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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은 얼마의 벌금을 물어야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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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은 얼마의 벌금을 물어야 적절한가?

[서리풀 연구通] 노동자의 생명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일터에서의 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을 확립하고 사업주와 근로자 등의 의무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1981년 처음 제정되었다. 1990년과 2019년 두 차례의 전부 개정 때는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지만, 실은 법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거의 매년 법의 일부를 개정해왔다. 벌칙도 중요한 개정 대상이다.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은 사업주가 법을 준수하게 하는 중요한 재정적 인센티브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산업재해 사건들은 일터에서의 안전이 노동자와 사업주의 '공동의 이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상기시켜준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를 단순한 비용이 아닌 투자로 생각하게 하려면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비용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렇다면 일터에서 노동자들을 다치고 죽게 만드는 산안법 위반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벌칙을 부과하는 것이 적절할까? 오늘 소개할 논문은 비스커시 연구팀이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OSHA)이 안전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평가한 연구이다.(☞ 바로 가기 : 규제는 업무상 사망을 어떻게 저평가하는가?)

산업안전보건청은 미국 노동부 내 산업안전보건을 전담하는 부서로서, 1970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조건을 보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다양한 유형의 안전보건 규제 위반에 대한 벌금 수준을 정하고 사업주의 법 준수를 장려하는 것도 산업안전보건청의 역할이다. 연구팀은 산업안전보건청이 사망 관련 규제 위반의 벌금 수준을 정할 때 업무상 사망에 대해 얼마만큼의 암묵적 가격을 부과하는지 검토하고 안전에 대한 재정적 인센티브의 적절성을 평가하였다.

사망 관련 규제 위반은 네 가지 유형 – 중대한 위반, 고의적 위반, 반복적 위반, 경미한 위반 – 으로 구분된다. 산업안전보건청은 50년 전 기관이 설립될 당시부터 엄격한 법적 상한선에 따라 벌금을 부과해왔다. 1990년 종합예산조정법과 2015년 연방벌금물가조정법을 거쳐 2020년 현재 중대한 또는 경미한 위반에 대해서는 최대 1만3494 달러의 벌금을, 고의 또는 반복 위반의 경우 최대 13만4937 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연구팀은 안전보건 규제 위반에 대한 벌금의 적절성을 '통계적 생명 가치 (value of a statistical life, 이하 VSL)'라는 기준에 기반해 평가하였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때 규제의 비용과 편익을 고려하여 결정하는데, 규제의 사망 위험 감소 편익을 계산할 때 활용하는 것이 바로 VSL이다. 이전에는 사망으로 인한 소득상실과 의료비에 기반해서 규제 편익을 계산했다. 이 '사망 비용' 방식이 정작 노동자들 스스로가 사망 위험의 가치/가격을 어떻게 평가하는 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비판을 하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VSL 방법이다. VSL은 노동자들이 조금 더 큰 위험을 수반하는 직무를 감수할 때 요구하는 금액을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개인과 사회가 작은 사망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비용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최근 미국 노동시장에서 업무상 사망 위험에 대한 임금 프리미엄 자료에 기반해서 최대 VSL을 1100만 달러로 추정한다. 업무상 사망을 발생시키는 안전보건 규제 위반을 효과적으로 억지하기 위해서는 1100만 달러의 벌금이 재정적 인센티브로 적절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1974년에서 2019년까지 8만여 건의 업무상 사망, 400만여 건의 비치명적 산업재해 사건에 대한 감독 자료를 활용하여 벌금 수준을 평가하였다. 벌금은 산업안전보건청이 최초로 부과한 벌금과 사업체의 규모와 직전 감독 실적 등에 따른 감면이 반영된 최종 벌금으로 구분된다.

분석 결과, 비치명적 산업재해에 비해 사망과 관련된 규제 위반에 더 높은 벌금이 부과되었다.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최초 벌금 기준 1만745 달러의 사망 추가 벌금이 부과되었다. 그러나 사업주와의 협상을 거친 후에는 최초 벌금의 33%로 감액되어 3536 달러의 사망 추가벌금만 발생하였다. 사망 관련 규제 위반의 경우에도 최초 벌금 기준 8%, 최종 벌금 기준 5%의 위반 건에 대해서만 최대 벌금이 부과되었다. 안전보건 법규의 '심각한 위반'에 대한 평균 벌금도 2020년 벌금 상한액인 1만3447 달러의 17%에 불과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청이 사망 노동자 1인당 1100만 달러(2019년 기준 VSL)에 상응하는 벌금을 부과한 경우는 단 2개의 산업재해 사건에 불과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에도 잘 알려진, 1995년 9월 삼성중공업의 괌지부 격인 '삼성괌(Samsung Guam, Inc)'에 벌금 총 826만 달러(2019년 달러 기준 1380만 달러), 우리 돈 98억 원(현재 환율 기준)이 부과된 사건이다. 괌 국제공항 공사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감독을 시행한 결과 총 118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높은 벌금이 부과된 다른 사망 사건들의 경우에는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사망 노동자 1인당 벌금은 1100만 달러의 VSL보다 훨씬 낮았다. 연구팀은 추가 분석을 통해 사업장 안전보건 감독에 노동조합 대표가 참여하는 경우에는 더 높은 벌금이 부과되는 것을 확인했다. 노동조합이 조직화되어 있는 사업장은 상황이 비교적 나은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청은 규제영향분석에서 VSL을 이용해서 규제의 사망 위험 감소 편익을 계산하지만, 막상 규제 위반에 대한 벌금 수준을 정할 때는 VSL을 이용하지 않는다. 업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규제 위반에 대해서 VSL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벌금만 부과하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규제를 준수할 효과적인 재정적 인센티브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불일치를 지적하면서 규제 위반에 대한 벌금 상한선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경제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국보다 산업재해 발생률, 사망률이 훨씬 낮은 다른 국가들과 안전조치 위반에 따른 처벌수위를 단순 비교하여 '한국의 처벌 수준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처벌'보다는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는 래퍼토리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산업재해 공화국'이라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호도한다. 규제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은 생명의 가치를 계량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규제완화의 근거로 활용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산안법 위반에 대한 과태료와 벌금 수준의 적절성을 평가한다면, 현재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생명 가치를 얼마나 저평가하고 있는지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 Viscusi, W.K. and Cramer, R.J. (2021), How regulations undervalue occupational fatalities. Regulation & Governance. https://doi.org/10.1111/rego.1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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