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홍정운 군이 현장실습 도중 사망했다. 지난 6일, 요트업체에서 12kg 납 벨트를 허리에 차고 물속으로 들어가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다 목숨을 잃었다. 홍 군은 잠수자격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홍 군의 현장실습은 잠수가 아닌 선내 실습이었다. 현장실습을 나온 지 열흘 만에 홍 군은 세상을 떠나야 했다.
문제는 이런 참사가 늘 반복된다는 점이다. 2017년 1월에는 전주 콜센터에서 일하던 홍수연 양이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생수공장에서 일하던 이민호 군이 프레스기에 끼어 사망했다. 2014년 1월에는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상사의 폭언,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2월에도 현장실습생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러한 아이들의 죽음의 이면에는 '현장실습'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아이들은 현장실습이라는 통로를 통해 사회로 나가지만 그 끝은 매우 좋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현장실습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존재 이유에 맞춰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관련기사 : [현장실습의 명암 上] 구사대 동원되고 뇌출혈로 쓰러지고...고등학생 '현장실습'의 역사)
현장실습의 두 가지 목적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관해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여수의 한 특성화고 해양레저관광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홍정운 군이 현장실습 도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문 대통령의 이러한 지시는 그에 따른 조치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정리하면, 현행 현장실습의 존재 이유는 '취업을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특성화고권리연합회 등 관련 단체들도 여기에 동의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장실습 제도가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다. 취업을 위해 특성화고에 들어왔는데 그 수단인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한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실습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적에 부합해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현장실습이 추구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일을 통한 교육'으로 현장실습을 통해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작업을 통한 이론 습득과 실습 교육, 현장실무능력 향상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선 직업계고에는 학생들이 실무를 연마할 기계나 장치가 없었던 점도 이유였다. 학생들을 실습할 장비가 있는 공장 등에 직접 보내 교육받도록 하자는 게 현장실습의 명분이었다. 그렇기에 첫 번째 목적에서 현장실습은 '학생 교육'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장실습의 두 번째 목적은 교육과는 거리가 있다. 학생들을 '성공적인 노동시장으로 이행(STW: School To Work)'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장실습은 학교 졸업생들이 안정적으로 노동시장에 적응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는 문 대통령과 특성화고 관련 단체들이 이야기하는 현장실습의 용도와 일맥상통하다.
목적을 달성하기엔 근본적 한계를 가진 현장실습
이렇듯 서로 성격이 다른 두 가지 목적을 가진 게 현재의 현장실습 제도다. 주목할 점은 현행 현장실습 제도로는 이 제도가 지닌 목적들을 달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현장실습이 '일을 통한 교육'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장실습을 진행하는 기업에서의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수다. 교실과 달리 일하는 현장에서의 교육은 숙련된 전문 교수 인력,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 그리고 일과 교육을 통합하는 프로그램 등이 두루 갖추어져야 한다. 그래야 현장에서의 실습, 즉 교육이 이뤄질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부가 2020년 11월 발표한 '2020년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 통계 조사 세부 분석 자료'를 보면 2020년 직업계고 전체 졸업자 8만9998명 중 27.7%(2만4938명)가 취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이들 취업자 중 5인 미만 기업에 취업한 비율은 6%(1496명), 5인~30인 미만은 31.5%(7829명)로 전체의 37.5%를 차지했다. 학생 40% 가까이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셈이다.
사업 규모가 작을수록 영세한 사업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영세 사업장에서 현장실습 담당 인력이나 프로그램을 위한 투자 등은 불가능하다. 영세사업장에서는 업체 사장이면서 동시에 직원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전북에 있는 10인 이하 사업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A학생은 "실습을 갔더니 누가 무엇을 하라는 것도 없고, 가르쳐 주는 것도 없었다"며 "1주일 내내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거나 청소만 했다"고 설명했다.
또 한편으로는 현재의 산업구조 하에서 '실습을 전제로 하는 현장실습이 필요한가'라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예를 들어 현장실습생의 상당수는 열악한 사업장으로 파견되지만, 또다른 상당수는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단순 기능 직무로 파견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특성화고 졸업 취업생 중에서 30~300명 미만 사업장에서는 38.7%(9629명), 300인~1000명 미만은 8.2%(2050명), 1000명 이상은 15.1%(3,762명)가 일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는 현장은 대부분 기계화가 이뤄지기에 단순 노동을 배우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1주일가량이면 숙련되는 단순 업무에 '실습'이라는 용어를 붙여 적게는 수개월 동안 '교육'하는 게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시장과 학생을 이어주는 교두보
이처럼 교육적 기능이 사라진 현장실습이지만, 두 번째 목표인 '성공적인 노동시장으로의 이행'은 효과적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현장실습생들은 노동자가 받는 최저임금 이상의 실습수당을 받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하는 '실습'이 교육이 아닌 노동임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프레임 변화는 '사업주-학교-학생'의 암묵적 합의와 교육부의 방관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기존 노동 인력보다 저렴한 인건비를 지불해 이득이고, 학교는 취업률을 높여서,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 전 취업처가 미리 결정되기에 단절 시간을 줄여 좋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한계도 명확하다. 학생 입장에서는 직업에 관한 이렇다 할 고민이나 탐색도 하지 못하고 곧장 직장을 결정하는 식이기에 중도 탈락이 높다. 전공과 상관없는 곳으로 현장실습을 가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직업계고 졸업자 유지취업률'을 보면 2020년 직업계고 졸업자 중 4월 1일 기준으로 일하던 취업자가 약 6개월 후인 10월 1일 기준에도 취업자 자격을 유지하는 비율(유지취업률)이 77.3%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4월 1일에 일하는 졸업생이 100명이라고 하면, 10월 1일에는 그 수가 77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말하면 일하던 23명은 일을 그만뒀다는 뜻도 된다.
허수도 존재한다. 교육부에서 취업률의 기준으로 잡은 건, 오로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또는 고용보험 가입자였다. 즉, 4월에 건강보험에 가입한 취업자가 10월에 가입돼 있는 취업자와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2020년 직업계고 졸업자 8만9998명 중 27.7%(2만4938명)가 취업을 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10월 전에 일을 그만뒀을 가능성도 높다. 대신 그 자리를 취업하지 않았던 나머지 72.3%에서 메웠을 가능성도 크기에 유지취업률을 77.3%로 잡는 것은 과한 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은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아이들 대다수는 오래 일을 하지 못하고 나오는 게 현실"이라며 "교육부 통계에는 도제학교 취업생 등 여러 요소들을 포함한 수치"리고 주장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도 문제다. 40%에 가까운 학생들이 30인 미만 사업장인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 882명 중 5∼49인 사업장(402명·45.6%)에서 산재 사망이 가장 많이 발생했고 5인 미만 사업장(312명·35.4%)이 그 뒤를 이었다.
전체로 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비중이 81%나 됐다. 이번에 현장실습 중 사망한 홍정운 군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 업무였으나, 지켜지지 못했다.
"현장실습, 공교육 과정에서 진행돼야 한다"
결국, 학교와 기업의 예산 및 역량 부족으로 교육 목적의 현장실습은 사라지고 일자리 수단으로만 현장실습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열악한 일자리에 내몰리는 상황이라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50년 전 아이들을 '산업역군'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현장실습의 존치여부가 논란이 되는 이유다.
김경엽 위원장은 "좋은 취지에서 진행하는 현장실습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다만 "지금과 같이 학생을 희생하는 현장실습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역시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누군가는 지금의 위험한 노동현장이 바뀌면 아이들이 죽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면서도 "이는 근본적으로는 맞는 말이나, 현장실습의 문제에 대한 논점을 흐리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김 위원장은 "현장실습의 문제는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가 이 제도를 교육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일자리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러한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의 현장실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업계고 공교육 과정에서 현장실습이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그 과정에서 직업훈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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