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국면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가 연기된 바 있다. 오는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릴 총회를 또다시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남반구 국가의 대표단과 기후단체 상당수가 백신 미접종과 격리 비용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총회 참석이 불투명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세계 곳곳 엔지오들의 입장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의 불참 사태는 기후총회 주류가 가하는 차별과 배제와 다름이 없다. 백신 불평등과 기후 부정의가 교차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국제사회와 많은 나라에서 탈탄소 정의로운 전환을 이끌고 있는 사회세력들이 기후총회 연기를 요구할 정도로 국제 기후 레짐의 민주성과 개방성이 흔들리고 있다. 유엔 기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두고 말이 많다. 너도나도 탄소중립에 진심이라고 밝히고 '기후 대통령'을 자임하는 정치인이 출현하는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5월, 탄소중립위원회의 역할과 기능, 구성과 운영 방안에 대한 쟁점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사회단체들이 위원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리고 8월, 탄소중립위원회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이 공개되고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통과되면서 '탄소중립위원회 해체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등장했다. 보이콧에 이어 불신임을 선언한 것이다.
탄소중립(포기) 시나리오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위원회의 엘리트주의와 비밀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 "탄중위가 신뢰를 잃으면 사회적 불행이라며, 탄중위를 비판한다고 일이 해결될 수 없다"는 윤순진 위원장의 입장(한겨레, 2021.8.25.)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료 공개는 신고리 5·6기 공론화위원회 때보다 못한 수준이다. 당연직 위원과 위촉직 위원, 총 97인의 탄소중립 만세 따위의 제스처만 보라는 건가? 뒤늦게 공개된 홈페이지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만 나온다.
'탄소중립 시민회의' 방식의 공론화 역시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다. 탄소중립위원회의 상대적 자율성을 언급하며 시나리오 작성의 주도성을 강조하지만, 시민회의의 권한이 모호하고 의견수렴 과정이 명확하지 않아 시민참여를 도구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 종교, 청년, 교육, 노동, 농축수산, 산업계 등 다양한 협의체의 의견수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반영한다는 걸까? 비판한다고 해결될 일이 없겠지만.
8월 26일, 위촉직 위원을 사퇴한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오연재 활동가는 당당히 탄소중립 신성가족이길 거부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위원회의 비민주성과 당사자 배제성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적지 않은 시민사회 출신 및 현역의 인사들이 위원회 내부에서 항의나 충성을 보이는 것과 달리 결국 탈출을 선택한 것이다. 과거 국가에너지계획 수립과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과정에서 민관 워킹그룹이나 민관 협의체라는 지워진 날의 시민사회 참여 경험을 되돌아보자.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말할 것도 없다.
2019년의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도 내용과 형식에서 사실상 실패했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라는 기다린 날이 왔어도 거버넌스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구조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위원회를 전략적 계기로 삼아 대안적 헤게모니 공간을 만들어내야 했지만, 오히려 고인물이 돼버렸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3안에 안주해서도 곤란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의 코드 레드(code red) 경고 속에서 천주교 수원교구는 2030년 전력 100% 자급화를 포함한 '천주교 수원교구 2040 탄소중립' 실행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8월 30일에는 10개 청년단체들이 탄소중립위원회에 '청년 2040 기후중립 시나리오'를 제출했다. 2030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18년 대비 61% 감축하고, 2040년에는 2018년 대비 97% 감축(순배출량 기준 기후중립)을 제안한 것이다. 탈탄소(탄소중립) 시나리오 작업은 전환 주체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뜨겁게 학습하고 토론하고 합의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나 위원회는 시나리오의 다양성 경쟁을 수용하지 않고 위원회 내외부의 정당한 자발적 참여를 냉각시키고 있다.
유럽에서도 핏 포 55(Fit for 55)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21년 7월, 환경단체 유럽환경국(EEB)은 유럽연합의 법제도 패키지 초안을 기후위기 대응에 부합하지도 않고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역사적 책임과 형평성에 기반한 기후과학에 따라 2030년 1990년 대비 65% 배출 감축, 2040년 재생에너지 100% 및 기후중립 달성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30년 에너지 효율 45%와 재생에너지 50%, 2030년 탈석탄, 2035년 탈가스, 2035년 탈내연차, 2040년 탈석유와 탈핵 등의 로드맵을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이러저런 탈탄소 시나리오와 관련 로드맵이 적지 않다. 특히 탈탄소의 적분(탄소예산)과 미분(단계별 목표)을 제법 정확히 적용한 사례도 있다. 시민사회의 제안만이 아니라 정부 연구기관에서도 탄소예산, 기후정의, 정의로운 전환 등을 다루는 보고서들을 작성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고 하면 답이 없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2019년부터 최근까지 탄소중립계획 수립-재수립을 되풀이하면서 언제까지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댈 것인가.
탄소중립위원회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둘러싼 쟁점들은 특정 숫자로 수렴되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다. 비판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를 꾀하는 사회적 요구와 실험을 억제하고 누군가에게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는 민주주의 관행에 안주하는 몇 사람의 자유와 지배 질서를 겨냥한다.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탈탄소 민주화는 지역과 현장에서 활성화돼야 한다. 앞으로 중앙정부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 그리고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에 강요할 한계를 극복하려면, 우선 딱 하나만 하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하자. 곳곳에서 조례를 제정하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계획을 수립해야 할 텐데 제대로 할 조건을 만들고 기준을 세우고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지 따져보자. 제발 탄소중립 스캔들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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