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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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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마을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정책과 활동 필요

언어는 주어가 중요하다. 목적어와 서술어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달린다. 주어가 방향을 정한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에서 '나는'이 빠지고 '너를 사랑한다'만 남으면 사랑하는 행동만 남고 주체가 사라져서 어디로 갈지 모른다. 누가 사랑하느냐가 중요하다. 너를 사랑하는 주체가 옆집 사람인지, 친구인지, 부모인지 정확하게 밝혀야 문장의 뜻이 제대로 완성된다.

사람이 빠진 정책과 활동

그동안 복지와 마을 분야에서 주어가 빠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필요성이 앞서고 정책과 사업이 주어를 대신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지역복지 확대', '마을공동체 구축'이 대표적이다. 목적과 서술은 있는데 주어가 없다. 물론 주어는 주민이라는 암시가 있다. 암묵적인 동의와 생략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어가 사라진 문장은 저마다의 해석으로 숱한 오해를 만든다. 지역복지를 확대하자는데 누가 이견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는 의미가 달라진다. 정책이 주체인가? 활동가인가? 시민사회인가? 기관인가? 주어가 없으니 방향 없이 움직이는 돛단배와 같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기술의 진보가 무섭다. 기후 위기, 세대갈등, 불평등은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과제이다. 사회변화에 맞추어 시민사회의 대응도 절실하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고 했다. 속도를 늦추고 변화를 거부하라는 뜻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것을 찾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어를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이다. 문장을 쓰려면 주어부터 쓰는 것처럼 우리의 주어를 다시 생각해보자. 생략했던 주어의 자리를 다시 채우자.

마을활동의 본질 '사람'

혈액검사에는 원심분리를 사용한다. 우리 눈에는 똑같은 피로 보이지만, 원심분리를 하면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장의 순서로 구분된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원심분리하면 질문의 대답인 주어가 남는다. 그건 바로 '사람'이다. 다른 것이 대신할 자리는 없다. 사람이 주어가 되어야만 한다. 사람이 모든 것의 최종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을 주어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문제와 정책이 앞서면, 사람은 목적에서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도 문제인데 더욱 심각한 것은 사람이 수단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사람이 수단이 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사람을 위해서 만든 마을 정책인데, 사람이 수단이 되어 마을 정책의 도구가 된다. 사람을 위해 시작한 마을 활동인데, 사람은 없고 활동 실적만 남는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는 사람이 없어도 된다. 오히려 사람의 존재가 풍경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을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없는 마을은 멋진 사진일 뿐이다. 사람을 놓친 정책과 활동도 다르지 않다.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정책과 활동

좋은 기획자는 참여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반대로 자신이 찬사를 받고 참여하는 사람을 막아서는 기획자가 있다. 부족한 기획자가 아니라 나쁜 기획자이다. 마찬가지로 지역복지와 마을의 좋은 실무자는 참여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항상 사람을 주어에 놓는 사람이다. 그런 실무자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사람을 귀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고 예의를 갖춘다. 사람에게 말하기보다 듣기에 집중하고, 지시하기보다 제안한다.

시민사회의 갈 길이 멀다. 언제 편한 적이 있었냐 싶지만, 앞길이 더욱 멀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준비할 게 많고 당장의 현안 해결을 위한 자원 투입도 절실하다. 절대적으로 양이 부족하다. 그러나 양적 확대와 더불어 질적 성숙의 고민도 놓칠 수 없다. 양 많이 준다고 식당을 찾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주어로 시작하는 문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많지는 않아도 된다. 제대로 된 한 문장이 필요하다. 장편의 대하소설에만 감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시 한 구절의 감동이 더 오랜 여운을 남긴다.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에서 청년을 주어로 문장을 다시 써야 한다. 그러면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다각적 지원방안 모색'이란 생동감 없는 문장이 '청년은 집이 필요하다'라는 분명하고 살아 있는 문장이 된다. 사람이 주어인 정책만이 사람을 평가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사람이 주어인 마을 활동과 복지가 사람을 실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언어와 문서에 '사람'은 없고 사업과 실적과 자원과 정책만 난무하지는 않는가? 사람을 주어로 만드는, 주어가 없는 문장에 사람을 넣어 다시 쓰는 시도가 필요하다. 사람이 마을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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