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플랫폼 종사자법)'에 플랫폼 노동자를 우선 노동자로 보고 이들에게 노동3권을 포함한 노동관계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표명했다. 일감 배정 앱을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에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워야 한다고도 했다. 단,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관계법 체계로 보호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인권위는 30일 전원위원회 결정을 거쳐 위와 같은 내용의 '플랫폼 종사자법에 대한 의견 표명(이하 의견서)'을 발표했다. 이번 의견서는 사실상 정부의 플랫폼 종사자법안인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하 장철민안)을 검토해 나온 것이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 대해 인권위는 "ILO, EU, OECD 등은 플랫폼 종사자 등 새로운 형태의 노무제공자에 대해 노동관계법에 의한 보호를 제시하고 있다"며 "한국에도 이 같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근본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시일이 소요될 수 있고 확산 추세에 있는 플랫폼 노동 관련 입법이 불비한 현실을 고려해 법률안 중 수정, 보완이 필요한 사항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 "플랫폼 노동자 우선 노동자로 보고 노동3권도 부여해야"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과 관련해 인권위는 "플랫폼 종사자를 우선 근로자로 추정하고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할 책임은 사용자에게 지우는 '근로자 추정제도'를 플랫폼 종사법에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플랫폼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 즉 노동3권 명시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철민안에는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경우 플랫폼 종사자법에 앞서 노동관계법을 적용하되 이를 입증할 책임은 '근로자'가 지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근로자성에 관한 분쟁은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소송으로 이어지는 긴 과정을 거치는데 개인이 이를 다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플랫폼 종사자가 실질적으로는 근로자임에도 외형상 개인사업자인 경우 '근로자 아닌 자'로 잘못 분류되면 노동관계법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업은 사용자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법률안에 일감 배정 앱을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도록 규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플랫폼 종사자가 복수 사용자 중 하나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면, 이로 인해 발생한 비용은 기업 간 구상권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장철민안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주체는 플랫폼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영위하는 관리업체다. '플랫폼 운영자'로 명명된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으로 노무제공을 중개 또는 알선하는 자'로 정의돼 원칙적으로는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되어있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법률안은 플랫폼 기업이 노동관계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며 "이 같은 정의 방식은 사전에 설계된 알고리즘으로 플랫폼에서 일감을 조율, 할당하고 플랫폼 종사자를 평가하는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성을 은폐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인권위는 △ 과도한 수수료 공제 개선방안 마련 △ 괴롭힘 등 행위자 범위를 사업자에서 '누구든지'로 확대 등을 플랫폼 종사자법에 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플랫폼 노동자, 특별법이 아닌 노동관계법으로 보호해야"
노동계에서는 인권위가 장철민 의원안에 비해 일부 진전된 의견을 냈지만, 플랫폼 노동자를 특별법이 아닌 노동관계법 체계에 포함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노동계가 주장하던 내용이 많이 포함됐다"면서도 "플랫폼 종사자법에 대해서는 애초 플랫폼 기업의 노동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데 목적을 둔 법이라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이를 고쳐 쓸 것이 아니라 기존의 노동관계법 체계로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밝혔다.
오 실장은 이어 "인권위의 수정, 반대의견에도 노동자성 추정과 임증책임 전환, 결사의 자유 보장 등은 노동법 체계에 맞는 조항인데 이를 왜 특별법에 넣느냐는 지적이 나온다"며 "실제로 이는 지금의 인권위 결정문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오 실장은 "이번 결정문에는 플랫폼 기업이 일감 배정 앱 알고리즘을 플랫폼 노동자에게 설명할 의무나 이에 대한 교섭 의무가 명시되지 않았다"며 "이 점은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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