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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조종하는 알고리즘을 라이더가 몰라야 하는 게 맞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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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조종하는 알고리즘을 라이더가 몰라야 하는 게 맞다고?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재무제표도 공시하는데 알고리즘은 왜 공개하지 않나?

*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플랫폼 기업과 알고리즘' 연재 링크

유튜브·페북·인스타, 알고리즘은 당신을 잠식한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 정보를 노동조합에 제공해야 한다"

"근거도 없이 적자 타령이냐. 회계장부 공개해라!"

"매출전표까지 공개하란 말이냐? 영업기밀이다!"

재무정보 하나라도 공개되면 곧 망할 것처럼 떠들던 기업들, 하지만 이제 재무제표는 영업기밀 축에 끼지도 못한다. 매출전표나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회계기준과 원칙을 정해 매출액·원가율·영업이익·법인세 등을 명시한 재무제표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시하고 있지 않은가.

숨기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다

"자동차 탄소와 오염물질 배출량, 사고율을 밝혀라!"

"원천기술 내용까지 공개하란 거냐? 기밀사항이다!"

하지만 내연기관 설계 기술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공공의 가치를 위해 기준을 정해 안전규제·환경규제를 충족하고 있는지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오히려 판매 증진을 위해 "◯◯◯회 충돌실험 거쳤다"며 규제 당국이 요구하지도 않았던 실험이나 스펙을 스스로 공개하고 있지 않던가.

재무제표를 공시했다고, 혹은 사고율이나 탄소배출량을 밝혔다고 해서 영업기밀이 털리거나 망한 기업이 있는가? 요즘은 CSR(기업의 사회적 가치)이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니 하며 이런 것들을 제대로 공개하는 것이 더 많은 투자를 위한 유인책이 되기도 한다.

매출전표나 원천기술이 공개된다 해도 이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중요한 영업기밀을 읽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정한 기준과 원칙을 정해서 공개하는 재무제표나 안전·환경규제 수치도 솔직히 전문가 해설을 들어야만 무슨 얘긴지 알아먹을 수 있는 자료 아닌가.

사실 기업들이 숨기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매출액이나 세금이 얼마냐가 아니라, 비용과 이익 수치를 조정해 뒷구멍으로 이윤을 빼돌려온 행태가 드러나는 게 가장 두렵다. 안전이나 환경에 투자를 게을리 하며 오로지 이윤만을 위해 투자비용을 줄여온 사실을 숨기고 싶은 것이다.

알고리즘 설명과 협의 요구도 마찬가지

"노동조건 관련 알고리즘을 설명하고 협의하라!"

"코딩 내용까지 공개하란 말이냐? 영업비밀이다!"

마찬가지 원리다. 프로그래머가 짜는 코드(Code) 내용은 전문가가 아니면 암호문처럼 보일 뿐이다. 그걸 공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스페인 라이더법과 유럽연합의회 결의문에 나온 것처럼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입력값 등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플랫폼 기업들이 진짜 숨기고 싶은 것은 프로그램 코드가 아니다. 그들은 알고리즘을 짜고 AI를 학습시키며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도대체 그 솔루션은 무엇에 최적화된 것일까?

종종 알고리즘은 산에 오르는 길을 개척하는 것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시민들의 건강과 운동을 위해 등산로를 개척한다. 어떤 이는 돈벌이를 위해 약초가 많은 루트를 개발하며, 어떤 이는 관광객이 빠르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케이블카 설치 경로를 개척한다.

플랫폼 이윤에 최적화된 알고리즘

이유와 목적이 다르면 알고리즘은 완전히 달라진다. 등산로 개척 알고리즘은 등산객이 편하게 산을 오를 수 있는 '소비자 편익'을 추구한다. 케이블카 개척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안전'에 최우선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 이유와 목적이 다르면 알고리즘도 달라진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하지만 '약초 캐기 알고리즘'은 어떨까? 우선 사람 많이 다니는 길에 약초가 많을 리 없으니 등산로나 케이블카 알고리즘과는 길이 완전히 달라진다. 오히려 위험한 길목에 귀한 약초가 나는 법이니 그곳을 찾아야 돈벌이가 된다. 약초 캐는 이의 안전이나 편익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플랫폼 기업은 말로는 '소비자 편익'이니 '이용자(라이더) 안전'을 떠든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등산로나 케이블카 개척이 아니라 약초 캐기 알고리즘이었다는 점, 즉 소비자 편익이나 라이더 안전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플랫폼 기업 이윤만을 위해 작동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다. 영업기밀? 코딩? 알고리즘은 이런 것들과 큰 상관이 없다. 알고리즘의 구체적 내용들, 매개변수와 입력값 등의 정보가 설명되는 순간 플랫폼 기업의 거짓말이 모두 폭로되기 때문에 알고리즘 설명을 극도로 회피하려는 것이다.

알고리즘 설명과 협의 의무

'알고리즘 공개'라 하면 플랫폼 기업들은 마치 코딩 내용 전체를 공개하라는 거냐며 호들갑을 떨기 때문에, 오해 없이 표현하기 위해 '알고리즘 설명'이란 단어가 더 정확하다. 그런데 알고리즘이란 놈을 대체 어떻게 설명하라는 걸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우선 지난 글에서 소개한 '틱톡'의 알고리즘을 떠올려보자.

Plike × Vlike + Pcomment × Vcomment + Eplaytime × Vplaytime + Pplay × Vplay

8개의 항목, 정확하게는 총 8가지의 입력값과 매개변수의 곱과 합으로 알고리즘 산식이 공개되었는데, 아마 실제로 틱톡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은 이보다 훨씬 복잡할 것이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을 공개한 <뉴욕타임즈>는 어떻게 수식을 이리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이건 <뉴욕타임즈>가 만들어낸 수식이 아니다. <뉴욕타임즈>는 그저 '틱톡 알고(TikTok Algo) 100'이라는 문서를 입수해 공개한 것일 뿐이다. 이 문서는 틱톡의 엔지니어링 부서가 비기술부서 직원들에게 틱톡의 알고리즘 작동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보라. 가능하지 않은가? 복잡한 알고리즘 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프로그래머·엔지니어들이 문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뉴욕타임즈>가 이 알고리즘을 폭로해서 틱톡이 중요한 영업기밀을 폭로당하거나 영업에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다. 알고리즘 설명 의무는 영업기밀과 관계가 없다.

스페인 라이더법 이후 최초로 합의된 단체협약

지난주 17일, 배달 라이더를 노동자로 간주하는 스페인 라이더법이 제정된 후 배달 플랫폼 '저스트 잇(Just Eat)'과 전국 단위 노동조합(UGT와 CCOO) 사이에 첫 번째 단체교섭 잠정합의가 이뤄졌다. 합의 내용은 총 15개 장과 76개 조항으로 이뤄졌으며 페이지 수만 60쪽에 달한다. 그 중 주요 내용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간당 8.5유로, 연간 1만 5200유로 기본급

휴일과 야간노동시 가산급 지급

30일의 유급 휴일, 이 중 15일은 7~8월에 사용

라이더들을 위한 집단상해보험 가입

산재 예방을 위한 교육훈련 비용, 건강검진 비용 지급

휴대폰과 배낭 지급, 개인 오토바이 사용시 필요경비 부담

그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다뤄온 '알고리즘' 관련해서도 중요한 합의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에 대해 스페인 '라이더법'에 명시된 노동조합의 모든 권리 보장은 물론이고 법에 명시되지 않는 내용도 추가되었다.

알고리즘 매개변수 등에 관한 정보를 노조에 제공

디지털 감시로부터 사적 생활(프라이버시) 보호받을 권리

노동자의 '앱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gitally disconnect)' 보장 (업무시간 외에 이메일이나 문자, 앱 등으로 회사가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이번 잠정합의는 조합원들로부터 인준 투표를 거쳐야 효력이 있으며, 투표는 이달 말이나 1월 초에 이뤄질 전망이다. 물론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협약이 통과되더라도 저스트 잇의 자회사 노동자들에겐 효력이 미치지 않아 저스트 잇은 직접고용을 회피하고 자회사 고용을 늘려 이 단체협약 적용을 회피하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노골적 시도가 이뤄질 경우 노동조합들이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을 것이다. 이번 잠정합의 내용에 준하는 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나설 것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알고리즘 설명' '알고리즘 협의' 의무가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점,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활용하면 가장 잘 구체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재무제표도 공시하고 안전·환경규제 수치도 모조리 공개하고 있다. 영업비밀도 아니고 기업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만 특별대우를 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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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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