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이후 아프면 집에서 쉬라는 말이 정부나 언론을 통해 많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반월 시화공단 노동자 쉴 권리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난 공단 노동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병가를 연차휴가로 착각하거나 쉴 권리라는 말을 어색하게 느끼는 노동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일터의 조건은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만의 노동조건이 아닐 것이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허무맹랑하게 들린다. 우리는 왜 아파도 쉴 수 없는 것일까?
왜 노동자는 아파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가
노동자는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기부터 쉽지 않다. 한국은 병가를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아프면 쉬라고 말하지만 어떤 법에도 병가를 명시해두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정부가 각종 휴식/돌봄 제도를 권고했지만, 민간기업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조가 있는 회사는 그나마 단체협약을 통해서 병가를 도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회사는 병가제도 자체가 없거나 있어도 사용하기 어렵다. 실제로 작은 규모의 회사가 모여 있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의 56.6%가 병가가 없거나 도입 여부를 모른다고 답하는 이유다. 노동자에게 쉼은 권리로 요구해야 할 것이기보다는 회사의 '허락' 속에서만 가능한 배려에 가깝다. 그렇게 어렵사리 아픈 노동자가 쉼을 선택한다 해도 모든 비용은 오롯이 노동자 개인의 몫이다. 노동자에겐 아프면 쉬겠다고 말하는 감각보다 참고 일하는 감각이 익숙하다.
일터로의 복귀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회사는 최소인원으로 최대한의 업무를 분담시키는 것을 효율적인 운영으로 여긴다. 이런 분위기에서 노동자는 아파서든 아니든 자리를 비우면 그저 동료에게 일을 떠넘기는 존재로 낙인찍히기 쉽다. 하지만 노동자가 아프면 업무의 양이나 강도를 조정해서 기존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회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를 책임지기는커녕 회피하며 아픈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실제로 수년 전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과 같은 회사에서 병가를 사용한 노동자에게 고과 점수를 낮게 주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육아 휴직 이후에 노동자가 일터로 복귀할 때 회사가 기존 업무가 아닌 새로운 업무를 배분하거나 출퇴근이 어려운 곳으로 배치해 퇴사를 압박하는 맥락과 다르지 않다. 복귀의 과정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에서 아파서 쉬겠다는 말은 퇴사까지 각오할 때 가능한 말이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아플 때 쉴 수 있으려면
2020년 4월 코로나19를 대응하기 위해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생활방역수칙 1호로 내건 구호가 “아프면 집에서 쉬세요"였다. 하지만 쿠팡의 배달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고, 콜센터 노동자가 쉬지 못하고 일터에 나가면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쉴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쉬라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는 말에 불과하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의 확산이 보건의료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재난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일하는 누구나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아픈 노동자가 회사에 쉬겠다는 말을 할 수 있고, 이를 이유로 경제적인 위협을 받지 않으며,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상병수당은 일하는 누구나 아파서 쉴 때 공적인 부조를 통해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는 1999년부터 상병수당을 도입할 수 있다고 명시했었다. 하지만 2020년 7월에서야 정부는 상병수당 도입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올해 겨우 보건복지부에서 전문가 자문 회의를 시작해 내년부터 시범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본격적인 도입논의에 앞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상병수당 논의가 시작된 배경이다. 근로기준법의 중요 조항에서 적용이 제외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를 포함하여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병가제도의 도입이나 유급 병가제도 도입논의는 노동조건에 따라 적용 범위가 달라지기 쉽다. 모두 필요한 제도의 도입이지만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모든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만드는 과정이다. 상병수당제도의 도입에 대한 요구 역시 사업장의 규모, 계약 형식에 상관없이 일하는 누구나 아프면 치료받고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상병수당 도입논의를 그저 복지-지원 제도의 도입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의 역량을 확장하는 과정으로 확인하며 도입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또한, 상병수당 도입의 과정이 모든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 되려면 다른 제도의 변화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먼저 노동자가 아파서 쉬었다는 이유로 낮은 고과를 주거나 해고를 하는 부당노동행위 대해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기업이 노동자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제도도 달라져야 한다. 부당노동행위의 입증 책임을 사업주의 의무로 전환하고 노동자가 아플 때 쉴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있음을 회사 스스로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더해 앞서 이야기한 병가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상병수당이 아플 때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라면 실제로 노동자가 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 병가제도다. 이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바깥의 노동자가 일을 쉬어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로 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회가 일하는 사람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그간 외면해온 대책들을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쉴 권리 확장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쉴 권리는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는 그 시작점에 놓여있다. 지금까지 노동자의 쉼은 다시 노동하기 위한 시간이라는 전제 속에서 논의되어왔다. 아픈 노동자가 쉬는 것도 업무의 연관성을 확인받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정당한 쉼으로 인정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일을 이어나갈지 쉴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노동자가 아파서 쉼을 선택한다는 이유가 일의 세계에서 배제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자.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받든 아니든 아프다는 이유만으로도 쉴 수 있을 때 쉴 권리는 확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던진 상병수당제도와 병가제도 도입 논의를 그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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