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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는 추한 삶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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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는 추한 삶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최재천의 책갈피]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2018년 69세의 어떤 네덜란드인이 서류상의 나이를 고쳐달라며 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기가 느끼는 나이는 49세인데 공식 기록상의 나이 때문에 일과 연애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이유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그랬던가. "죽음보다는 추한 삶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지난해 말 달력을 선물받고는 나도 모르게 '으앗.' 탄식을 내뱉었다. 달력에는 '범 호虎', 호랑이띠라고 적혀있었다. 그렇다면 다 다음 해는 토끼띠가 되고 그때 나는 어린 시절 동네 할아버지들이 맞이했던 '환갑'이 된다는 것이었으니...

체코의 오페라 <마크로풀로스 사건>이 있다. 16세기에 태어난 가수 에밀리아 마크로풀로스는 마법사가 준 불로장생의 영약을 마셨다. 3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그녀는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에 싫증이 난다. 자식들, 친구들은 모두 한참 전 떠나갔다. 에밀리아는 노래한다. "당신들은 다 죽을 거야. 운이 좋기도 하지 … 오, 주여, 어둠의 문을 열어주소서, 제가 그 문으로 사라질 수 있도록." 그럴 것이다. '죽음이라는 지평이 없는 삶은 기나긴 악몽'일 것이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성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사실 1948년생이다. 하지만 이 책은 '50세 이후, 젊지 않지만 늙지도 않은, 아직은 욕구가 들끓는 이 중간 시기'를 살펴본다. 왜 하필 이 시기냐고, 가장 문제적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인간 조건의 중대한 문제들이 날카롭게 부상한다. 오래 살고 싶은가, 치열하게 살고 싶은가? 다시 시작할 것인가, 방향을 꺾을 것인가? 재혼 혹은 재취업을 하면 어떨까? 존재의 피로와 황혼의 우울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크나큰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까? 회한이나 싫증을 느끼고도 여전히 인생을 잘 흘러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서양 사람들에게 인생이라는 여정의 뿌리, 천신만고 끝에 고향 섬으로 돌아갔으나 끝내 불행해진 오디세우스를 떠올려보자.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최대한 늦게 도착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그대는 여행을 속히 마치지 마시오./여행은 오래 지속될수록 좋고/그대는 늙은 뒤에/비로소 그대의 섬에 도착하는 것이 낫소./길 위에서 그대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길은 인생이다. 우리는 길 위의 여행자다. 우리는 좀 더 철학적 삶을 고민해야 한다. 강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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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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