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에 관한 내 글과 말을 접한 사람들 가운데 의아함을 표하는 분들이 있다. 당연히 종전선언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평화 활동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가 종전선언 자체를 반대하거나 비판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종전선언을 추진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고, 종전선언이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을 초래한다면 평화협정 협상 개시 선언이나 잠정 협정도 대안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최근 상황 전개도 씁쓸하기만 하다. 문재인 정부 안팎에선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종전선언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했었다. 그러나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하면서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일정 부분 예견된 일이었다.
미국에선 반중 감정이 유행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이를 부추겨왔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는 정권의 명운이 달린 2022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이 베이징 올림픽에 참석하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기회로 삼아 종전선언을 실현해보려는 계획은 애초부터 '연목구어(緣木求魚)'였다. 바이든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에게 크나큰 정치적 선물을 안겨줄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바이든은 자신의 불참뿐만 아니라 외교 사절단 자체를 보내지 않기로 함으로써 대중국 정책에 대한 공화당의 정치적 공세를 차단하는 선택을 내렸다. 외교적 보이콧은 중국의 인권 문제보다는 중간선거를 의식한 행보인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허둥지둥 철수할 때에 타국의 인권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했던 바이든 행정부 아니었던가?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 태도에 대한 씁쓸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종전선언은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겐 기회가 있었다.
우선 내년도 국방예산을 줄여 사상 최대 규모로 이뤄져온 군비증강을 자제할 수 있었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을 증강한 만큼, 또 코로나19 악화로 민생 위기가 심상치 않은 만큼, 정부와 여당이 의지만 있었다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내년도 국방비로 약 55조원을 확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보다 15조원이나 늘어났다. 여기에는 '핵·WMD 위협 대응 관련 사업'으로 명칭을 바꾼 한국형 3축 체계 예산이 대거 포함되었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투입해 군비증강을 하면서 북한에 종전선언을 하자는 것이 타당한 발상인가?
실소를 자아낸 풍경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항공모함 예산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안규백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2018년 남북한 정상은 '부전(不戰)'의 맹세를 하면서 상호간의 불가침을 확약했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은 북한에 종전선언도 하자고 줄곧 제안해왔다. 이러한 합의와 제안이 위에서 소개한 민주당의 언행과 어울리는 짝인가? 오히려 북한은 종전선언에 응하는 것은 고사하고 '압도적 전력은 우리도 갖겠다'며 핵과 미사일을 더 많이 만들지 않겠는가?
12월 초에 있었던 한미연례안보회의(SCM) 결과도 매우 우려스럽다.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연합훈련의 '지속'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 눈에 띤다.
"2022년 전반기 연합지휘소훈련 시행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고, "2022년에 미래연합사 완전운용능력(FOC) 평가를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내년에도 연합훈련을 계속 실시할 뿐만 아니라 강화를 암시하고 있다. FOC 평가를 위해서는 훈련 규모와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왔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남북관계 회복과 종전선언 여건 조성을 위해서는 연합훈련 중단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이러한 요구의 수용 여부를 떠나 문재인 정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포함해 동맹 강화와 대규모 군비증강을 추구하면서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진정으로 기대하는가? 정부의 기대대로 내년 초에 종전선언이 이뤄졌는데 3월에 연합훈련이 실시되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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