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가 없던 교내 신문 동아리
나는 중학교에서 교내 신문 동아리를 3년째 하고 있다. 신문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까닭은 국민들에게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해주고 진실된 보도를 한다는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었고, 학교 내에서 학생분들께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주며 학생을 대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취재하고 알아보며 기사로 쓰는 일도 흥미로워 보였다.
그런데 동아리에 들어와보니 생각한 것과 많은 점이 달랐다. 먼저 동아리원을 선출하는 방식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신문 동아리에 지원하려면 학업 성적이 상위권이었어야 했고 합격자는 성적순으로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열심히 활동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신입 동아리원을 뽑는 입장이 됐을 때는 면접을 통해 동아리 활동에 대한 열의를 보고 싶었지만, 담당 교사는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고, 성적이 비슷하면 남학생을 우선해서 뽑도록 시켰다.
동아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열심히 기사를 작성하고 첫 신문을 채워 갔다. 마무리 단계를 끝마치고 신문이 마침내 출간되기 직전이었다. 우리가 만드는 신문을 포함해 교내에서 출간되는 신문은 1차적으로 담당 교사, 2차로는 교감, 3차로는 교장이 검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사실 3년이 지난 지금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검열을 당하며 지적받았던 것 중 정말 어이가 없었던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겠다. 우리 신문에는 '신문부 동아리원들이 직접 추천해주는 추천도서'라는 코너가 한 켠에 있다. 한번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제목의 소설을 실었다. 이 책은 췌장암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청춘 드라마 소설로, 당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고 다른 동아리원이 학생들이 읽어보았으면 한다며 추천한 것이었다. 그런데 교장은 이 책의 제목이 청소년들에게 너무 선정적이라며 제외하라고 지시했다. 신문에 노래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노랫말 중에 사랑을 주제로 한 내용이 있었다. 교장은 이 내용을 가지고서도 청소년에게 걸맞지 않은 노래인 것 같다며 게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책이나 노래 추천뿐 아니라 학생들이 작성한 기사까지 수정하게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수정하다 보면 처음 학생 기자가 기사를 작성한 의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학교에서 한 모든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만 봐야 했고, 결국에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쓰는 기사가 아니라 마치 학교를 찬양하는 듯한 내용의 기사가 되고 만다. 나중에는 우리도 그냥 익숙하단 듯이, 교장·교감·교사가 시키는 대로 신문 내용을 수정하고 다시 수정하고 계속 수정하였다. 이미 신문을 발행한 이후에도 '위'로부터 지적을 받게 되면 동아리원들이 학교를 돌며 신문을 모두 수정하고 다니는 수고도 해야 했다.
이렇게 학교의 지시대로 신문을 만들기는 싫었다. 학생을 대변하고 싶어 신문 동아리에 들어왔는데, 학교의 지시만 따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래서 백지로 신문을 발행하려고 해보기도 했으며, 성적순으로 동아리원을 선발하라는 지시를 어기고 기사를 수정하라는 지시에 불복종하며 신문을 발행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담당 교사는 바로 동아리 대표인 나와 다른 동아리원 1명을 불러서는 2시간가량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었다.
신문 동아리 학생들은 모두가 보람 있는 언론 활동을 하고 싶어서 꿈을 안고 들어온 것인데, 막상 동아리에 들어오니 학교에 의해 신문을 검열받고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며 교사에게서 비하하는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이 씁쓸했다. 심지어 우리 동아리를 싫어하는 교사들은 신문을 만들어서 배부하는 것이 '환경오염'이라며, 신문 동아리를 없애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 동아리는 2020년부터는 신문의 형태가 아닌 벽보의 형태로 신문을 만들어 게시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안에는 벽보를 게시할 공간도 충분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나와 있다. 언론의 자유는 중요한 인권이자 민주주의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중학교에서 신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나는 언론의 자유가 아닌 권력에 의한 검열만을 경험해 보았다. 도저히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교내 언론의 자유 침해 실태는 심각하다.
하나 더 놀라운 사실은 교장 등의 지시에 따라 기사를 작성하고 모든 학교의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만 써야 하는 동아리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동아리는 '자율' 동아리라는 점이다. 자율 동아리는 말 그대로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동아리를 자율적으로 운영해 나간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만들고 학생의 의견을 담아야 할 신문에는 학교의 목소리, 교장과 교감과 교사의 목소리만 담기고 있다. 이러한 동아리를 '자율' 동아리나 '신문' 동아리라고 할 수 있나?
마스크 색깔부터 연애까지… 여전히 규제투성이
내가 다니는 중학교는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다. 경기도는 2010년,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11년째 시행 중인 곳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는 “교장 등은 교지 등 학생 언론활동, 인터넷홈페이지 운영 등에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필요한 시설 및 행·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도 있지만 우리 학교는 이와 거리가 멀다.
학교에서 억압당하는 자유는 언론의 자유뿐만이 아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남학생이 조금이라도 머리가 길면 눈치를 주고 혼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됨에 따라, 학교에서도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방역지침 외에도 새로운 규제가 덧붙여졌다. 마스크의 종류는 물론, 마스크 색상은 흰색만 착용해야 한다고 했고 마스크의 생김새마저 규제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학칙에는 마스크에 관한 규정이 없었기에 급하게 교사들끼리 규정을 만들어서 적용시켰다. 내가 다니는 학교 외에도 주변에 마스크 색깔을 제한하는 등의 규정을 만들고 규정에 어긋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온 학생에게 벌을 주는 학교들이 많아졌다. 또한 학생들 각각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규제로 인해, 만성 호흡기 질환이 있는 학생에게도 무조건 KF94 마스크만 쓰라고 하여 호흡 곤란을 겪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병원에 이송되는 일도 일어났다.
용의복장 외에도 학생들의 사생활에 대한 억압도 심각하다. 내 친구는 다른 한 학생과 연애를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교사가 그 친구를 불러 '연애를 하더라도 티 내지 말고 하라'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다음 날 학생부장은 모든 반을 돌면서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안 된다며 '연애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자연스러운 감정과 관계 맺기의 문제인데,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교육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이를 이유로 무조건 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황당했다. 연애라는 것이 나이를 신경 써야 하는 것인가? 심지어 옆 학교는 연애하는 학생들이 '안 좋은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연애를 일절 금지한다고 한다.
게다가 학교는 차별을 가르치기도 한다. 얼마 전 가정 시간, 교사는 학생들에게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여성이 가정생활의 중심이 되고 남성이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가정생활의 책임은 가족구성원 모두가 나눠야지, 누군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국어 시간 중 사회적 쟁점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한창 뉴스에 이태원 클럽에서의 코로나19 감염이 화제였다. 국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태원 클럽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성애자들 더럽지 않냐',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코로나19 감염과는 관련이 없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했다.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차별을 겪고 차별을 배워도, 학생으로서는 교사 앞에서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어떤 점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혹시나 교사에게 찍히면 나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르고, 성적을 좋지 않게 준다든지, 여러 보복이 있을까 두려워 학생들은 나서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환경이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성희롱이나 차별 발언 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 아닐까. 스쿨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이슈가 되어도, 가해 교사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처벌에 가까웠고, 피해자와 고발자는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 교사에게 대들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으로 공격받곤 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10년이 지났어도…
경기도는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1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학교의 모습은 아직도 이러하다. 많은 학생이 말도 안 되는 규제에 고통받고 있다. 또,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할 수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이 정도도 많이 좋아진 것이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전에 비하여 좋아졌는지'는 올바른 기준이 아니다.
학생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학교의 모습은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 '교사나 교장이 교내 신문을 검사하는 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학교에서 학생다운 단정한 모습을 하게 하려면 두발 복장이나 마스크, 외투 색깔도 규제할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소년들도 자신이 당하는 인권침해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지 않거나, 크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게 된다. 다른 학교의 사례를 듣고 우리 학교의 상황이 그나마 낫지 않냐고, 이 정도면 인권침해까진 아니지 않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옆 학교에 비하면 우리는 많이 풀어주는 거다'라는 식으로 그런 비교를 조장하곤 한다.
청소년인권 문제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이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학교를 다녔던 비청소년들이 보기에 지금의 학교는 그래도 자기 어릴 적에 비하면 덜 폭력적이고 덜 억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청소년기에는 부당하다고 느꼈던 일도 시간이 지나 잊히고 추억이라고 미화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인권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른들이 학교 다닐 때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는지'여서도 안 되고, '옆 학교에 비해 얼마나 괜찮은지'여서도 안 된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학교에서 잘 보장되고 있는지, 불합리한 억압과 규제가 없는지가 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을 지키려 만들어진 지역의 자치 규정이고 그 결과 체벌이나 두발규제 등의 인권 침해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에 적힌 그대로 학교에서 모두 다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좀 심각해 보이거나 눈에 띄는 인권 침해가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학교 안에서는 학생의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며 민주주의적 문화와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매뉴얼 같은 문서가 되어 버릴 때가 많다.
학교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하루빨리 인지하고, 학생인권 보장과 교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지난 11월, 국회에는 박주민 의원이 '학생인권법'(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학교 안에서 용의복장규제, 언어폭력, 체벌, 성희롱, 차별 등 누구나 당해선 안 될 인권침해 행위를 금지하고, 학생의 언론·표현의 자유와 학칙 제·개정 및 학교 운영 참여를 보장하며,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때 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기구를 전국 교육청에 설치하는 법안이다. 학생인권법이 반드시 통과되고, 학생도 인간이자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정책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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