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초에 탈춤 반 가입은 나에게 많은 지침을 주었다. 탈춤의 이해로 전공과 해야 할 과제 등이 정해졌으며 인생최대의 스승님을 만났고, 역사적 순간을 만나게 해준 탈춤이었다.
1.
고루한 집안에서 태어난 난 타고난 음치에 박치였다.
어려서부터 독서에 깃들인 습관이 문자중독증에 걸리어 신문, 월간지, 문학지, 독서신문, 불교신문 등을 모두 읽어야 직성에 찼다. 간간히 서울 대에 생긴 탈춤연구회가 기사화 된 것을 보곤 타고난 음치 박치를 탈피할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을 스치듯 가졌다 .
유배 오듯 탈출한 대학에서 난 자유를 느꼈고 처음 1기로 모집하는 탈춤 반에 가입을 했다.
봉산탈춤의 기본사위는 농사짓는 것만큼 힘들었으나 일 이 주 만에 풀리고, 반복된 연습에 자신감을 주었으나 농악과 장구는 잘 따라 하지 못했다. 곧 준비하는 5월 축제에 단역만 주어졌다. 오목, 삐뚤이도령 등. 간단한 역이었으나 우렁찬 외침, 부채로 무작위 인물에게 두드리는 동작으로 주목을 받았고 웃음을 선물하는 것에 만족감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후 전공이 중문학인지라 탈춤이 한국의 희곡이라면 중국문학과 어찌 만날 수 있는지? 논문제목과 책제목을 찾아보곤 하였다.
나중에 원대 희극(元代 戲劇)을 논문으로 쓰게 되었지만 문자의 한계와 정치적 환경으로 끝장을 보지 못했다.
5공 아래에 처한 시대적배경이 중국 이민족이 통치하던 元代와 같고 원대 지식인이 쓴 희곡대본에서 그들의 고충과 분노, 漢族의 정권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열망을 찾아낼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웬걸? 송대와 원대 사전을 열심히 뒤져 극본을 번역해도 고진감래 입신양명 가족단란 등의 주제만 찾아질 뿐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그 이민족이 우리와 뿌리가 같은 동이족이었다는 걸 알았다. 역사왜곡을 못 떨쳐내고 죽자고 논문을 쓸 요량이었으니 실패는 당연지사.
2.
탈춤을 만나면서 스승복은 가히 차고도 넘친다.
중학교 때 무용선생님이셨던 강혜숙 선생님은 내가 다녔던 대학에 무용과 개설 교수님으로 오셨고 탈춤반의 지도교수님이 되셨다.
강혜숙 교수님의 초청으로 옆 학교에 (학위 마치시고) 처음 부임하신 채희완 교수님께서 강의 나오셨다.
두 분 교수님과는 여지껏 연을 같이하며 두 분의 만남은 가히 벅찬 만남이라고 하겠다.
탈춤과 시대의식, 역사의식과 만나고 문화운동 역사운동과 동지를 만나게 되었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개념정리하고 계승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다가올 미래도 조금은 준비할 수 있지 않았었을까? 생각해본다.
채희완 교수님께서 출강하시는 날이면 중문과 수업을 빼먹고 도강을 했다.
춤의 기원이 선사시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무당의 의식에서 구술은 구전문학의 효시, 노래는 음악의, 춤은 무용, 제사장의역할은 종교, 군장은 정치의 기원이 되심을 알려주셨고, 제학문의 뿌리를 제대로 만났다는 희열을 느꼈다.
칠판에 한문 원문을 적으시곤 해석을 해주셨다. 고구려벽화에 고구려복장을 한 귀부인과 남성들이 한손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시며 춤동작(춤사위)을 설명해주셨다. 어려서부터 조부께 한문을 익힌 나는 쾌재를 부르며 무용과로 전과할 생각을 가졌으나 부친께 직살 나게 얻어맞고 꿈을 접었다.
채희완 선생님께서는 학위를 마치시고 첫 부임한 대학이 청주에 있었기에 하숙을 하셨다. 한 달 치 하숙비를 선불하고 단지 이틀만 주무시곤 의식 있는 학생 혹은 교수님들과 음주여행을 하셨다.
나도 그 일행 중 하나로 꼽혔던 것 같다. 청주시내에 대학생 20 여명에게 양주별산대 기본동작을 익히게 해주셨다. 쳐라! 멈춰라! 의 간결한 절제미에 반했고 곱추 춤의 기본사위는 일 년에 두세 번 써먹는 단골 사위가 되었다.
선생님과는 청주시내 막걸리 집, 야식집을 섭렵하다 고정 정착한 곳이 넝쿨 집.
단칸방과 홀이 있는 소박한 집으로 닭 내장 탕을 팔고 있었다. 하얀 무명의 옷을 입으신 시부를 모시고 같은 무명한복을 입으신 며느님이 칼칼한 닭 내장을 끓여냈으나 안주엔 관심이 없고 막걸리에 집중했고 통금시간이 지나 졸리면 시부와 며느님 잠자리로 파고드는 행각을 세 명이서 날이면 날마다 했으니 웃음이 슬며시 나온다.
한 번은 채 선생님께서 년말 기말고사 중에 청주시내 학생들 10 여명을 데리고 3박4일 술 여행을 떠났다.
3일째 되는 날은 기말고사 출제하시느라 두어 시간 자리를 비우신 외엔 눈한번 안 감으신 선생님. 다른 학생은 졸거나 옆에 가서 한두 시간씩 쓰러져 눈을 감아도 나는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그것이 술에게 바치는 순수, 스승께 바치는 존경의 염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마주 앉은 학생에게 말을 시키시곤 삐딱 선을 타면 짧게 반어법으로 교정해 주시는 분, 노래와 동작을 가히 폭발적으로 경쾌하게 만드시는 분, 술 앞에 작정하고 순결하고 싶으신 분..(술에 지지 마세요.)
강혜숙 교수님도 7명을 3박4일 재워가며 밥 먹이고 술 먹이고 두편 동시상영 영화를 보여주시며 웃음을 제공해 주신 분이다.
청주 민예총의 초석을 놓으신 분으로 국립예술극장에서 공연하신 층층시하 보리문둥이 등은 그 메시지로 충격을 받았다. 문자보단 춤으로 주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단 걸 알았다. 정신대 할머님을 무대 위로 올리신 이야기는 유 나중에 들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은 내가 대만 유학 시에 일어난 일로 실로 애석하다.
3.
1979년 10월26일은 전국대학 탈춤반이 경복궁에 모여 각 과장을 맡아 한판 놀아보는 날, 하루 미리 서울 집에 와서 대기하고 있는데 당일 새벽 '대통령 유고' 란 듣도 못한 단어가 신문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요로에 전화했으나 당연히 무산되어 급히 청주로 귀환.
전날 사북에선 전쟁과 같은 일이 일어났으나 유고에 덮이어 기사화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걸 연우극단 분들이 현장취재 해서 극본으로 만들고, 두 분 스승이 계신 도시에서 공연하고 싶어 했다. 청주시내 3개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급히 모여 연습. 지랄 같은 언어폭행을 받으며 연습했으나 발표할 곳이 문제였다. 그 당시 여차하면 빨갱이소리 듣는 지방의 외골수 의식이 문제였다. 시내에서 가까운 청주 대 운동장에서 열고 싶어 하기에 정해진 날짜에 무조건 열라고 했다. 학생과에 집회신고를 하러가선 심드렁하게 축제의 일환으로 연극발표를 하겠다고 했다.
학교 호위무사인 체육과 교수와 학생들이 감독 나온단다. 너희들이 감히? 깔보듯 미소 지으며 와서 잘 감상하고 갔으면 좋겠다. 정식으로 초대한다고 했다.
탈춤에서 진화한 시대의식을 담은 첫 마당극이었다.
억눌린 사북탄광조합원들의 조합장과 탄광 주에 대한 분노가 돌멩이 투척으로 시내가 전쟁 통 같았던 하루를 담아냈던 마당극이었다.'검은 산 검은 물' 직접 녹음본이 있었으나 18 년 후 화재로 잃은 일은 너무나 애석하다.
이순익 청주대 탈춤반 79학번, 시민활동가, 전 천안백석대학 및중국어과 겸임교수, 문화이모작 문화기획자, 요리연구가, 동학 주모, 임원경제협동조합 이사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