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전북 정읍에선 우리가 몰랐던 '소리없는 절규'가 절절했다.
'소리없는 절규', 우리는 그것을 '학교폭력'이라 부른다. 요즘 곳곳에서 청소년들의 겁없는 일탈 소식을 접하는 것이 그야말로 하나의 일상이 돼 버렸다.
이런 와중에 정읍의 여중생 2명이 두려움을 걷어내고 용기를 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 반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왔던 여중생들이 부모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또래 남학생으로부터 당해온 지옥같은 하루하루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소리없는 절규'가 아닌 '외침의 절규'를 선택한 것이다.
여중생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그 외침에 차마 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경악에 입을 닫을 수 없었고, 그 두려움의 긴 터널에서 떨었던 자녀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을 뿐이었다.
피해 여중생들이 하나 둘 씩 털어놓은 그간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학교폭력 종합세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모습이 그려진다.
학교폭력에는 '신체적·언어적' 폭력에서부터 금품갈취, 강요, 따돌림이 있다. 좀 더 깊게 들어가보자.
신체적 폭력에는 일정한 장소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게 하는 행위(감금죄)와 신체를 손·발로 때리는 등 고통을 주는 행위(상해죄·폭행죄), 강제(폭행·협박)로 일정한 장소로 데리고 가는 행위(악취죄)가 있다.
언어적 폭력에는 여러사람 앞에서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구체적인 말을 하거나 그런 내용의 글을 인터넷, SNS 등으로 퍼뜨리는 행위(명예훼손죄), 여기에 내용이 진실이어도 범죄이고, 허위인 경우에는 가중처벌이 적용된다. 이밖에 여러사람 앞에서 모욕적인 용어(외모놀림, 비하단어 사용)를 지속적으로 말하거나 그런 내용의 글을 인터넷 SNS 등으로 퍼뜨리는 행위(모욕죄)가 포함돼 있다.
금품갈취와 강요에는 속칭 삥(금전) 뜯기, 옷 문구류 등 빼앗기(공갈죄)를 비롯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상대방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행위(강요죄)가 있다. 여기서의 강요죄에는 속칭 빵셔틀과 와이파이 셔틀 등이 있다.
자, 마지막으로 따돌림을 보자. 집단으로 상대방을 의도적·반복적으로 피하는 행위와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막기(강요죄), 싫어하는 말로 바보 취급 등 놀리기(모욕죄) 가 있다.
하나하나 머리 속에 넣기도 참 많은 양의 죄목들이다. 그런데 최근 정읍에서 불거진 한 남학생의 일그러진 일상의 일탈에는 이 모든 것이 빠짐없이 들어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놀랠 노자'다.
그 남학생이 여중생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주위에 있는 또래들에게 행해왔던 것이 여기 모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여중생들의 부모는 먼저 학교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학생들의 보호 등에 대한 도움을 간절히 청했다. 하지만 학교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통상적인 절차 안내만 해줄 뿐 학생들의 신변보호 조치 등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는 것이 부모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그래서 여중생들과 그 부모들은 경찰에 고소하기로 결정, 지난 7월 9일 정읍경찰서에 정식으로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경찰의 수사와는 별도로 부모들은 학교의 책임자와 교사들에게 연락을 계속 취했지만, 시큰둥한 반응에 되려 무안하기까지 했다는 것이 여중생 부모들의 이구동성이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학교가 사람을 잡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그 이야기에 '설마'했다. 과연 요즘 학교들이 학생보호 차원에서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기 때문에 고개가 절도 꺄우뚱해졌다. 그래서 여중생들이 다니는 학교의 책임자인 교장과 직접 통화를 해봤다.
해당 학교 교장과 통화를 해보니 울화통이 치민다는 피해학생 부모들의 아우성을 금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 교장의 말이다.
그래서 되물어봤다. 혹시 문제의 남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책임자와 관련 내용을 교감하고 대책마련에 머리를 맞대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교장의 대답은 단호하고 명료했다.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을 '월권'이라는 말 뒤에 숨어 당당하기까지 했다. 월권이라는 것은 '자기 권한 밖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말한다.
교장의 그 말을 아무리 곱씹어봐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자기 학교의 어린 학생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 학생의 학교 책임자와 이런 상황조차 협의도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도대체 누굴 위한 교장이고, 학교의 책임자라는 것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지만, 통화 말미에서처럼 버럭 화나 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 역시 괜히 두렵다.
그 교장의 실명을 거론하고 싶은 마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앞서지만, 피해 여중생들의 정보들이 알려질까봐 참을 뿐이다. 오히려 교장을 보호해준 것은 피해 여중생들의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월권'을 중요시하는 교장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고 이 글을 접기로 한다.
과연 '교장의 자격'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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