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를 하면 재미있는 점이 많다. 연령층이 다양한 것이 그중 하나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귀염둥이부터 제대한 복학생, 공부에 한이 맺혀 늦게 입학한 고령자 등 다양하다. 대학원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막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은 20대 초반인데 퇴직을 앞둔 교장이나 타대학 교수들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래도 배움에는 너나 없이 부지런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필자에게 ‘합쇼체(아주높임)’를 사용해서 언어생활을 하는데, 복학한 예비역 학생들은 여전히 군대 용어를 써서 아이들을 오염(?)시킬 때가 있다. 아직 군에 다녀오지 않은 학생들도 그런 말투가 재미있는지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제일 심한 것이 ‘얄짤없다’라는 말과 문장 끝에 항상 “~~지 말입니다.”하고 말을 맺은 것이다. 도대체 ‘얄짤없다’가 무슨 말이냐고 하면 대부분은 대충 본인이 알고 있는 어휘를 총동원하여 풀이하기도 한다. 우선 제일 많이 풀어내는 말이 “봐 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설명한다. 때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이 사전에 등재된 말일까 해서 찾아보았다. 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고 <오픈사전>에는 “1.남의 일이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 2. 어림도 없다는 뜻의 신조어”라고 나타나 있다. 결론적으로 표준말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 거의 다 이 말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애원해도 얄짤없어.
한 번 더 그러면 아무리 사과해도 얄짤없으니 알아서 해.(<고려대 한국어사전>)
한 번만 더 그래 봐. 더는 얄짤없어.(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이상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이지만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이상 표준어가 아니므로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래도 우리말이니 어원이라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근원을 찾아보려고 한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일절(一切)없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아마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한때 유행했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속에서 어느 여학생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웬 열?”이었다. 따지고 보면 “웬 일이니?”하는 것에서 ‘일’이 ‘열’로 바뀐 것으로 유추해 본다. 마찬가지로 ‘일절 없다(아주, 전혀, 절대로 없다)’라는 말에서 ‘모음변이(일=>얄)’와 ‘경음화, 모음변이(절=>짤)’현상이 일어나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본다. 흔히 ‘행위를 그치게 하거나 어떤 일을 하지 않을 때’에 쓰는 말에 ‘없다’를 붙여서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을 강조한 것으로 본다. 장난삼아 치어(稚語 : 어린 아이의 말)를 쓰던 것이 온 국민의 용어로 바뀐 것이다. 아마도 60대가 넘은 기성세대도 이런 표현을 아직 쓰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듣던 말이고, 필자의 친구들도 아직도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을 흔히 듣는다.
또 하나 앞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이 말끝마다 “~~지 말입니다.”라고 마무리하는 습관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아마도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 이후인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군에 있던 시절까지만 해도 언어생활은 무조건 ‘다‧나‧까’로 끝나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사용했다. 그래서 말끝마다 “그렇습니다. 했습니까? 했나?” 등으로 마무리했었다. 그러던 것을 2016년에 ‘말투개선지침’을 내려 공식적으로는 ‘다‧나‧까’를 쓰되 내무반에서는 “~~요”를 써도 된다고 했다.(손진호, <지금 우리말글>) 그런데 <태양의 후예>라는 방송 이후 우리 학생들도 늘 “~~지 말입니다.”를 입에 달고 다녔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녀석들은 사석에서 이런 표현을 과감하게(?) 쓰곤 했다. ‘다‧나‧까’를 쓰는 것을 고치라고 하면 그것은 금방 고치는데 이상하게 “~지 말입니다.”는 잘 고쳐지지 않았다. 당연히 어법에 어긋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사용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과거에 “~~하시게요.”라는 말이 잘못되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그것이 아주 표준어처럼 쓰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앞에 가시게요.”, “먼저 가시게요.” 등등의 언어생활이 바른 표현인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오호 애재라! 아무리 변하는 것이 언어라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 민족의 얼이 서려 있는 말인데 바른 언어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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