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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나는 유아기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오호 통재라"

[최재천의 책갈피]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이상희 옮김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한 대목, 마녀의 말이다. 

"누구는 우리가 아름다워지거나 사랑받거나 존중받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또 누구는 우리가 부자가 되어 편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고 말하지요. 다 틀린 말이에요."

그렇다면 진정 여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중세영어로 쓰인 가장 유명한 판본을 그대로 인용하면 "whate wemen desyren moste specialle"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무엇보다 가장 원하는 것은 자기결정권(sovereynté)이에요." 

자기결정권은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예나 지금이나 자기결정권이야 말로 인간 존엄의 근본이다.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원리야말로 민주주의 원리요 시장주의의 원리요 근대 민법의 기본 원리다. 자기결정 원리는 자기책임의 원리로 이어진다. 그래서 시민으로서, 시장 참여자로서 권리와 책임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것이다. 존중받기 위해서는 존중해야하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의사와 행동을 결정해야한다. 여건 남이건 어리건 나이들었건 이 근본원리는 황금율이다.

어린시절, 나이가 들면 마치 광고나 드라마에 나오는 중년처럼 품위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중후해지기는 커녕 덕성과 품위는 역진중이다. 그래서 늘 부끄럽기만 하다. 책에는 품위를 지키는 스물일곱 가지 훈계가 적혀있다. 

스물여덟 가지가 아닌 스물일곱 가지 덕을 다루는 까닭은, ‘1+2+4+7+14’처럼 약수들의 합으로 이뤄진 28은 이른바 완벽한 숫자인데, 완벽함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고, 숫자 27은 완벽에 조금 못 미쳤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다. 덕성은 '현명함', '유머', '열린마음' 순으로 이어지는데 다 읽을 여유가 없다면 꽂히는 단어 편을 펼치면 된다. '충동적'이기에 23장 '극기'편을 폈더니 "스스로를 대세에 가두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직접 결정하라"고 말을 건넨다.

"자제력이 부족한 자는 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 욕망을 앞세우는 편이 더 쉽고, 이기적인 선택이 훨씬 편하기 마련이다. 당장의 욕구에 몰두하는 자는 저도 모르게 타인의 욕구, 친구, 가족, 동료를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주변 사람들의 욕구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제하지 못하는 성인의 태도를 두고 “아이의 잘못”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요컨대 그런 행동은 ‘어서 젖 줘!’라고 외치는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입증할 뿐이다."

알고보니 나는 유아기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오호 통재라.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이상희 옮김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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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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