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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이 '말잔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안진단] 북한이 주장하는 '이중기준'의 패러독스

북한이 올해 발사체 발사에 나선 것은 총 8회에 달한다.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인 1월 22일 단거리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지만 당시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합참은 유엔결의 위반이 아닌 순항미사일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직후인 3월 21일 단거리 순항미사일 2발, 3월 25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8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강력히 반발한 북한은 9월 11일과 12일에 걸쳐 사거리 1500km에 달하는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으며, 이어 9월 15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철도를 이용해 발사했다. 9월 28일에는 극초음속 미사일, 9월 30일에는 반항공미사일(지대공) 발사가 이루어졌다.

북한은 10월 19일 신포 동쪽 해상에서 동해상으로 사거리 590km, 고도 60km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1발을 발사했다. 북한 매체는 "《8.24영웅함》에서 또다시 새 형의 잠수함발사탄도탄을 성공시켰다"고 보도해 이번 발사가 잠수함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했다. 북한은 2016년 8월 24일 SLBM 발사에 성공했지만 수중 바지선을 사용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미국은 SLBM 발사를 규탄하고 10월 초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이어 두 번째로 유엔안보리 비공개회의를 소집했다. 한 달에 두 번이나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는 안보리회의가 개최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은 10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SLBM 발사가 미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며, 특히 "미국과 남조선은 우리의 주적대상에서 배제되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지난 10월 11일 국방발전전람회 기념연설에서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주적이 아니라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발사체 발사가 '주권국가의 고유하고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는 입장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9월 15일 담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의 미사일 전력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에 충분하다"는 언급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미사일 개발이 "당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계획"의 일환임을 강조했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에 이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 발사 직후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직전 개최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향후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중단, 그리고 핵무기 기술을 외부로 이전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이는 자발적 모라토리엄 성격이며, 이후 북한은 이를 준수하고 있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발사체 발사를 본격화했지만 모두 1000km 이내의 단거리 또는 유엔결의 위반이 아닌 순항미사일 등이었다.

유엔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이 적용된 발사를 금지하고 있지만 단거리 발사체에 대해 제재를 부과한 적은 없다. 북한과 같이 유엔이 단거리 발사체까지 금지한 경우는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무기개발과 자신들의 경우를 차별한다며 이중기준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북한의 행위에는 '원죄'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붙는다. 우선 북한은 국제사회가 금지한 핵개발에 나서 가혹한 대북제재를 자초했으며, 단거리라고 해서 핵무기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김 위원장은 금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를 통해 전술핵 개발의 본격화를 지시한 바 있다.

단거리 발사체는 전술핵의 운반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북한이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발사체의 상당부분은 핵탄두 탑재를 목표로 하며, 북한 역시 이를 숨기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전술핵 체계를 완성하면 한반도 전역은 핵위협에 노출된다. 북한이 주장하는 이중기준의 명분은 이해와 양보의 수준을 넘어선다.

▲ 20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전날인 19일 '신형 잠수함 발사 탄도탄'(SLBM)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잠수함인 '8.24 영웅함'에서 SLBM의 시험발사를 진행했다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불참했다. ⓒ로동신문

종전선언의 추억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1일 제 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할 것을 제안했다. 종전선언은 이미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3자 또는 4자에 의한 종전선언을 추진한다'고 남북한 간에 합의했던 것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참여 주체였지만 공식적인 정규군이 아닌 중국 인민지원군 성격이었다. 현재 중국군은 북한에 주둔하지 않으며, 중국 인민지원군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3자 또는 4자 간 종전선언 구상의 배경이다.

남북은 2018년 4.27 판문점 공동선언에서도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도 종전선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은 10월 16일 도쿄에서 개최된 '동아시아의 평화와 조선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기조 발언에서 "그때(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로운 조·미관계의 수립'을 종전선언으로부터 시작할 것을 제기했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의 종전선언 제안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제안 이후 북한은 종전선언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전제조건으로 이중기준과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이후 김 위원장이 직접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을 지시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의 이유로 "북남 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고 조선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들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을 거부한 행보로 보기 어려운 맥락이다.

바이든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주요 인사들은 북한과 모든 것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개진해 왔으며, 최근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미묘한 입장변화를 보이고 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9월 22일 브리핑에서 비핵화를 위한 외교를 강조하면서도 종전선언에 대한 논의가 열려있다고 언급했다.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10월 18일 워싱턴에서 한·미 간 협의 직후 한국전 종전선언 이슈를 계속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미국의 종전선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종전선언이 한·미동맹과 유엔사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북한을 대화로 견인할 수 있다면 미국도 반대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한 나라이자 정전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로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이 종전선언을 거부할 이유가 없으며, 이후 자국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줄 평화협정 과정에 참여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2007년 제기된 종전선언은 2018년 남북 및 북·미 정상외교를 통해 실현가능성이 제고되었지만 트럼트 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이제 3년이 지나 종전선언 구상의 실현에 과거와 다른 긍정적 조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종전선언 제안에 따른 한·미·일 협의 동향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전후해 한·미 간 협의 및 관련 동향이 분주해졌다. 9월 22일 뉴욕 롯데뉴욕팰리스 호텔에서 한·미·일 외교장관이 3자 회담을 가졌으며, 이후 곧바로 한·미 양자 회담이 진행되었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회담 직후 취재진에게 공동의 이슈와 아울러 종전선언 및 북한 핵·미사일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10월 12일에는 서훈 안보실장이 워싱턴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종전선언을 포함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방안을 협의했다.

한·미 북핵 수석대표 간 협의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성 김 대북특별대표는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10월 18일 워싱턴에서 회동한데 이어 10월 23일 다시 한·미 간 협의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성 김 대표와 노 본부장은 지난 8월 23일 서울 회동 이후 8월 30일 워싱턴, 9월 14일 도쿄, 9월 30일 자카르타에서 각각 협의를 진행했다.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종전선언 제안 전후 2개월 동안 한·미 북핵 수석대표 간 6차례의 회동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성 김 대표의 이번 방한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그동안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의 진전된 추가 검토 입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한·미·일 및 중·러와의 협의도 병행되었다. 노 본부장은 9월 14일 도쿄 협의에 이어 10월 19일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을 포함해 한·미·일 3자 및 한·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진행했다.

또한 노 본부장은 10월 14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북핵 수석대표인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만났다. 모르굴로프 차관은 8월 서울을 방문해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 이어 통일부를 방문한 바 있다. 노 본부장은 9월 29일에는 중국의 류샤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화상 협의를 진행했다.

한·미·일 정보당국 간 협의도 진행되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방한해 10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데 이어 미국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방한해 10월 19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다키자와 히로아키 일본 내각 정보관과 비공개로 3자 회동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대북현안과 경제안보 이슈,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보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종전선언의 방향

문 대통령의 구상에 따르면 종전선언으로 정전체제의 법적 지위가 달라지지 않으며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이 유효한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입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 9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청와대

북한 비핵화의 복합성과 장기성, 그리고 미·중 간 전략경쟁을 고려할 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어려운 과제이며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신뢰를 구축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여정을 시작하는 계기와 징표로서 종전선언을 도출하자는 것이 한국의 구상이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의 종전선언은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당장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해 종잇장에 불과하다며 의구심을 표명했다.

미국 역시 그동안 유엔사령부의 재활성화(rehabilitation)작업을 통해 정전체제를 강화해 놓은 상태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단순한 분쟁의 종식에 대한 언술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지향하는 확실한 약속의 성격이 되어야 한다.

우선 종전에 대한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종전선언을 통해 9.19 군사분야합의서를 넘어서는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본격 가동을 통해 비무장지대의 완전한 비무장화는 물론 군사적 대치상황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군사적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종전선언의 의미는 퇴색하게 된다.

나아가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에 대한 방향성과 협의구도를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관련국 간 협의가 본격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당면과제인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이 재확인되어야 하며 비핵화와 상응조치에 대한 개략적인 로드맵이 포함되어야 한다. 아울러 새로운 남북관계 형성에 대한 남북한 간의 의지와 약속도 포함되어야 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 종료를 선언했고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문제는 아직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연일 최악의 난관을 강조하며 당면한 복합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말잔치가 아닌 진정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확고한 입구로서 종전선언을 재인식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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