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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천공스승 대선 레이스...전화받다 죽고, 조개 떼다 죽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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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천공스승 대선 레이스...전화받다 죽고, 조개 떼다 죽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기자의 눈] 콜센터 상담사 홍수연부터 여수 요트업체 현장실습생까지

2017년 3월 초였다. 전주에서 청소년 운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전화가 왔다. 얼마 전 여고생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아무래도 직업계고 현장 실습 문제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자세한 것은 전주로 내려와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당시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심판 중인 헌법재판소를 취재 중이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온통 탄핵에 쏠려 있는데 여고생의 죽음이라니. 부끄럽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면 적당히 넘어가고 싶었다. 한국은 10대 청소년이 한 달 평균 9명씩 자살하는 OECD 자살률 1위 국가가 아닌가.

더구나 바로 전해 발생했던 구의역 참사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오랫동안 산업재해 현장을 취재해 온 터라,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끝도 없이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에, 정확히는 무엇을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지쳐 버렸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어느새 습관처럼 노트북을 챙겨 들고 전주로 향하고 있었다.

▲ 11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웅천친수공원에서 요트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여수의 한 특성화고교 3년 홍정운 군의 추모문화제가 열려 홍 군의 친구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홍 군은 지난 6일 오전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기 위해 잠수를 하던 중 변을 당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탄핵 정국 때, 죽은 콜센터 현장실습하던 홍수연 학생

특성화고 졸업을 앞둔 전주 LG유플러스의 협력회사, 즉 하청업체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교 3학년 홍수연 학생이 두 달 전인 2017년 1월 22일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문제는 많았다. 애견학과였던 수연 학생은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콜센터 상담사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애초 현장실습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만 학교는 이를 묵인했던 것이다.

더구나 수연 학생이 일했던 곳은 'SAVE' 부서였다. 일명 '욕받이' 부서다. 인터넷 등을 해지하려는 고객이 전화를 하면 이를 막는 부서였다. 이 부서는 콜 센터 내에서도 일하기 힘든 부서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데도 고등학생 현장실습생인 수연 학생은 이 부서에서 일해야 했다.

저녁 6시가 퇴근 시간이었으나, 수연 학생이 이 시간에 퇴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퇴근 시간에 맞춰 수연 학생을 데리러 가려 문자를 보내면 "아직 콜(call) 수를 못 채웠다"는 딸 문자를 받기 일쑤였다.

고객들에게 '육두문자'는 기본으로 들어야 했다. 수연 학생은 친구들에게 "다른 건 다 견디겠는데, 부모님 욕하는 건 못 견디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업무 시간에는 화장실 갈 틈도 없었다. 그날 상담한 내용을 가지고 매번 시험도 치러야 했다. 그날그날 다른 상담사의 상담 통화 내용을 교육 차원에서 '받아쓰기'도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수연 학생은 각각 다른 월급액을 명시한 두 개의 계약서가 존재했다. 수연 학생과 콜센터 업체와 맺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보면 수연 학생이 받은 월급은 160만5000원이었다. 그러나 콜센터에 출근한 지 6일이 지난 뒤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1개월(113만5000원), 2개월(123만5000원), 3개월(128만5000원), 4~6개월(133만5000원), 7개월 차 이후(134만5000원) 순으로 월급을 받는 것으로 명시돼 있었다.

수연 학생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가 아닌 근로계약서에 따른 임금을 받았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는 학생, 업체, 그리고 학교 삼자간 협약을 맺고 있기에 업무조건도 학생에게 유리하다. 실습학생의 업무조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학교에서 개입할 여지도 있다. 반면 근로계약서는 학교를 배제하고 학생과 업체 간 일대일로 계약을 맺기에 열악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학교에서는 이러한 수연 학생의 현장실습 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연 학생이 욕받이 부서인 'SAVE' 부서에서 일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현장실습 기간에 담임교사가 두 차례 면담을 진행했으나 '산업체 적응도, 현장실습 만족도, 업무 파악 정도' 등을 모두 10점 만점 줬다.

그렇게 만점을 받은 수연 학생은 담임과의 두 번째 면담이 있은 지 약 두 주가 지난 시점에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연합뉴스

배 바닥에 붙은 조개 떼다 사망한 현장실습생 홍정운 학생

수연 학생이 죽은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2021년 10월 6일, 또 한 명의 특성화고 학생이 현장실습 도중 사망했다. 전남 여수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교 3학년 홍정운(18) 군이 배에 걸쳐있는 사다리로 8.5m 깊이 바다에 들어가 잠수 작업을 하다 익사했다. 배 바닥에 붙은 조개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 이런 변을 당한 것이다.

홍 군은 잠수자격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는 학생에게 위험한 작업을 시킬 수 없도록 돼 있다. '잠수 작업'도 여기에 포함돼 있지만 업체는 홍 군에게 잠수를 지시한 것이다.

더구나 잠수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2인1조'로 진행해야 하고, 안전관리자가 있어야 하지만, 사고 당시 홍 군은 홀로 잠수해야 했다. 더구나 홍 군의 현장실습은 잠수가 아닌 선내 실습이었다. 그 결과 현장실습을 나온 지 열흘 만에 홍 군은 세상을 떠나야 했다.

11일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현장실습생이 받는 '임금'이 '현장실습 지원비'로 이름을 바꿨을 뿐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과 '학습중심 현장실습'은 다르지 않다"며 "직업계고 학생의 취업 불안을 담보로 전공과도 무관하며 취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일자리로 학생 신분인 청소년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 현장실습의 실상"이라고 비판했다.

홍 군의 사망을 두고 교육부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전남교육청과 함께 사망사고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관련 사항을 파악하고 현장실습 안전 확보를 위한 보완 등 후속 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장실습을 하다 죽은 학생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2017년 11월에는 생수공장에서 일하던 이민호 군이 프레스기에 끼어 사망했다. 2014년 1월에는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상사의 폭언,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2월에도 현장실습생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모두가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를 인지하지만, 취업률이라는 명분으로 이러한 죽음이 반복돼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촛불 정국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다를 바 없었다. 2017년 12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1일 "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 학습권이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관계 당국에 지시했으나, 결과는 어땠는가.

애석하게도 내년 3월에 치러지는 대선 이후에도 특성화고 학생들의 삶은 달라질 게 없을 듯하다. 특권층 카르텔의 돈잔치 대장동 의혹에, 손바닥 '王'자 논란, 항문침, 천공스승까지. 온갖 지저분한 정쟁으로 뒤범벅된 대선 레이스는 열악한 처우에 놓인 아이들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좁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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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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