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한국 사회 전환을 위한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을 발표했다. 대선 이듬해인 2023년부터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 원을 지급하고 10년 후에는 90만 원 수준으로 인상하는 계획이다.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의 등장
로드맵에 따르면, 초기에는 금액이 크지 않음으로 기존 현금복지들은 대부분 유지된다. 보통 기본소득이 복지국가와 대립한다고 여겨져 왔는데 기존 제도들과 병존하는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가 정식화된 것이다. 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 강남훈 상임대표도 정치권에 기본소득 토론을 제안하며 이제는 논쟁의 주제는 "기본소득이냐? 복지국가냐?"가 아니라 "복지국가냐?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냐?"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복지국가는 사각지대를 지닌 현재 복지국가를 의미할 것이다. 현재 사회보험은 불안정 취업자를 가입에서 배제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가난한 사람을 배제하는 문제를 지닌다. 이에 기존 복지제도의 골격은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으로 사각지대에 대응하는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나의 판단에서는 그리 생산적인 구도 설정은 아니다. 기본소득이 발전하듯이 복지국가도 더 이상 기존 체제에 머무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복지국가 vs.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구도 역시 과거 시야에 머무른 지형 인식이다.
기본소득, 기존 소득보장체제를 고발하다
나는 기본소득이 우리에게 전해 준 효과 중 하나로 '소득보장 대안 논의 촉발'을 꼽는다. 오래전부터 소득보장제도에서 사각지대가 컸음에도 미봉책으로만 대응해 왔던 학계와 정치권의 머리를 때린 것이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기존 사회보험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대책은 불안정 취업자를 유형으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에 안주했다. 가장 사회보험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회보험 밖에 있는 역설적 상황을 뻔히 보면서도 말이다.
또한 가난함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 밖에 머무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나 생계급여 인상에는 늘 소극적이었다.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헌법(34조)의 명령에 따른 조치가 현재 1인 가구 최저생계비 월 55만 원이다. 이 돈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구현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정부위원회는 그렇게 결정해 왔다.
이때 소득/재산 따지지 말고 모두에게 동일액을 지급해 사각지대에 대응하는 대안이 등장한 것이다. 현행 소득보장제도에 대한 엄중한 고발이었고 해법이 없을 듯한 막막함을 풀어주는 출구로 여겨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주목하고 기대하는 이유이다.
기본소득의 최소 재분배 효과
그럼에도 나는 기본소득을 지지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의 장점보다는 한계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정책에서 의사결정은 여러 대안 중에서 비교 우위를 선택하는 일이다. 기본소득만을 두고 효과를 논하는 건 공허하다. 다른 대안과의 비교우위를 따져야 실질적 평가이고, 이때 비용(소요재정)의 크기도 역시 고려할 항목이다.
기본소득에서 가장 큰 약점은 최소 재분배이다. 기본소득도 세금을 누진적으로 거두어 동일한 금액을 분배하므로 이 과정에서 소득재분배는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두에게 지급하는 그 '장점' 때문에, 기본소득은 조세 기반의 현금급여에서 가장 소득재분배가 적은 제도가 되어버린다. 매년 60조 원을 사용하고도 가난한 사람에게 월 10만 원이 지급될 뿐이다.
기본소득이 소득이 적고 생활이 불안정한 사람들을 호명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적정한 급여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사각지대를 없애나 금액이 적다는 의미에서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사각지대를 방치한다. 현재의 심각한 불평등체제에서 이 정도 재분배에 머물 수는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공유부, 모두의 것은 모두에게?
근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공유부에서 찾는다. 토지, 지식, 빅데이터 등 자연적 자산이거나 인류 노동이 집적된 자산에서 나온 수익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기본소득을 받는 수급자 측면보다는 재원에서 기본소득의 근거가 정의된다.
"모두의 것은 모두에게!",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런데도 나는 공유부이므로 1/n로 분배하자는 주장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공유부는 자연과 인류 기여가 쌓인 공공자산이라는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산자산에서 그렇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기본소득 쪽에서 자주 인용하듯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몬(Herbert Simon)은 우리 소득의 약 90%가 공유부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품도 거의 모두가 오랫동안 인류의 지혜와 노동이 집적된 것에 다름 아니다.
공유부 분배론은 토지, 지식, 빅데이터 등 공유부 자산을 이루는 물리적 특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분배 관점에서 공유부를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주목할 점은 공유부가 지닌 물리적 특성이 아니라 계층성이다. 현재 공유부는 시장에서 불평등을 초래하는 계층화된 자산으로 작동한다. 특히 토지(부동산), 지식(특허), 빅데이터(구글)로 구성된 생산자산은 어느 자산보다도 시장불평등을 크게 초래한다.
모두의 것은 모두에게, 이 구호가 실질적이려면 공유부 자체를 모두에게 분배해야 한다. 그런데 공유부의 소유권을 그대로 인정하고, 소유자들이 여기서 얻는 수익도 일단 보장하고, 이후 이 수익에서 조성한 세입을 모든 국민에게 배분하는 게 정말 '모두의 것은 모두에게'에 부합하는 일일까?
공유부 과세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얻은 세입을 최소의 재분배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공유부가 이미 극심한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면 여기서 걷은 세금은 이 불평등을 최대한 개선하는 데 사용해야 정의로운 것 아닌가.
소득보장 혁신의 출구, 실시간 소득파악
여기서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고민이 커진다. 기본소득이 대안일 수 없다면 사각지대에 대응하면서 저소득층에게 적절한 소득보장을 제공하는 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소득보장 대안 논의를 촉발한 두 번째 요인이 등장한다. 바로 '실시간 소득파악'이다.
코로나19로 '전 국민 고용보험' 의제가 등장하면서 소득보장제도의 토대인 '소득파악'이 부상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소득과 소비에 관한 전산자료를 충분히 가진 나라이다. 무엇보다 신용카드 사용의 일반화 덕택이다. 현재 과세당국이 이를 최종 실질소득으로 산출하는 작업에 충실하지 않지만, 앞으로 의지만 가지면 이 자료들을 집대성하여 소득파악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한다.
작년부터 정부가 실시간 소득파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당국은 이것이 완성되었을 때 예상되는 복지/과세체계의 대전환을 부담으로 느끼는 듯하다. 전 국민 소득보장을 위한 국가재정의 책임도 상당히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시간 소득파악은 국가체계를 내실화하는 핵심 토대이다.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국가 핵심 과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면 조만간 사회보험은 고용의 지위를 따지지 않는 '소득기반'으로 전환될 수 있고,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보장도 촘촘하게 재설계할 수 있다.
'탄력 최저소득보장제'를 제안한다
'기본소득의 도전과 실시간 소득파악의 부상'!, 두 요인 덕택에 소득보장체계에서 혁신 작업이 촉발되었다. 이제 막 출발하는 단계이다. 보수진영에서 제안되는 부의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 역시 기존 제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들이다.
나는 저소득층의 소득보장 대안으로 '탄력 최저소득보장제'를 제안한다. 이는 부의소득세 원리를 활용하되 근로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탄력' 보전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넓게 보면 부의소득세 계열이라 '보수적 대안'이라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의소득세는 보수적으로도, 진보적으로도 설계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재분배 효과가 평가의 본령이므로 반세기 전에 부여된 족보는 따지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최근 김낙회 등이 [경제정책 어젠다 2022](21세기북스)에서 제안한 부의소득세는 정말 보수적 모델이다. 실제 저소득층의 소득보장이 그리 확대되지 않으면서 복지구조조정은 엄청나다. 반대로 소득파악이 토대가 된다면 저소득층 상당수를 포괄하면서도 적절한 급여를 제공하는 진보적 소득보장도 설계할 수 있다.
'그림 1'은 1인가구를 기준으로 현행 생계급여와 근로장려금(EITC)의 소득보장액, 기본소득 30만 원(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 부의소득세(중위소득 100% 기준 보전률 50%)를 비교한다. 부의소득세의 경우 지급대상이 중위소득 100% 이하, 즉 국민의 절반이 대상이고 지원액은 시장소득이 중위소득 100%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의 절반으로 책정된다. 즉, 보전율이 50%인 부의소득세이다.
보통 부의 소득세 모델에서 보전률이 50%여서 근로동기 논란이 발생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새로 발생한 시장소득에서 절반만 자신의 가처분소득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에 근로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보전률을 낮추면 거꾸로 자신의 시장소득에서 가져가는 추가소득 인정률은 높아진다. 또한 여기에 더해 소득구간별로 추가소득이 더 증감하도록 탄력률을 적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이는 표준적 부의소득세에서 한 발 더 진전된 모델로서 '최저소득보장제'이다.
'그림 2'는 최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내가 제안한 '탄력 최저소득보장' 모델이다. 중위소득 100%를 기준으로 시장소득과의 차액의 40%를 보전하므로 취업자의 추가소득 증가율은 표준 모델 0.5에서 0.6으로 상향한다. 여기에 소득구간별로 근로장려금 방식의 탄력률을 결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요약하면, 현행 생계급여, 근로장려금, 국민취업지원제도(한국형 실업부조)를 하나의 제도로 통합해 수용성을 높이고, 실시간 소득파악을 토대로 사각지대를 남기지 않으며, 소득보장을 강화하면서 근로동기도 독려하는 모델이다.
저소득층 소득보장 대안, '기본소득 vs 최저소득보장'
현재 논의되는 기본소득, 부의소득세, 최저소득보장 모두 전통적 복지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제도이다. 모두 21세기 소득보장 대안을 찾는 작업의 일환으로 환영할 일이다.
논의 지형도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기본소득이 소액으로는 시작하는 '혼합복지체제'를 제안하며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로 발전하듯이, 현재 소득보장체계에서도 혁신 논의가 진행 중이다. 기본소득의 논의 대상이 더 이상 예전 '복지국가'는 아니다.
현금복지에는 저소득층 대상의 공공부조뿐만 아니라 사회수당과 사회보험도 있다. 하지만 친복지 진영에서 사회수당, 사회보험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크지 않다. 사회수당은 농민, 돌봄 등 사회적 역할집단으로 확장하고, 사회보험은 소득기반 '전 국민' 보험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결국 논점은 저소득층 소득보장에서 최적의 대안을 찾는 일이다.
이제 우리가 벌일 토론의 주제가 명확해지고 있다.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 vs. 소득기반 최저소득보장'!
어느 대안이 '지금 우리에게' 적절할까, 나는 후자 쪽을 지지하며 '탄력 최저소득보장'을 제안한다. 앞으로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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