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공평하게 엉망진창이다
사람은 자신의 눈, 귀, 코, 혀, 피부 그리고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를 산다. 구성주의 철학자 움베르또 마뚜라나와 프란치스코 바렐라의 통찰이다. 많은 생물학자와 뇌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인식이다.(움베르또 마뚜라나, 프란치스코 바렐라, 앎의 나무)
외부에 객관으로 존재하는 그런 세계란 없다. 눈이 나쁜 개는 이원색의 눈으로는 흐릿한 세계를 볼 수 있을 뿐이지만 3억만개 이상의 코 감각 수용체가 맡는 냄새로 아주 세세하게 세계를 인식한다. 장거리 여행 새는 자외선과 지구 자장까지 눈으로 본다. 박쥐는 초음파로 세계를 인식한다.
개가 보는 세계와 박쥐가 인식하는 세계, 사람이 보고 실감하는 세계 가운데 어느(어는) 것을 객관으로 존재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
2천 6백여년 전 붓다는 이미 우리가 보는 세상은 우리 마음이 이름을 붙이고 개념화해서 만들어낸 세상임을 깨달았다. 양자역학과 현대 물리학, 생물학, 뇌과학, 언어학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와 인문사회학자들이 붓다의 철학에 대해 경이의 시선으로 다시 보고 동의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저마다의 세상, 78억 개 이상의 인간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네거티브 묻지마 폭로전이 갈수록 가관이다. 대장동이니 항문침이니 무슨 정법이니 듣도보도 못한 단어들이 ‘개싸움’처럼 대선 투전판을 주도하는 빅데이터 상의 언어들이다.
자신이 지지하고 좋아하는 후보에 따라 사람들은 패를 갈라 가짜뉴스건 뭐건 서로 공유하면서 진지를 구축한다. 이른바 무슨 ~빠라고 불리는 후보별 열성 지지자들에게는 오직 후보를 향한 묻지마 열광과 다른 후보에 대한 혐오만 있을뿐 보수니 진보니 민주당이니 국힘당이니 하는 것들은 뒷전이다. 이대로 가면 여건 야건 정당도 대선 후보별로 쪼개질 것만 같다.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를 유일하게 예측한 구글의 데이터과학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Seth Stephens-Davidowitz)는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를 예측한 것은 유일하게 데이터뿐이라며 일갈했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하며 우린 모두 공평하게 엉망진창이다.(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역사는 늘 반복된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의 미 대사관에서 미군의 마지막 철수 헬기가 날아갔다. 이렇게 베트남 전쟁은 미군의 패배로 끝났다.
2021년 8월 30일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공항에서 미군의 마지막 철수 수송기가 이륙했다. 구소련에... 이렇게 미국은 탈레반에 철저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근 반세기만에 똑같이 되풀이되는 역사의 반복이다.
오직 돈벌이만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인간살육 기계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다음 전쟁을 어디서 벌일지 후보지를 찾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잊는다. 우리는 공평하게 기억을 상실하고 또다시 공평하게 엉망진창인 현실을 살아간다.
그러나 잊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며 현실에 대해 이건 아니라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주위에서 똑같이 이건 아니라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만나 서로 용기를 얻고는 현실에 저항하는 행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엘리트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저항이 정치 경력이 되고 어느 순간 그 경력을 기반으로 현실 정치권력의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 가운데 일부는 기득권 엘리트로 변신한다.
베트남 인민에 의해 베트남이 해방된 직후인 1975년 5월 13일 박정희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했다. 어떠한 형태의 집회-시위-결사-표현의 자유도 일체 금지하고 긴급조치 9호를 비판하는 말만 해도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말만 해도 영장없이 경찰이 잡아가 고문하고 감옥에 처넣었다. 긴급조치 위반사건을 보도하는 것도 긴급조치 위반이었다. 나치보다도 더 깜깜한 ‘긴급조치 시대(긴조 시대)’였다.
박정희는 히틀러보다 한 술 더 뜬 종신 총통이자 왕이었다. 히틀러는 독일제국의 패망을 앞에 두고 자살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주지육림 속에서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집권했다.
서울대를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는 특권처럼 여겨지는 게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건축 현장에서 잡부로 일할 때 함부로 막 대하던 건축주가 서울대 출신이란 것을 알고는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때 들었던 그런 당혹감을 나는 그 이후에도 수도 없이 겪었다. 그래서 서울대 얘기를 꺼내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다.
박정희의 가면을 벗기는 가면극, 1975년 5.22 김상진 추모굿판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 지 9일만인 1975년 5월 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처음으로 긴급조치 9호 철폐를 외치는 시위가 일어났다. 박정희의 가면을 벗기는 가면극, 김상진 추모굿판이었다.
김상진은 그해 4월 11일 수원농대에서 유신철폐를 외치며 칼로 할복해 자살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학생들 거의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김상진은 학생들 가슴 속에 뜨거운 불씨 하나씩을 던지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것이 서울대 오둘둘 시위의 주요 동력이었다.
5월 22일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점심 시간 직전에 인문대에서 도서관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의 넒은 공간에서 귀를 세게 때리는 쇳소리의 깽가리가 챙챙하게 울려 퍼졌다.
학교에 상주하던 형사들과 중정(지금의 국정원) 공작원들이 즉시 달려들어 깽가리를 치는상쇠 박연호(사대)를 붙잡았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여든 학생들이 형사들과 중정 요원들을 물리치고 상쇠를 구해냈다. 그리고 스크럼을 짠 학생들은 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에 진출해 식당에 있던 학생들의 합류를 이끌어낸 뒤 김상진 추모굿판을 벌였다.
이런 시위가 일어나리라고는 중정도 경찰도 전혀 짐작도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교문 앞으로 진출해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데도 경찰의 출동은 한참이나 늦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학 안은 일종의 성역처럼 여겨져서 시위를 해도 경찰이 학교 안에까지 들어와서 진압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 처음으로 경찰은 학내에 진입했다. 경찰이 학교로 들어와 연좌 대열을 둘러싸고 학생들을 잡아가기 시작할 때 학생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 학교 건물 쪽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중간에 수십 명의 교수들이 스크럼을 짜고 경찰 막아보려고 했지만 경찰의 진격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그날 교수들이 그렇게 무력한 존재인지를 처음 깨달았다.
자유와 해방의 공간, 탈춤
나는 인문대 편집실 창립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오둘둘 직후 시위 주동 단체로 찍혀 불법화된 탈반에 들어갔다. 깽가리가 심장을 두들기며 저절로 불러 일으키는 그 강렬한 선동과 신명이 나를 사로잡았다. 언로가 모두 막혀 있는 상황 속에서 유신독재 체제의 꽁꽁 얼어붙은 자유를 슬슬슬슬 녹이며 동토에서 뚫고 나오는 그 땀에 절은 탈춤의 자유로운 춤사위가 좋았다. 몸치에 가까워 춤은 못추지만 아슬아슬하게 긴급조치 9호 위반과 합법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그 풍자가 시원했다. 현실에 대해 비틀고 마음껏 상상력을 자극하는 또다른 정치 행위로서 탈춤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의 통로이자 자유의 공간이었다.
서울대 탈반 다수가 5.22 시위 때 적극 가담했고 일부가 구속되거나 제명되었다. 사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은 박정희가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국의 학생운동 세력을 모조리 굴비꿰듯 엮어 잡아들여 학생운동 자체를 아예 씨를 말리고자 한 사건이었다. 박정희는 학생운동 배후에 북한 간첩이 있다고 인혁당을 조작했다. 고문으로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이른바 인혁당 인사들은 초고속 재판 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정희에 의한 참혹한 사법살인이었다.
당시 학생운동 세력의 거점은 학회였다. 당연히 민청학련 사건 이후 학회는 전부 등록이 취소되었다. 학회는 지하로 숨어들어가야 했다. 1975년 봄 새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공개 써클은 탈반과 문학회, 연극반 등 문화예술 단체 뿐이었다. 그리고 1972년 위수령 사태 때 군대로 끌려갔던 선배들이 복학해 있었다. 5.22시위의 배후로 몇 년 동안 수배를 당한 선배가 김근태(전 국회의원)였다.
1975년 봄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구속자 석방과 긴급조치 철폐 시위는 이들 문화패들이 주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법화된 탈반을 이끌고 있던 회장은 사대 국어과의 김도현이었다. 김도현과 나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불법 써클이었음에도 당시 1학년 신입생이었던 75학번들이 많이 참여했다. 강금실(법대, 전 법무부장관), 김배철(인문대, 전 청주교대 총장), 박인규(자연대, 프레시안 이사장), 성욱(인문대, 발효주 전문가), 이태환(자연대, 해상풍력기업 에드백트 대표), 정연도(자연대, 지하수 탐사 전문가), 홍순민(인문대, 전 명지대 교수) 등등이 기억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토시를 손에 끼고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등을 배우던 젊은 얼굴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참 열심히 춤을 췄다.
얼굴 자체가 탈이었던 채희완 형은 탈춤반의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늘 불콰하게 술에 취한 빨간 코로 멋들어진 춤사위를 선보이곤 했다. 채희완 선배의 탈춤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전국 대학가의 탈춤운동이 그렇게 들불처럼 타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탈을 쓰고 착취자-지배자들의 가면을 벗기는 혁명의 선구자들
지하에서 활동하던 탈반이 본색을 드러내 대활약을 한 시간이 다름아닌 1980년 서울의 봄이었다. 1980년 대규모 시위에서 탈반은 동아일보 기자 대량 해직 사태를 소재로 한 진동아굿, 김상진 굿, 동일방직 노동조합 탄압 사례를 소재로 한 동일방직 굿 등을 연출하면서 학생들을 ‘선동’ ’고무‘하고 깽가리로 시위 대열을 이끌었다. 거의 모든 전국의 대학에서 탈반을 비롯한 ’딴따라‘들은 경찰과 중정, 검찰이 보기에는 붉은 선전선동대였다.
이제 그런 탈춤의 시대는 갔다. 그러나 이런 탈춤의 시대가 있었기에 케이팝과 BTS와 한류 열풍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1세기 디지털 전자매체는 지식-정보의 자유로운 실시간 검색과 공유를 통해 모든 시민의 지식인화를 가능케 한 혁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하지 않고 반응하기만 하는 고립되고 파편화된 수동의 소비자 대중을 양산하는 결과도 낳고 말았다.
오늘 여기 우리들의 과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이다. 검색에서 사색으로의 전환과 함께 고립된 개인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유인으로서 연대연합과 공유의 공동체를 재생하기 위해 필요한 맨 처음의 첫걸음은 몸짓 손짓 발짓 등 온몸으로 내 몸에 걸친 억압의 사슬을 벗어던져 해체해버리는 춤 사위다.
엠비규어스 탠스컴퍼니의 몸짓과 손짓 발짓에서 나는 강렬한 자유와 해방의 숨결을 느낀다. 동시에 탈춤의 저항과 대안의 세계를 향한 인간 삶의 생명력을 느낀다.
BTS의 춤과 노래 가사에서 나는 호소력있는 소통과 대화, 마음을 바꿔 삶의 전환을 이뤄내는 혁명과 공감의 바람소리를 듣는다.
페르소나, 본캐, 부캐라는 말 자체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 엉망진창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거꾸로 돌아가는 극단의 불평등 시대, 기후위기라는 불안한 세상에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웅성거리는 장삼이사의 사람들과 함께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아마도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로 위장한 소수 엘리트 지배 대의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이념과 정책은 실종되고 오직 포퓰리즘과 네거티브 폭로만이 난무하는 대선이 될 것이다.
진보정당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실패, 성찰의 지점은 무엇일까
진보정당운동은 실패했다고 나는 단언하고 싶다.
1898년 창당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19년의 활동 끝에 1917년 혁명을 성공시키고 집권에 성공했다. 1921년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28년만인 1949년 집권에 성공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물론 이들은 인민이 고루 평등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주의 이상사회를 공약했지만, 수천만의 인민을 학살하고 굶겨 죽이는 악몽과도 같은 독재정치를 펼치고 말았다.
1990년 민중당이 출범한 지 30여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 진보정당 정치세력이 사기에 가까운 문재인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이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진보정당이 기후위기 대응과 극복의 정당이라고 여기고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당이라고 보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돈과 권력을 가진 재벌과 정치인, 관료 등 기득권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주권자들의 힘은 오직 이른바 ‘쪽수의 힘’ 밖에 없다. 체제 전환의 힘은 이같은 기후정치 주권자들의 연대연합을 통한 기후정치의 조직화, 세력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은 이같은 기후주권자들의 조직화, 세력화에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운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같은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기후정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얼마전 정의당의 20대 대선후보 선출은 유권자인 국민도 배제하고 일반당원도 배제하고 오로지 철저하게 낡고 낡은 정파들간의 담함과 경쟁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정당이 무슨 국민과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기후위기 시대인 오늘날 진보-보수의 진영 논리는 낡을대로 낡은 이념과 실천이다. 지금은 좌우 대결이 아니라 상하 대결 시대이다. 초록세상과 흑색 세상, 무한경쟁 세상과 공존과 공유 세상의 대결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주권자들의 웅성거림이 새로운 전환운동의 시작이다
이런 대선은 아니라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대략 유권자의 1/3에 이른다고 평가된다. 한국인 94%가 지구온난화를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한겨레, 「한국인 기후위기 인식 선두」, 2021. 6. 14.)
녹색당의 제안으로 소수정당들이 기후대선운동본부를 결성한다고 한다. 민주노총에서도 대선에서 후보전술을 고려하고 있다고 들었다. 기후비상행동과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나름의 대선 전략을 구상 중인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대선 전략은 여전히 구태의연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늘 실패해왔던 전략의 답습이다. 이래서는 여야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1/3의 주권자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나아가 조직화는 언감생님 엄두도 낼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1975년 5월에 있었던 탈패 등 문화패들의 웅성거림과 시위, 나는 그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늘 반복되지만 사람은 늘 바뀐다. 그리고 혁명과 전환도 새로운 사람에 의해 늘 새롭게 시작한다.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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