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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가득한 차별금지법, 뭐가 그리 힘든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차별금지법 1인 시위,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다

사연 많은 차별금지법

참 사연 많은 법이다. 좀비(Zombie) 같다. 폐기되어도 살아 돌아온다.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는 사연도 많은 차별금지법.

2020년 6월 29일 차별금지법이 21대 국회의 담장에 걸렸을 때의 감격을 기억한다. '무슨 법 하나 발의에 감격 씩이나 하느냐'고 묻는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법의 내용을 모르거나, 도처에 널린 차별의 축을 자본의 힘으로 걷어낼 재력이 있거나.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잘 모를 수 있다. 어떻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나.

이 법은 당신과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 소위 '비빌 언덕'이라는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 취업 걱정, 집 걱정, 건강 걱정으로 불안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앞 문장에 '단언컨대'를 붙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좋은 법을 조금이라도 알려보려고 일상시간을 조각내서 거리로 나가보았다. 이 글은 그 '조각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나섰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나누고 싶다. <프레시안>은 이미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100명의 선언 캠페인 '평등의 에코(echo-100)'를 진행했다.(☞ 바로 가기 :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 그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시민으로 지면을 빌려 불씨를 보태고자 한다.

꺼질까 봐 불안했던 차별금지법 불씨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피해자가 쏘아 올린 국민동의 청원이 2021년 6월 14일,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여론이 뜨거웠다. 피해자의 사연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터에 진입도 하기 전에 다수의 여성들은 면접부터 걸림돌이 있다. 가임기 여성이기에 들을 수 있는 이른바 '결남출(결혼·남친·출산의 줄임말)' 관련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필자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이 질문들은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질문이지만, 취업을 앞둔 개인이 일일이 차별적인 질문에 정면돌파로 대응하기는 힘들다. 모두가 투사가 되기는 힘든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이런 경험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결집했기에 가능했던 뜨거운 여론이었다.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는 이 법이 또 흐지부지 사라질까봐, 이 불씨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법사위 회부 후 한 달이 되기 전, 지역에서라도 자꾸 눈에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1호선 지하철역 회기역과 외대앞역에서 '정의당동대문구위원회'의 이름으로 당원들과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일주일에 3일. 보통은 한 시간, 바쁠 때는 30분의 조각 시간을 냈다. 아프거나 바빠서 진행하지 못한 2주 정도를 제외하고, 27주차 실천을 '신나게' 주도했다(지금도 정의당 동대문구위원회 당원들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1월 27일, 27주차까지 실천 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정의당 동대문구위원회에서는 차별금지법 현수막을 종종 걸었었다. 길어야 이틀 걸리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소중한 당비도 아까우니 몸으로 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인터넷 기사도 클릭하지 않거나 오해한 채로 넘기기 쉽다. 길에 나서면 질문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망설일 것이 없었다.

그렇게 2021년 7월 13일. 더운 여름부터 시작했다.

차별금지법 1인 시위로 회기역에서 만난 사람들

회기역에서 차별금지법 피켓을 들며 말을 붙여준 시민들이 있다. 다음은 그 중 기억에 남는 대화이다.

#1. 할머니 한 분이 물으셨다.

"이게 뭔데 이렇게 더운데 자꾸 나와싸?"
"아, 이거 법 만들자고, 설득하려고 나왔어요."
"이거 만들어지면 뭐가 좋아?"
"할머니, 버스 계단 높잖아요, 무릎 안 아프세요?"
"아파죽겠어. 얼른 타고 내려야 하는데 마음도 급한데 계단 높아서 힘들어."
"이 법 만들어지면요, 저상버스라고, 가끔 버스 탈 때 계단 없이 평평한 것 있잖아요? 그 버스로만 만들 수 있어요. 나이 들어서, 아프다고 돌아다니는 것 차별받으면 안 되잖아요."
"그럼 좋은 거네? 열심히 햐. 그러면, 내가 응원할게"

2. "정신차려, 미친X아,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10주 정도 같은 말을 들었다. 몇 주 정도는 그냥 듣다가 일부러 욕하는 그 할머님을 몇 발자국 졸졸졸 따라가며 "저희 N주째 만나고 있어요. 잘 다녀오세요"라고 외쳤다. 그러던 어느 날 피켓을 들지 않은 날 회기역을 이용하다가 이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내가 그 '미친X'인지 모르고 종교를 권하는 유인물을 나눠주셨다. 감사히 받으며 인사드렸다.
"저희 10주째 만나네요. 저도 믿는 사람입니다. ○○○ 믿는다고 차별받지 않도록 제가 더 열심히 피켓 들겠습니다."
그 뒤로 그 할머니는 욕을 하지 않으셨다(그렇다고 인사를 해주시는 않았다)

3. "왜 이런 걸 하고 있어."

"정의당은 노동을 해야지. 정의당 노회찬 의원님 살아 계실 때는 안 이랬는데" 라는 말을 건네는 시민들이 많았다. 웃으며 이렇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노회찬 의원님도 예전에 이 법 발의하셨는데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어요. 우리 노회찬 의원님 좋아하시면 이 법 제정되도록 응원해주세요."
"아니, 정의당이 노동을 해야지."
"에이, 선생님. 당연히 노동해야죠. 이거 노동입니다. 저기, 건물 올리는 것 보이시죠? 저기 ○○건설. 저기서 일하는 노동자들 정규직일까요?"
"대부분 비정규직이겠지?"
"그러니까요. 저렇게 위험한 일 하시는 분들 당연히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런 상황, 이 법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케이, 알았어. 비정규직 챙겨준다? 좋네."

4. 위와 비슷한 사례로 이런 사례도 있었다.

"아가씨, 정의당이 예전에 민주노동당이었던 거 알아요? 그때 권영길이라고 있어, 그때는 잘나갔는데, 이런 거 하니까 정의당이 지금 잘 안 나가는 거야."
"선생님, 진보정당 지지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권영길 의원도 예전에 차별금지법 발의했었어요. 진짜 앞서나갔지요?"
"아, 그래? 다 좋은데, 이거 그 성소수자 좀 그렇잖아. 그건 좀 빼야지."
"선생님, 커피 드시고 화장실 가세요?"
"커피? 먹지? 화장실도 왜 갑자기?"
"선생님은 화장실 맘대로 가실 수 있으니까 커피도 그냥 마실 수 있는데, 제 친구는 화장실 맘대로 못가니까, 커피가 뭐예요, 물도 못 먹어서 아파요."
"뭐, 성소수자야?"
"성소수자도 화장실 갈 수 있어야지요. 이 법 있으면 화장실도 한 개 더 만들 수 있어요. 그럼 커피 마시는 일상도 누릴 수 있겠죠?"
"아니, 그 돈도 더 들고, 좀 그래."
"같이 쓰는 화장실 하나 더 생기면, 선생님도 화장실 모자랄 때 들어가실 수 있고, 엄마가 아들 데리고 들어갈 수 있고, 아빠가 딸 데리고 들어갈 수 있어요. 아이들 돌보기도 더 좋아요."
"음. 그건 그렇겠네. 괜찮네. 요즘 아빠들도 애 보니까"
"선생님, 그럼 응원해주시는 걸로?"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볼게."
"커피 마실 때마다 생각해주세요."

5. "여성이라고 차별받는다고 생각하세요?"

어떤 남성분의 질문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 분은 그건 내가 능력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황당한 논리에 조곤조곤 앞에 기술한 면접 이야기부터 직장 내 연봉 협상에서 가임기 여성이라는 이유로 결혼 후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그러니 연봉을 올리기 어렵다는 말을 들으며 노동에 대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이기에 겪었던 차별 경험부터 5인 미만 사업장이기에 노동법 차별을 받은 경험들을 말했다.
"그럼 그만두면 되잖아요. 그런 회사 다닌 사람이 능력이 없는 거죠."
"선생님,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사업장의 80%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20% 안에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어, 그렇게 많아요? 그건 몰랐네요."

대화를 하는 날보다는 조용히 분주한 출퇴근으로 지나는 날도 많았다. 훈훈하지만은 않았던 대화도 있었던 반면, 응원의 대화도 있었다. 학생이 많이 다니는 출구에는 학력 차별과 주거 차별과 관련한 피켓을 들었고, 연령대가 높은 시민들이 지나는 곳에서는 비정규직차별과 관련한 피켓을 들기도 했다.

ⓒ프레시안

차별금지법 제정은 의지의 문제

다가오는 대선, 네거티브 공방으로 정치와 언론에서 민생이 지워질 때, 출퇴근길 잠시라도 모두의 삶을 지키는 차별금지법을 마주하는 찰나의 조각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법 하나 발의되는 것이 뭐가 이렇게 고될까 싶다. 집 부자들을 위한 종부세 인하를 위해서는 국회의 거대 당들은 속전속결 담합으로 통과 시켰는데, 민생이 가득한 차별금지법은 뭐가 그리 힘들어 염치를 버리고 '나중에'만 선택하는 것일까. 차별금지법 제정은 정치의 의지의 문제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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