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50여 일 앞둔 현재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윤석열-안철수 후보단일화다. 두 후보는 과연 후보단일화 협상을 시작할까, 한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 후보단일화 결정 방식은 무엇이며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아니면 끝내 후보단일화가 불발된 상태로 대선을 맞이할까…. 궁금증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지만 이런 의문에 답을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보 본인들조차 모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 후보단일화에서 도출해낸 '공식'과 '이론'에 대입해 미래를 유추해보는 것이다. 대선 후보단일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 논문이 그리 많지는 않다. 조한규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전 세계일보 사장)의 박사학위 논문인 <한국 대통령선거의 연합정치 연구>, 지난해 9월 <후보단일화 게임>이라는 책을 펴낸 황두영씨의 석사학위 논문 <후보단일화의 성사조건 분석>, 손성민·김준석의 <후보단일화 그리고 권력나누기의 메커니즘-한국 대통령 선거연합 형성의 신호게임(Signaling Game) 접근> 등이 눈에 띄는 연구물이다. 이 논문들은 '합리적 선택이론' '게임이론' 등의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후보단일화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 분석 틀을 활용해 윤석열-안철수 후보단일화를 예측해보면 어떤 분석 결과가 나올까.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후보단일화의 출발점은 두 후보 모두 독자적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부터 시작된다.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고 선거를 치르면 기껏해야 2, 3위에 그칠 것이라는 절박감에 사로잡혀야 비로소 오월동주(吳越同舟) '한 배'를 탈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후보단일화는 '대등한 후보단일화'와 '종속적 후보단일화'로 나뉜다.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거의 없을 때 이뤄지는 게 전자이고, 지지율 격차가 큰 상태에서 이뤄지는 게 후자다.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는 대등한 후보단일화의 대표적인 예이고, DJP연합으로 불리는 김대중-김종필 후보단일화는 종속적 후보단일화의 좋은 예다. 종속적 단일화는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낮은 후보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대가로 후보를 포기하게 만드는 일종의 '흡수 통합'이다.
대등한 후보단일화는 어느 때 가능한가. 이것은 지지율이 엇비슷한 두 후보가 각자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양쪽의 승리 가능성이 50대 50인 팽팽한 균형 상태, 어느 쪽으로 단일화가 이뤄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단일화 협상 개시의 엔진인 셈이다.
윤석열-안철수 두 후보의 지지율을 보면 현재로서는 윤 후보의 지지율이 안 후보보다 훨씬 앞서 있다. 여론조사 기관과 시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윤 후보는 대략 30%대 이상인 반면 안 후보는 아직 15%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지지율 격차만 보면 윤 후보가 주도하는 흡수통합식 후보단일화를 생각하게 되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안 후보는 자신의 지지율이 곧바로 윤 후보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실제로 윤 후보가 여러 악재로 비틀거리는 사이 안 후보의 지지율은 한때 무서운 속도로 수직상승했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자신의 지지율이 윤 후보와 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흡수합병식 단일화가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누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안 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단일화 이후의 본선 승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도 안 후보가 윤 후보보다 높게 나오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안 후보가 단일 후보 자리를 선뜻 양보할 리는 만무하다.
다른 한편으로, 후보단일화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오히려 지금이 후보단일화 협상의 적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는 윤 후보가 앞서지만 후보단일화 지지율은 안 후보가 앞서는 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후보단일화 설문조사 문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엇갈리게 나올 수 있다. 윤-안 후보 모두 '설문조사 문항만 유리하게 만들면 내가 단일화 후보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양쪽이 모두 후보단일화에 대한 절박감이 별로 없어 보인다. 윤 후보는 독자 승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굳이 후보단일화 경쟁이라는 '위험한 모험'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지지율이 더 올라간다고 확신하고 있는 안 후보는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더라도 자신의 지지율이 높아진 뒤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지금이 후보단일화 협상의 적기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후보단일화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만약 안 후보의 지지율이 윤 후보에 근접해지면 어떻게 될까. 윤 후보는 단순 지지율이 앞서는 지금도 단일 후보 승산이 불투명한데 지지율마저 비슷해지면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은 훨씬 낮아진다. 윤 후보로서는 후보단일화 협상에 응하기 힘들어진다. 만약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멈추면 어떤가. 반대급부 보상을 통한 흡수통합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수 있을 것이다.
후보단일화의 핵심은 권력 공유다. '단일화된 대선 후보'를 한 사람이 독점하는 대신 단일화 후보가 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것은 대등한 후보단일화든 종속적 단일화든 마찬가지다. DJP연합은 국무위원 배분 등 공동정부 구성과 운영에 대한 철저한 권력 공유에 기초해 이뤄졌다. 반면에 노무현-정몽준,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권력 공유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없었다. 그래서 전자의 후보단일화는 결국 파기됐고, 후자는 '아름다운 단일화'에 이르지 못했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제 아래서 권력의 공유는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윤석열-안철수 후보의 경우는 어떨까. 권력의 속성 자체가 공유와 나눔이 쉽지 않은데다, 두 사람의 캐릭터도 그런 것을 용인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두 후보가 후보단일화에 나서려면 이번에는 대선 후보가 못 되더라도 '차기 대선의 가능성'은 커진다는 판단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윤 후보의 경우 정권교체론 강풍 말고는 자체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대선 재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안 후보의 경우도 여야 거대 정당 두 후보에 대한 비호감의 영향으로 뒤늦게 지지율 상승의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이다. 결국 양쪽 후보 모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음 기회는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후보단일화는 결국 협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협상에는 양쪽의 관계, 협상력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개입돼 있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과 친밀감은 매우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나 감정적 대립은 후보단일화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다. 그런데 지금 두 후보 진영의 관계를 보면 감정적 대립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후보단일화를 추진할 노련한 중재자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그나마 후보단일화 판을 만들 사람 정도로 꼽혔으나 이제는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무엇보다 지지율이 너무 출렁이는 것이 후보단일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지율이 고착되고 더는 변동이 없다고 판단될 때야 각 후보가 비로소 후보단일화 문제에 대한 결심을 굳힐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지지율이 너무 출렁인다. 며칠 사이에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거나 수직상승하는 모양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두 후보 모두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마음을 결정하기 어렵다.
물론 과거 대선 후보단일화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리란 보장은 없다. 변화무쌍한 정치의 속성상 후보단일화 물길이 어디로 흐를지 속단하기란 힘들다. 다만 과거 사례에서 도출된 이론적 틀에 대입해보면 윤-안 후보단일화 가능성은 어쨌든 낮아 보인다.
후보단일화는 '권력투쟁 전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사회 균열을 부분적으로라도 해소하는 '사회통합 전략'의 측면도 있다.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은 DJP연합의 경우 이념적·정책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결속을 통해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균열 완화와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탈색을 통한 사회적 유대 강화(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정치적 무관심층의 정치 참여 유도와 '새정치'의 과제 제시(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 등 과거 후보단일화에는 나름 사회통합적 측면이 있었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윤석열-안철수 후보단일화는 권력투쟁 전략 이외의 어떤 사회통합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런 메시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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