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불과 두 달여 남겨놓은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당내 불화를 이유로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대위 불참 선언'의 이유는 당 최고위원이자 공보단장의 '항명'이다. 보름 전 윤석열 후보와 갈등을 '울산 회동'으로 봉합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이번엔 조수진 최고위원 겸 선대위 공보단장과 정면 충돌했다.
이준석 대표는 21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선대위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선대위 구성원이 상임선대위원장(이 대표)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공개 발언을 할 수 있다면 선대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를 바로잡는 적극적 행위도 없었다"고 상임선대위원장직 사퇴 이유를 밝혔다.
전날 비공개 선대위 회의 도중 조 최고위원이 윤 후보의 메시지라며 '후보 배우자에 대한 의혹 제기에 선대위가 더 적극 대응해 달라'는 주문을 전달하자 이 대표 등 일부 회의 참석자들이 불편함을 표했다고 한다.
그 뒤에 이 대표가 '후보와 선대위 지도부 사이의 거리를 벌리는 이른바 '윤핵관' 문제에 대해 공보단이 대응하라'고 지시하자 조 최고위원은 '내가 왜 당신 지시를 듣느냐. 나는 후보 지시만 듣는다'고 맞받았고 이에 격분한 이 대표가 책상을 치고 나가며 회의는 바로 종료됐다.
회의 직후 조 최고위원이 언론을 통해 사과 입장을 밝히면서 일단락되는가 했던 사태는, 이날 저녁 조 최고위원이 기자들에게 이 대표를 비방하는 내용의 유튜브 동영상 링크를 발송한 일이 알려지면서 더 악화됐다. 이 대표는 SNS에 글을 올려 "도대체 조 단장은 왜 공보업무에 집중 못 하고 이준석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가로세로연구소' 링크를 언론인들에게 전송하고 계신가"라며 "알아서 거취 표명을 하라"고 했다.
이에 조 최고위원이 SNS를 통해 사과 입장을 밝혔고, 윤석열 대선후보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조 최고위원이 이 대표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양측이 자제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지만 이 대표는 이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오전부터 당 공보실을 통해 오후 4시 기자회견을 예고했고, 사과의 뜻을 전하기 위해 당 대표실로 찾아와 있는 조 대표를 만나지 않은 채 바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사퇴 입장을 밝혔다.
취재진도 '그래도 당 대표인데 너무 쉽게 사퇴하는 게 아니냐', '조 최고위원과의 문제로 인한 행동치고는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등 이 대표의 행동에 의문을 표시하는 질문을 했다.
이 대표는 그러나 "(과하다는) 비판은 감수하겠다"면서도 "어떤 미련도 없다"고 사퇴 뜻을 거두지 않았다. 이 대표는 "'울산 회동'이 누군가에게는 '한 건 얼렁뚱땅 마무리했으니 이제 마음대로 해도 (대표가) 부담을 느껴 지적하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자신감을 안겨준 모양"이라고 비꼬며 "선거를 위해 홍보미디어총괄본부에서 진행한 것은 승계해도 좋고 폐기해도 좋다. 당 대표로서 당무는 성실히 하겠고, 당 관련 사무에 대해 후보의 요청이 있다면 협조하겠다"고 했다.
'당 대표실에 조 최고위원이 와 있는데 그를 만나지 않기 위해 바로 기자회견장에 온 것이냐'고 한 기자가 묻자 이 대표는 "관심 없다. 조 최고위원이 어떤 형태의 사과를 한다 해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했다. 조 최고위원이 선대위 공보단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게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미련 없다. 마음대로 하시라"고 했다.
이 대표는 '윤 후보와 거취를 상의했느냐'는 질문에도 "개인적 거취 표명은 후보와 상의하지 않아도 판단할 주체적 능력이 있다. 제가 제 보직을 사퇴하는 건 상의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던지는 것이다. 후보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이 대표는 조 최고위원이 '나는 후보 지시만 듣는다'고 면전에서 들이받은 데 대한 감정이 풀리지 않은 듯 "조 최고위원은 후보 뜻을 따른다고 했는데 사태가 이렇게 커질 때까지 후보와 상의한 것인지, 조 최고위원에게 후보가 어떤 취지로 명을 내린 것인지 궁금하다", "후보 지시만 따르겠다면 후보 비서실에서 일하는 게 옳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대표의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당 대표실에서 이 대표를 기다렸던 조 최고위원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이유 불문하고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한 번도 자리를 요구하거나 자리에 욕심낸 적이 없다. 그것만 말씀드린다"고 했다.
윤석열, 양측 자제 당부했지만 불발…김종인 "선대위, 이대로 안 된다"
앞서 윤석열 후보는 이날 오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 간의 갈등에 대해 "조 최고위원이 이 대표를 찾아가서 잘 정리하겠다고 하고 있는 입장"이라며 "아마 제가 볼 때는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윤 후보는 "(조 최고위원과) 통화는 한 번 했다"며 "당 대표이고 상임선대위원장이니까 사과하고 당사자끼리 오해를 풀면 (봉합이) 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나 시스템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그날 우연찮게(우연히)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윤 후보는 "이 문제는 결국 두 분의 그 동안 불편했던 관계 내지는 어제 아침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들(이 원인)"이라며 "공통된 의견이 '조 최고위원이 찾아가서 사과하고 관계를 매듭짓는 것이 당과 정권교체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양측의 자제를 촉구했다.
김종인 총괄위원장도 "어제 회의 도중에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 사이에 석연찮은 말이 오락가락 하는 과정 속에서 이 대표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며 "내가 판단하기에는 조 최고위원의 발언 자체가 좀 잘못된 발언을 한 것 같다"고 조 최고위원을 나무랐다.
김 위원장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해야만 이 대표도 마음을 가라앉힐 것"이라며 "내가 오늘 오전에 조 최고위원에게 좀 부탁을 했다. '어제 그 발언이 너무 과하고 잘못됐다는 것을 이 대표에게 가서 솔직하게 얘기하고 사죄를 하고서 이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얘기를 했는데 아마 그것을 조 최고위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고 이날 오전 자신의 중재 노력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 대표에 대해서도 "오늘 새벽에 나한테 문자를 보내서 '선대위 상임위원장을 내려놓겠다'고 하던데, 내가 '대표로서 조금 인내를 갖고 참아야지 즉흥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좋겠다' 얘기를 했는데 본인이 그 말을 받아들였는지 잘 모르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조 최고위원을 선대위 공보단장에서 해임하는 등의 인사 조치를 할 가능성이 없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지금 와서 이미 구성돼 있는 선대위를 어떻게 내가 움직일 수가 없다"고 부정적인 답을 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선대위 현황에 대해서도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밖에서 흔히 얘기하기를, (국민의힘) 선대위는 항공모함에 비유할 정도로 거대하게 만들어졌는데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선대위가 아니냐고 한다"며 "이제 한 2주 동안 나름대로 전반적인 선대위의 운영 실태를 파악해 보니 이대로는 갈 수가 없다고 나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선대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기동 헬기를 띄울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지금 종합상황실(총괄상황본부)을 보다 강력하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대위를 끌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사실 선대위가 제대로 운영이 되려면 선대위를 총괄하는 사람하고 후보하고 원활한 소통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며 "예를 들어서 후보 일정을 확정하는 데 있어서도 쓸데없이 다른 데서 이렇고 저렇고 얘기를 많이 해서 일정이 제대로 수용이 되지도 않고, 후보가 어디를 찾아갔을 때 거기에 해당하는 메시지도 나와야 되고 무엇 때문에 거기를 방문했느냐 하는 것도 제대로 인식이 돼야 효과가 있는데 그런 것이 지금 맞춰지지 않는다"고 선대위 내부를 향해 회초리를 들었다.
김 위원장은 이어서 "개별적으로 후보하고 관련이 있다고 자기가 무슨 한 마디씩 거들어서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면 선대위가 효율을 발휘할 수가 없다. 조직 문제도 그렇고 정책 결정도 마찬가지"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후보의 측근 그룹, 혹은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소통한 특정 인사가 선대위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대립도 발단은 조 최고위원이 '후보 배우자 의혹에 더 적극 대처해 달라'는 윤 후보의 메시지를 최고위 회의에서 '대독'했던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선대위 운영에 방해가 되는 인사는 앞으로 과감하게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직선적인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다만 "후보하고 나하고 소통하는 데 별로 문제가 없다"며 윤 후보 본인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윤 후보는 김종인 위원장의 '항공모함 선대위' 비판에는 "선대위라는 것은 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가장 신속하고 적은 인원으료 해결하도록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처음 시작되면 협력체제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제대로 가동이 안 된다"라며 "그런데 총괄위원장께서 지금 여러 상황에 대한 대응이라든지 메시지·일정 관리 등 모든 면에서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게끔 더 챙기겠다는 것이고 총괄상활실이 컨트롤타워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말은 반갑다"고 김 위원장의 구상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언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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