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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고용'이라는 허상, 김종철이 소개한 더글라스의 '사회신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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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고용'이라는 허상, 김종철이 소개한 더글라스의 '사회신용론'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⑬ 기본소득과 신용의 사회화 (3)

클리포드 더글라스(1879~1952년)는 존 메이나드 케인스(1883~1946년)와 동시대인으로 192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사회신용운동의 창시자였다.

그는 현대의 금융 시스템이 '이자가 붙은 은행 빚'으로서의 사적 부채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또 이러한 금융 시스템 때문에 경제는 끊임없는 새로운 투자와 성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산업혁명에 따른 생산력의 비약적 증가가 인류의 복지와 자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신용의 사회화와 기본소득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신용에 대한 통제를 기존의 민간은행에서 정부로, 은행화폐에서 정부화폐로 전환하며, 국민 모두에게 일정액의 구매력을 정부화폐로 무조건 지급하자는 것이다.

'경제사상의 아인슈타인'

1924년 <사회신용>을 발간하면서 본격 제기된 클리포드의 이러한 주장은 1929년 대공황을 맞아 정확한 현실 진단임이 입증되면서 '경제사상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사회신용운동은 2차 대전 직전까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다. 그러나 대공황이 2차 대전이라는 대규모 군사수요에 의해 극복되면서 사회신용론은 완전히 잊혔다.

그러다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기본소득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움직임이 <녹색평론>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더글라스의 <사회신용>(1933년 개정판)은 2016년 이승현에 의해 번역됐다. 클리포드 더글라스는 어떤 인물이고 그의 사회신용론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 <녹색평론> 홈페이지에는 113호에 실린 글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 전문이 공개되어 있다.(☞ 바로 가기) ⓒ녹색평론

더글라스는 스코틀랜드 태생의 엔지니어였다. 31세인 1910년에 캠브리지대학에 들어가 4학기 동안 수학했다. 그는 캐나다, 인도, 아르헨티나 등에서 엔지니어로 일했고, 영국에 돌아와서는 런던 우체국 지하철 건설을 위해 일했다. 1차 대전 중에는 영국 공군 소령으로 복무하면서 항공기 제조사 회계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주의경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그의 통찰은 1차 대전 기간 동안 형성된 것으로 그는 전쟁 이후인 1919년부터 경제와 사회 문제에 관한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첫 저서 <경제적 민주주의>는 1920년 발표됐다. 대공황 이후 그의 사상은 큰 호응을 얻게 되어 캐나다 앨버타 주정부에 자문을 하고 캐나다 사회신용운동에 영감을 주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그의 사상을 추종하는 정당이 설립되었다. 그는 1923년 캐나다 은행 청문회와 1928년 영국 맥밀란위원회에서 증인으로 발언했고, 1929년에는 일본에서의 강연을 통해 일본 산업계와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열정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이해에서 더글라스의 공헌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당시까지 경제학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시민이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던 자본주의경제의 작동 방식을 밝혀냈다.

은행화폐의 비밀

첫째, 은행의 신용 창조라는 것이 '무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나아가 이를 통해 은행은 정부와 기업, 국민으로부터 막대한 이자 수입을 얻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1차 대전의 전쟁 비용 조달 방식을 관찰한 결과였다. 1914년에서 1919년 사이 영국의 국가부채는 6.6억 파운드에서 77억 파운드로 늘어났다. 이 기간 동안 전쟁 목적으로 공급된 재화와 용역에 대한 비용으로 정부가 지출한 재정적 비용은 83.5억 파운드였던 반면 이에 대해 소비자로서 국민이 지불한 금액은 13.5억 파운드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부의 재정 지출은 주로 은행의 신용 창조에 빚진 것이었다. 즉 그 차액 70억 파운드는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 그리고 기업 대출에 대한 이자 형식으로 국민과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터였다. 링컨이 정부화폐로 남북전쟁을 치른 것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1차 대전 전쟁 비용 조달 과정에서 영국의 정부와 기업, 국민은 막대한 부채를 진 반면 민간은행은 엄청난 이익을 취한 셈이다.(<사회신용> 137~141쪽)

은행대출제도에 의한 화폐의 창조라는 사실은 그 당시 널리 인정되고 있지 않았다. 더글라스에 따르면 1918년까지 화폐 또는 구매력이란 법정통화(정부화폐)일뿐이며, 수표를 발행할 수 있는 은행예금이란 법정통화만의 예금이라고 간주됐다. 즉 은행은 자신이 보유한 예금 액수만을 대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글라스는 세상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구매력(화폐)의 최소한 10분의 9는 은행 대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즉 대부분의 통화란 은행화폐라는 것이다.(<사회신용> 100쪽)

이러한 더글라스의 지적은 1928년에야 비로소 영국 정부에 의해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맥밀란위원회는 불황과 관련하여 금융제도를 조사하고 더글라스 등이 제기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의회조사기구였다. 더글라스 자신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은행의 신용 창조, 즉 은행이 대출을 통해 대부분의 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최초로 공식 시인했다.

"대부분의 예금은 은행업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 (중략) 은행은 창조된 신용 혹은 구매된 투자가 애초의 현금으로 된 예금액의 아홉 배가 될 때까지 대출 혹은 투자구매를 계속할 수 있다."(<녹색평론> 113호 31쪽)

구매력 결핍, 생산과 소비의 구조적 간극

둘째, 현행 체제에서 노동자들의 임금만으로는 생산된 재화와 용역을 모두 구매할 수 없다, 따라서 불황은 필연적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생산된 재화와 용역이 구조적으로 모두 소비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1차 대전 중 항공기 제작회사의 회계 분석을 통해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과 배당의 합계가 생산된 제품의 총 가격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생산된 재화와 용역을 모두 소비할 수 있는 구매력이 언제나 부족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후 100개 대형기업의 회계 보고서 분석 결과도 동일했다.

어찌 보면 이는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 등을 위해 기업은 막대한 은행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이자를 갚기 위해 생산 원가에서 임금 몫을 줄이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영국에서는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의 고전경제학이 지배했다. 생산은 반드시 소득이 되어 노동자는 그것으로 상품을 자유롭게 사서 소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유지됐던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19세기 전반까지의 독립자영농민을 모델로 한 것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기계제 대공업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이론이었다.

또한 기업에 대한 은행융자가 구매력 결핍을 발생시켰다는 더글라스의 논리는 당시까지 경제학의 근본 명제였던 세이의 법칙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었다. 세이의 법칙에 의하면 상품 생산의 과정은 생산된 모든 상품을 살 수 있는 충분한 구매력을 자동적으로 분배하기 때문이었다.

'구매력 결핍'이란 말은 더글라스가 만들어낸 용어로, 그는 한정된 구매력을 쟁탈하기 위해 기업들은 끝없이 신규 투자를 계속하거나 서로 격렬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나아가 해외의 구매력을 찾아 수출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바로 전쟁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돈이 생산이나 소비의 현실과는 전혀 관계없이 은행의 금융적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대출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훗날 케인스의 유효수요 이론은 바로 더글라스의 구매력 결핍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완전고용은 불가능한 목표

셋째, 자본주의체제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되는 '일자리 창출' 나아가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이자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더글라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약점인 유효수요 부족, 즉 생산과 수요의 구조적 차이는 생산 및 산업 시스템의 능력과는 무관하며 금융 시스템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즉 "생산 및 산업 시스템이 공급하고자 하고 공급할 수 있는 재화를, 현재의 상황에서 그것을 원하고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넘겨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티켓(구매력, 화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사회신용> 94~95쪽)

그에 따르면 1920년대 당시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실업문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 지난 50년간 어떤 산업국가에서도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을 가용한 노임과 봉급, 배당만으로 구매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산업국가들은 그들의 제품을 수출할 (해외) 시장을 찾아야만 했다".(<사회신용> 44~45쪽)

그런데 만일 완전고용을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한다면 어떤 이이 벌어지게 될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실업 문제가 내일 당장 해결되어 고용될 수 있는 사람이 모든 사람이 고용되고 금융 시스템의 현존하는 규범에 따라 대가를 지급받게 된다면, 그 결과는 가격의 엄청난 상승에 직면하거나 또는 수출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강화된 군사적인 싸움의 결과로 인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경제적 재앙을 촉발할 뿐이다."(<사회신용> 123쪽)

즉 '완전고용'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해법인 것이다. 더글라스에 따르면 "실업은 산업 붕괴의 징후가 아니라 경제 발전의 신호"이다. 생산력의 비약적 증가에 따라 인간이 더 이상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인 것이다. 이제 인류는 고용 창출을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공정한 분배를 추구해야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분배의 실패에 기인하는 것이지, 생산의 결핍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분배의 문제를 고용이라는 해결책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예컨대 1920년대 당시 산업의 생산성은 120년 전보다 약 100배 증가했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생산능력은 소비 증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나아가 당시 생산능력으로는 하루 7시간 노동하는 가용 노동력의 25% 미만의 고용으로 필요한 모든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배송을 감당할 수 있다. 이는 현재와도 비교되는데, 인공지능(AI)과 로봇 혁명으로 조만간 현재 고용 인구는 4분의 1로 줄어들 수가 있다고 한다. 이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 <사회신용>(클리포드 H. 더글러스 지음, 이승현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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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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