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넷째, 윤 후보의 '작은 언론사 무시'는 이번 발언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가 "미국의 작은 언론사" 예를 든 것처럼 결국 파산을 걱정할 언론사는 소규모 언론사들이다. "대형 언론사가 그런 소송 가지고 파산을 하겠냐"는 윤 후보의 발언도 '언론사 파산'이 소규모 언론사를 겨냥한 것임을 보여준다. 윤 후보는 이미 '고발사주' 의혹을 처음 제기한 <뉴스버스>를 향해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인터넷 매체"라고 비판하는 등 작은 언론사는 신뢰성이 없다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몇 차례씩 했다. 그의 '언론사 파산' 발언은 '작은 언론사의 의혹 제기'로 쌓인 개인적 앙심과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섯째, 윤 후보의 캠프에 대선 역사상 가장 많은 언론인 출신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이다. 이재명 후보 쪽에도 전직 언론인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규모가 윤 후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디어오늘>이 1월 초에 보도할 무렵 파악된 윤 후보 캠프의 전직 언론인 숫자는 이미 70명을 넘어섰고 그 뒤로도 더 늘었다. 이렇게 선거 캠프에 언론인 참여자가 많으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신문·방송사 기자들을 많이 확보한 캠프일수록 대(對)언론 로비가 쉬울 건 뻔하다. 로비는 결국 '얼굴 장사'고 누구든 옛 동료를 모른 체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당 언론사 동향 파악도 쉬워질 테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현재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맹렬히 활약하고 있는 전직 언론인이 현역 시절인 지난 2007년 자신이 일하던 신문에 쓴 칼럼의 한 대목이다.

전직 언론인들이 대선 후보의 '언론 로비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캠프에 들어갔다면 언론 문제에 대해 충실히 자문하는 것도 그들의 의무 아닌가. 후보에게 언론 관련 공부도 시키고,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 방안 등의 공약도 만들어주는 게 마땅하다. 게다가 윤 후보 캠프 언론자문위원회 위원장은 공영방송 부사장 출신이다. 그런데도 윤 후보가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 문제에 엉뚱한 동문서답이나 하는 것은 결국 전직 언론인들의 직무유기다.

만약 윤 후보의 발언을 이재명 후보가 했다면 언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 옥죄기'라고 벌떼처럼 공격했다. 허위 기사의 '양형 기준'을 조금 높이자는 법 개정에 대해서도 그 정도였는데 하물며 여당 후보가 '사형'을 말했다면 아마 초토화 수준의 융단폭격이 무자비하게 가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윤 후보의 발언은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봐주고 넘어간다. 이것이 바로 우리 언론의 현재 모습이다.

윤석열 후보는 언론이 키운 후보다. 검찰총장 시절의 '인큐베이팅'을 시작으로 언론의 극진한 보살핌에 힘입어 정치적으로 '속성 재배'됐다. 이런 과정에서 윤 후보의 왜곡된 언론관도 차곡차곡 쌓인 것 같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나 언론을 절대 참지 못한다. 소규모 언론사에 대한 무시는 기본이며, 언론이 제기한 자신에 대한 의혹은 무조건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조회 논란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 땐 282만여건"이라고 '사실 관계'를 환기한 <한겨레>에 대해 "민주당 기관지임을 자인하는 물타기 기사"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1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는 "정권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공영방송을 국민 세금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언론 문제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는 캠프 출신의 언론계 낙하산 인사, 검찰·감사원 등을 동원한 전방위 언론 압박, 비판적 언론에 대한 광고 탄압 등 시대 역행적인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이 과정에서 방송사 기자들의 대규모 해직 사태도 겪었다.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언론 문제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인식과 공약에 대한 매서운 검증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2일 오후 전남 순천역에서 정책 공약 홍보를 위한 '열정열차'에 탑승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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