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어떤 실천을 하시나요?",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면 마지막에는 '개인으로서의 변화'를 묻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겨우 1.1℃가 올랐음에도 기후위기는 우리의 일상과 권리를 위협하고 있는 현재의 문제이며, 석탄발전을 멈추는 것을 시작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보편적인 견해라고,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 후였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도 일상의 실천만을 상상하는 이유는 2021년의 민주주의가 기후위기를 탈정치화하고, 기후위기 대응에서 당사자를 배제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로컬푸드, 채식을 찾고 전기차를 타고 베란다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이 개인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 아닐까.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을 하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여기기보다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업을 '선택'하는 소비자로, 투표를 통해서만 정책결정권자를 선택하는 유권자로 교육받았다. 전문가나 정책결정권자들은 기후위기를 탈정치화하면서 기후를 '미래'의 문제로, '일회용품'의 문제로 국한시켰다. 환경부는 지구의 날 '10분간 전국소등행사'를 통해 일상의 불편함을 참으라고 이야기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구의 날 기고를 통해 "지금 나부터 탄소 배출을 줄인다면, 탄소중립 사회를 앞당길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시민들에게 '지금 나부터'를 요청해 온 정부나 기업은 '기후위기는 나중에'를 말했다. 한국은 2009년 첫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한 이래 2018년에 이르기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는커녕,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정부는 최근 탄소중립위원회라는 거버넌스를 통해 심각한 기후재난을 막을 수 있는 1.5℃ 온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마저도 산업부문 감축 목표는 3가지 모두 동일해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결정을 내리는 탄소중립위원회에는 포스코와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 유사한 거버넌스에 참여해 왔던 정부 측 전문가들의 참여가 주를 이뤘다. 지금껏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이익을 누리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 온 기득권인 기업과 전문가들, 정부 인사가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당사자'들의 요구를 들을 리 만무했다.
물론 정부는 '국민의 참여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시민사회의 대표자 몇몇을 위원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실제 당사자인 소상공인이나 농민은 참여가 배제되었고, 노동자는 한국노총 1인뿐이었다. 탄소중립시민회의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다시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기후불평등을 스스로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아니라 무작위하게 '개인'을 시민의 대표자로 선정했다. 시민 사회의 대표자도, 무작위하게 뽑힌 개인들도 기후위기 속 불평등이 심화되는 당사자를 전혀 대변하지 못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1987년에 만든 버전이다. 그 이전에는 군사독재 세력을 배를 불리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고, 1987년의 민주화운동 이후로 '국민의 대표자'를 직접 국민이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 언론자유 보장, 최저임금제 등의 여러 사회경제적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뒤이은 789 노동자 대투쟁의 영향으로 민주노조의 힘 아래 노동조건이나 처우를 지켜낼 수 있었다. 선배 세대는 이렇게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지킬 수 있었다.
87년의 민주화가 당시의 시대정신으로서 당시의 청년들에게 꼭 필요했던 권리를 지켜낸 것처럼, 2021년의 한국의 시대정신은 '기후-불평등 위기', 즉, '기후정의'다.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그간 주류 기득권이나 기업들을 대변해왔다. 그러나 기후위기 상황에서 권리와 이익을 가장 위협받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외면받아왔다. 아무도 이들을 대표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수 국민의 대표자, 대변자를 뽑아 온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기후위기를 일으킨 정치 시스템의 일부로서 기후위기 대응을 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기후위기는 여러 방면, 여러 당사자들과 함께 검토하고 의사결정 해야 하는 문제지만, 탄소중립시민회의나 탄소중립위원회와 같은 의사결정기구에도 당사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지금의 정치는 오히려 기후위기를 낳았고, 정부는 1.5℃ 수준의 기후위기 대응을 포기한 대책을 내놓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를 일으킨 주범인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낡은 민주주의를 넘어야 한다. 다수, 주류의 사람을 고려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고려할 수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정책결정권자에게 청(소)년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탄소중립 위원회라는 창구를 소중한 기회로 여겼다. 그러나 미래 세대라는 이름으로 대상화된 참여로는 2030년 탈석탄에 대한 과학에 기반한 당연한 요구조차 관철할 수 없었다. 기업과 기득권을 위해 짜인 논의 구조 안에서 이뤄지는 대안 제시가 인정될 수 없다는 현실의 벽은 컸다.
청소년은 미래세대라는 이름으로 기후위기의 피해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말해온 주체다. 노동자들도 에너지전환과정에서 고용이 위협받는 피해자로만 호명되면서 동등한 위계에서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화되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입어야만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이처럼 많은 당사자들은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인 시민이 아니라, 정책대상으로만 인정되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당연히 시민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주체들이 실제로는 그저 시혜의 대상으로만 호명되었고, 우리가 외치는 목소리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의 논의 구조 속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벽에 대고 말하는 것만 못하다.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한 해결책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 당사자 안에서 만들어질 때만이 유의미하다. 그래서 청소년기후행동은 탄소중립위원회를 사퇴하면서 9월 24일 글로벌 기후파업의 날을 맞아 '시스템을 전복하라, 기후시민의회 - 의회의 시작'이라는 행사를 시작으로 모든 기후위기 당사자들이 주체로서 함께할 수 있는 민중공론장을 제안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광장을 점거하지는 못하지만, 온라인으로라도 이제 모든 당사자의 목소리들이 모여 만드는 전환을 함께 상상하자. 기후위기 피해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서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경제시스템을 통제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함께 이야기해보자. 심각한 기후위기 속에서 수많은 당사자와 함께 열어나갈 새로운 민주주의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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