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몽 아롱 : 요즘 세상은 정치적 선택이 다르면 우정을 간직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정치란 아마도 너무나 심각하고 비극적인 것이어서 우정이 그 압력을 감당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나와 사르트르의 관계에서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레이몽 아롱)
장루이 미시카 : 사르트르와 완전히 절연하고 난 뒤 고통스러웠나요?
레이몽 아롱 : 청년기의 우정을 잃어버린 장년의 슬픔이라는 게 적절한 말일 겁니다. 네, 친구를 잃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장루이 미시카 : 하지만 소련에 대한 견해 차이가 어떻게 우정까지도 금가게 할 수 있습니까?
<자유주의자 레이몽 아롱>, 40년 전인 1981년에 이루어진,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우파 지식인 레이몽 아롱의 대담집이다. 질문자로는 두 68세대 학자가 참여했다. 장루이 미시카는 대담 당시 서른살 경제학자였고 도미니크 볼통은 서른네살의 사회학자였다. 책은 81년 프랑스에서 출간됐고 우리나라에는 82년에 <20세기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됐었다. 그리고 아롱은 1983년에 세상을 떴다. 40년 전의 대담집이 여전히 유효할까.
"재출간하는 대담집은 4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아직도, 아니, 어쩌면 이제야 참신한 시의성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40년 전 그즈음 대학생이던, 지금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386세대는 어쩌면 40년의 지체를 보여 주는가?"(옮긴이)
지체에 대한 질책이었을 것이다. 82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나야말로 386세대의 일원이라 할 수 있으니까. 며칠 전 언론사에 계시는 스승께서 책을 보내주셨다. 분명한 지체이기에 스스로 이 책을 구매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승께서 던지신 화두를 읽어야 했다. 힘들게 읽어내렸다.
도미니크 볼통 :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진정으로 생각하십니까?
레이몽 아롱 : 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고, 마키아벨리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잘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마침내 나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가장 적합한 것인가를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매순간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과 현실을 파악하고자 하는 의지와 또 한편으로는 행동을 하려는 의지, 이것들은 내가 평생 복종하고 싶은 두 개의 절대적 명령이었습니다."
아롱의 말을 한줄만 더 인용한다.
"정치적 견해를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고정시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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