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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탈놀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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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탈놀이는 무엇일까?

[탈춤과 나] 25 어연선의 탈춤 ②

이쯤에서 박인배 선배(선생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박인배 선배는 72학번으로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 출신이며, 이른바 마당극 2세대의 대표적인 분으로 문화운동 및 노동문화운동의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극단 ‘현장’을 창단했으며 ‘노동의 새벽’, 노래판굿 ‘꽃다지’등 다수의 마당극과 공연을 연출하셨다.

그런데 이 분도 역시 탈춤에는 영 소질이 없으셨다고 한다. 많은 마당극 선배들이 전설적인 춤꾼이거나 판소리나 연기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셨지만 박인배 선배님은 ‘로봇연기’, ‘전국음치협회 회장’ 등의 별명을 가질 정도로 실연에는 재능이 없으신 편이었다. 그런데 마당극 연출을 하셨다. 탈춤의 이론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으셨다. 탈춤과 대동놀이 등 우리의 전통연희의 원리를 분석하여 우리 시대의 연극, 공동창작 방법론 등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다.

“왜 지금 우리가 탈춤을 추고 있는가? 왜 지금 우리가 연극을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셨다, 그를 통해 왜 우리가 시대정신을 잃지 않고 연극(마당극)을 해나가야 하는지, 관객(시민)들은 공연의 대상이 아니라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달아 나갔다.

지금에서야 시민들이 직접 연극을 하거나 공연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극단 ‘현장’이 공연할 당시만 하더라도 관객과 어우러지는 연극은 순수예술(?)이 아니었다.

극단 ‘현장’의 연극은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보다 ‘현장’에서 공연되는 일이 더 많았다. 주로 노동현장(공장)이었다. 공장에 무슨 무대가 있겠는가? 공장 앞마당이나 강당, 식당 한 켠에 걸개그림을 걸어놓고 빙 둘러앉으면 무대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없다. 그 옛날 저잣거리에서 횃불을 피워놓고 둘러서서, 탈을 쓴 배우들과 하나가 되어 양반을 조롱하고 가슴 속 한맺힌 이야기를 풀어내며 한판 놀았던 그때 그 시절처럼, 노동 현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바로 그 시대의 탈춤판이었던 것이다.

▲극단 현장 <횃불> 공장의 작업 과정을 춤으로 표현했다. (1988. 서울 청파소극장) ⓒ어연선
▲극단 현장 <금수강산 빌려주고 머슴살이 웬 말이야> 공장 공연. 다국적 기업 콘트롤데이타 노동조합 투쟁 사례를 다룬 작품. 서있는 사람들이 배우이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다. 파업 중인 공장에서의 공연으로 추정된다. (1988) ⓒ어연선
▲극단 현장 <돈놀부전> 순회공연. 이 작품은 흥보전을 재해석한 토론극으로 1990년 3당 야합의 정치적 상황을 탈놀이로 표현하여 주목을 받았다.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등을 형상화한 탈들이 구체적이다. (1990. 지역사회단체 초청공연으로 추정) ⓒ어연선

극단 ‘현장’은 노동자나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로 창작극을 공연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강좌로 시작해서 교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당극 교실’을 꾸준히 개최했다. 일반인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마당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인기를 끌었다. 마당극 교실의 커리큘럼 중에 ‘우리 시대의 탈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 잘 못하던 노동자들이 종이로 만든 탈을 직접 만들어 쓰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판 흐드러지게 놀아제끼는 것을 보면 아, 이래서 탈춤이 그 시대 민중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로구나! 예술이 별건가, 이런 게 예술이지! 하고 감동을 먹었었다.

▲극단 현장 <마당극교실> 포스터(1992) ⓒ어연선
▲극단 현장 <마당극교실> 프로그램 중 참가자들이 만든 종이탈 (1990년대 중반 추정) ⓒ어연선

탈춤을 잘 못추는 극단 ‘현장’이 창작탈춤을 가지고 콜롬비아와 쿠바의 국제적인 연극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제목은 ‘다시 온 취발이’였다. 강령탈춤의 취발이 노장과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박인배 선배님이 연출을 하셨고, 내가 대표집필을 했다. 몇 달간 선배님과 단원들과 함께 강령탈춤을 열심히 연구했고 그 결과물은 문화관광부 전통연희 개발작에 선정되어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극단 ‘현장’에서는 처음으로 전통탈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본 셈인데,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박인배 선배님의 연출은 시대를 상당히 앞서가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이 작품도 요즘 다시 한다면 오히려 먹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를 연극쟁이로 살아가게 해주신 박인배 선배님은 안타깝게도 2018년 지병으로 타계하셨다. 생존해 계셨더라면 또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구상을 하시며 후배들을 괴롭히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를 살아가며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지금에 대해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항상 보고싶다.

그럼, 그동안 나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일찍이 연기를 포기하였으나 연출, 기획 등으로 재빠르게 전향하여 다른 사람들의 춤과 연기를 지적질하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꽤 성공한 셈이다. 봉산탈춤, 강령탈춤, 고성오광대 기본 동작만 십수년 하며 구제불능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탈춤을 가르치기도 하고, 탈춤을 바탕으로 한 공연 대본도 쓰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이제까지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탈춤’은 나에게 언제나 넘을 수 없는 산,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사랑과도 같은 존재였다. 잘 추고 싶지만 잘 되지 않아 얼마나 속을 태웠던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연기를 때려치게 된 것도 탈춤을 잘 못 추어서라고 생각했다. 연기는 나보다 훨씬 못 하는 것 같은데, 탈춤 잘 춘다고 사랑받는 친구들을 보면 괜실히 미웠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탈춤(마당극)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알려준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에 대한 믿음이 나에게 연극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함께 한 사람들 덕분에 부족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로 밥벌이를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21세기도 한참 지나가고 있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가상의 현실에서도 공연이 펼쳐지기도 하는 시절이다.

다시한번 이 시대의 탈춤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탈놀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대학에 우후죽순 생겨나던 탈춤반과 마당극패는 이제 눈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아직도 탈춤 추는 젊은이들이 있다. 몇 해전 무대를 찾기 힘들어하는 그들의 무대를 기획했을 때 지금 이런 공연이 먹힐까? 고민했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춤추는 그들에게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고 그 앞에서 젊은 춤꾼들은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관객들에게) 어디에들 계셨어요? (너무 그리웠어요)” 그들을 보며 탈춤이 유행하는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탄소년단의 몸짓도 왠지 탈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탈춤은 영원할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 한판 신명나게 놀아보는 즐거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말이다*

추신 : 극단 <현장>의 마당극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졸고 <극단 현장의 노동연극 연구> (2019, 동국대 석사학위논문)에 실려 있습니다.

어연선 : 덕성여대 국문과 마당극패 출신, 극단 <현장> 단원 및 대표 역임.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 등을 거쳐 현재 광명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재직중.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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