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종사자들의 노동자 권리 인정이 전세계적으로 화두인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이들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플랫폼이 종사자의 업무 실적을 감독하고 보수 수준을 결정하는 등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법적으로 플랫폼은 '사용자', 종사자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9일(현지시각) 보도자료를 내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새로운 지침을 제안했다. 집행위원회는 자료에서 "이 새로운 규정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권과 사회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제안은 그간 유럽 각 국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놓고 벌어진 혼란을 수습하는 의미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이미 수 년 전부터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놓고 논쟁과 법적 다툼이 이어져 왔지만, 판단은 제각각이었다.
영국 대법원은 올 초 우버 운전자들을 노동자라고 판단해 노동권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반면, 벨기에 법원은 최근 배달 플랫폼 딜리버루 배달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EU는 유럽 내 디지털 플랫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 2800만 명이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2025년에는 4300만 명으로 그 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EU 집행위는 이번 지침에서 5가지 기준을 제시해, 이 중 2가지 이상의 기준을 충족할 경우 플랫폼 사업자를 '고용주'로 간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집행위가 제시한 기준은 △플랫폼이 종사자의 보수 수준을 결정하는지 △업무 실적을 감독하는지 △노동 시간 및 휴무의 자유를 제한하는지 △업무 시 복장 기준 등을 설정하는지 △제3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는지 등이다. 집행위는 또 플랫폼 종사자가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을 경우 최저임금, 단체 교섭권, 노동 시간 규제, 산재로부터의 보호, 실업 및 병가 수당, 연금 등 노동권을 보장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니콜라스 슈미트 EU 고용·사회정책 집행위원은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의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자리는 불안정성을 증대시키지 않는 괜찮은 일자리여야 하고, 그렇게 해야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이번 집행위의 제안은 플랫폼이 고용주가 되는 분명한 기준을 세웠으며, 그렇게 되면 플랫폼 종사자들은 확실한 사회적 보호와 노동권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집행위는 이번 제안이 유럽 의회서 논의될 것이며, 받아들여질 경우 회원국은 2년 안에 지침을 각 국 법률에 반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민규 노동자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이번 조치에서 중요한 것은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한 것뿐만 아니라 플랫폼 업체의 사용자성을 명확히 한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가 노조 설립필증을 받아와도 플랫폼 업체가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라 중개업자'라고 주장해 실질적 노동자 권리 보장이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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