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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그 사람과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8월 장례이야기

무연고 사망자를 배웅하는 다양한 사람들

'무연고 사망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흔히 연상하는 것은 '외로움', '가족이 없는 사람', '홀로 세상을 떠난 사람' 같은 쓸쓸한 키워드 입니다.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라고 해서 모두가 외롭게 살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피치 못한 사정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가족들이 함께 하기도 하고, 때로는 법률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하기도 합니다.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았던 고인에게 인연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요즘에는 그 인연이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고인을 돌보며 함께 시간을 보낸 요양보호사가, 종교활동을 함께 했던 교인들이, 고인을 사례관리하던 사회복지사가 마지막을 함께 하기도 합니다. '공영장례'는 그러한 사람들이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모두에게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는 인간 생애의 마지막 복지의 장입니다.

▲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요양보호사. ⓒ그루잠

10년간 함께 한 어르신을 배웅한 요양보호사

요양보호사와 어르신의 관계는 짧게는 한 달, 두 달 함께 하다 다른 사람으로 바뀌며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길게는 십 년이나 이십 년을 함께 하기도 합니다. 긴 세월 동안 하루에 반나절 가까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을 넘어선 또 다른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는 요양보호사가 돌보던 어르신의 장례에 참여하거나 직접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8월에 장례를 치른 고인의 장례에 온 조문객도 고인과 10년동안 함께 해 온 요양보호사 였습니다.

요양보호사는 고인을 세심하고 자상한 사람으로 회상했습니다. 10년 동안 함께 하며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고인에게 가족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결국 그만두지 못했고, 그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졌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요양보호사는 직접 상주를 맡아 고인에게 식사와 술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어르신에게 한 마디 건네고 싶다며 준비한 인사를 건넸습니다. "할아버지… 다음 생애에는 원하시던 가정 이루시고 손자, 손녀 많이 보셔요. 다복한 가정 꾸리면서 행복하게 사셔요!"

"어르신은 이미 70대인 저를 마치 손녀처럼 대하셨어요. 제가 십 남매 중 맏딸이어서 부모님 사랑을 많이 못 받았는데, 그런 부모님을 대신해 제게 많은 사랑을 주셨죠."

고인이 어떤 분이었는지 묻는 활동가의 말에 요양보호사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인과의 시간을 회상했습니다. 일흔이 넘은 자신을 마치 열살 배기 어린아이처럼 대하셨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미 시작된 초고령화 사회에서 만들어진 요양보호사와 어르신의 인연은 힘들고 괴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듯 했습니다.

장례의 마지막인 지방을 소지하는 순간까지 함께 한 요양보호사는 자신을 그토록 예뻐하고 아껴주셨던 고인을 다시 만나고 싶다며 합동위령제 날짜를 물어보았습니다.

▲ 직접 준비한 영정사진과 고인의 위패, 유골을 안고 서 있는 사회복지사들. ⓒ그루잠

인간 생애의 마지막 복지를 함께 한 사회복지사들

"고인은 상냥하고 친절하신 분이셨어요. 다른 분들을 동료로서 도와주고, 인도해주셨죠. 다만 감정기복이 심하셔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땐 한없이 우울해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자활엔 무척 적극적이셨고 점점 더 좋은 주거지로 이전하시게 되면서 자립에 성공하셨어요."

8월에는 한 고인의 장례에 사회복지사 10명이 참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상냥하고 친절했던 사람’으로 고인을 회상하던 사회복지사들은 상주를 맡고, 운구를 함께 하며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나눔과나눔의 활동가가 조심스레 직접 장례를 하실 의사가 있었는지 여쭤보자,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다면 함께 할 생각이었는데 연락할 방도가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법률상 가족이 아닌 이도 보건복지부 지침을 통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는데, 해당 제도를 몰라 발생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비록 연고자나 장례주관자로서 직접 장례를 치르진 못했지만 사회복지사들은 고인의 영정을 직접 준비해서 모셔왔습니다. 기관에 자원봉사 오시는 분께서 종종 사진을 찍어주시는데, 영정으로 쓸 계획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영정으로 쓰면 딱 이겠네”라며 먼저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고인의 영정사진도 그 때 찍어둔 사진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의 노력과 마음이 아니었다면 고인의 장례는 아마 영정 없이 치러졌을 것 입니다. 고인이 자활에 애쓰던 순간, 자립하던 순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사회복지사들은 가을에 있을 합동위령제에 참석해 고인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돌아갔습니다.

▲ 교인들이 직접 준비한 고인의 영정과 위패. ⓒ그루잠

"교인께서 돌아가셨는데, 무연고자입니다"

8월의 어느 날.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로 상담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서울 소재의 한 교회의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내담자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절차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어떤 이유로 절차가 궁금하신 건지 조심스레 물어보니, 무연고자로 알고 있는 교인 한 분께서 돌아가셨고 그 분의 장례를 교회가 함께 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때 당시엔 구청으로부터 의뢰 공문이 들어온 것이 없었기에 고인의 생년월일과 이름 등 간단한 인적 사항을 메모하고 장례의뢰가 접수되면 연락을 주겠다 약속한 뒤 상담을 종료했습니다.

그 이후로 며칠간 교회에서 수 차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고인의 안치기간이 이틀, 사흘, 나흘 점점 길어지다 보니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며, 장례는 아직인지 물어보는 전화였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평균 안치 기간은 약 한 달 정도입니다. 고인은 세상과 이별하기 위해, 고인을 아끼던 사람들은 고인과의 이별을 위해 남들보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공문이 들어오자마자 꼭 연락하겠다고 몇 차례 약속을 했고 고인은 결국 돌아가신 날로부터 여드레 만에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일반적인 장례를 생각하면 여전히 긴 안치기간이지만, 무연고 사망자의 평균 안치기간을 생각하면 굉장히 짧게 단축된 것입니다. 안치기간이 짧아진 이유는 교회 사람들이 고인의 연고자로서 민원인의 역할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마음 써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존엄한 삶의 마무리’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화장일정이 잡힌 뒤 발인하는 날 고인이 안치되어 있는 장례식장에서 교인들이 직접 비용을 들여 기독교식의 발인제를 지냈습니다. 멋진 영정사진과 ‘집사 OOO’이라고 적힌 위패도 직접 준비했습니다. 거의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조문객들 덕분에 주변에서는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 입니다. 빈소는 교인들이 고인과 나눴던 생전의 이야기들로 가득 찼습니다. 고인의 장례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배웅으로 치러졌습니다.

▲ 다음에 또 만나자며 서로 인사를 건네고 있는 나눔과나눔 활동가와 결연장례 어르신. ⓒ그루잠

죽음은 관계의 끝이 아닙니다

나와 관계가 있던 사람의 죽음이 그 사람과의 관계의 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관계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8월에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치르면서 만나게 된 다양한 사람들인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같은 교회의 교인들, 가족, 친구, 이웃들은 고인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고인을 생각하며 웃고, 울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만날 수 없지만 여전히 마음으로 이어진 관계는 장례 이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공영장례'는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관계를 위해 물리적인 이별의 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 생애의 마지막 복지의 장은, 그렇게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공영장례'를 통해 우리는 많은 사람과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그 무수한 안녕들을 생각하며 함께 인사를 나눠주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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