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중·고등 교과서 업체가 제출한 ‘교과서 내 표현 삭제·변경 등 수정 신청’을 승인했다. 이로서 교과서 29개에 기술된 조선인 노동자 ‘강제 연행’ 표현은 사실상 사라지고 ‘강제 동원’ 혹은 ‘징용’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납치, 유괴 등의 범죄에 가까운 ‘강제 연행’이 아닌 징용령 등 절차에 따른 것이란 게 일본 정부의 공식 주장이 됐다.
홋카이도에는 1970년대부터 전쟁 중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 희생자의 유골을 발굴하고 있는 정토진종 본원사파 스님이 한 분 있다. <70년 만의 귀향_홋카이도 강제 노동 희생자 유골 귀환의 기록>은 그간의 경험과 기록이다. 번역자는 한국인인데 스님의 제자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일본으로만 연행된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 내부, 만주 땅, 사할린, 남양군도에도 연행됐다. 홋카이도에 끌려온 뒤 지시마 열도와 사할린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홋카이도로 끌려오는 2중, 3중의 강제 연행도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그곳에서 고통과 신음 속에 세상을 떴고, 제대로 묻히지도 못했다. 유골 반환 문제가 한일간의 외교적 의제가 된 건 고작 2004년이다. 그나마 군인·군무원의 유골반환이 시작되었을 뿐 강제연행 희생자의 유골을 봉환하는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한국 정부는 늘 그러하듯 일본 ‘핑계만 대며’ 머뭇대고 있다. 국교는 정상화되었지만 일본에서도, 그리고 모국인 한국에서도 이들은 어떠한 배상이나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일본 스님의 한탄이다.
“생계를 이어 나갈 사람을 빼앗긴 가정은 경제적 곤궁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한 집안의 기둥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2015년, 저자와 뜻있는 한국의 시민운동가·학자, 일본의 양심적 시민운동가들이 협력하여 그간 발굴한 115구의 유해를 서울로 모셨다. 이는 유골 봉환문제의 완전 해결이 아닌 희미한 시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억을 되살리고 즉시 움직여야 한다.
얼마전, 책에 소개된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의 위패와 유골을 안치해 온 홋카이도의 건물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무너졌다. 재건을 위한 모금활동이 진행중이다. 책은 이 지점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요청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를 되풀이하는 저주에 빠질 것이다.(조지 산타야나)”라고 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일본이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도 그렇다. 우리조차도 기억하지 않으면서 일본에게 기억을 강요하는 현실이 때론 혼돈스럽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