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단적인 이상 기후들은 종래의 재난 대응책이 더는 작동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극 기온 상승으로 발생한 열돔 현상은 캐나다와 미국에 살인적인 폭염을 가져오며 800여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이번의 온도 상승은 기존 기상청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전 여름 기후에 적응해 있던 캐나다 도시의 인프라는 이상 기후에 사람들을 보호해줄 수가 없었다.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의 결과가 몰고 온 기후변화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음은 독일 서남부 지역을 강타한 1천년만의 대홍수가 잘 보여준다. 독일 기상청에서 저기압 정체로 이들 지역에 폭우 예고를 하기는 하였지만, 과거 홍수 정도로 생각한 지자체들은 적시에 대피 경보를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하천 범람 수위가 지난 시기의 두 배를 넘어섰고 중세에도 홍수 피해가 거의 없던 지역까지 침수될 정도로 역사적으로 유례 없는 홍수가 발생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들보다 기후위기 대응 체제를 잘 갖추어왔던 독일도 극단적인 기후변화에 속수무책인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번 홍수는 독일 총선의 핵심 이슈마저 바꾸어놓고 있다. 침수 지역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우리의 행동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을 공언한 이후 그동안 기후보호정책에 적극적이지 않던 기민당 총리 후보도 입장을 바꾸었다. 탈석탄 정책, 내연 기관 자동차 폐지 등에 미온적이던 기민당에서 2038년 탈석탄 시기를 2030년으로 앞당기겠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아울러 독일 연방환경부는 전국토를 대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대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마련하는 등 기후위기 피해 규모와 비용을 구체적으로 추산해보기로 했다. 유사한 정책 이슈들이 총선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181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기후 재난 홍수였기에 독일 총선에서 기후 위기가 핵심 쟁점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이 맞이한 이번 재난은 우리로서도 간과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폭우, 폭염으로 인한 피해의 강도나 횟수가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독일과 비교하여 우리의 재난대응시스템이 우월하다고는 할 수 없어, 극단적인 기후 변동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피해를 마주할 수도 있다.
기후위기는 이제 한 국가의 안보 위기만큼이나 중요한 이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후보들 간에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둘러싼 논쟁을 찾아보기 힘들다. 저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기저를 흔들 수 있는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언급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아주 짤막한 영상으로 민주당 대선후보들이 기후와 에너지정책에 대한 공약을 발표하기는 하였다. 기후에너지부의 신설, 재생에너지 확충의 필요성, 그린뉴딜 산업 확산, 공정한 전환 등을 언급하기는 하였지만. 발표된 정책들에서 위기감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점점 빨라지고 있는 기후 위기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후보라면 현재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과감하게 더 늘려야 한다. 예를 들어 IPCC 1.5도 보고서가 주장하듯이 2010년 대비 45%에 가깝게 목표량을 상향 조정하자는 식의 주장을 해야 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산업 부문 전반의 전환 계획을 다음 정부가 수립하고 현재의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 역시 2050 탄소중립 달성에 맞추어 획기적으로 상향 조정할 것을 공약으로 발표해야 했다.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관련 세제 개편, 중소기업 경제 부담 완화를 위한 제도 정비에 관한 내용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중단, 석탄 발전소 가동 중단에 따른 실업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재정 마련, 관련 당사자들과의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전환 대책 마련 방안 등의 구상도 나와야 했다. 그러나 현재 각 후보의 공약 대부분이 현 정부 정책과 대동소이하고 경제 산업 정책에 연계되어 있다는 한계를 보인다.
기후위기에는 전 사회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실질적으로 이행함으로써 대응할 수밖에 없다. 미래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겠다는 경선 후보들은 지금까지와 같은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 미래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 마련을 놓고 정책 논쟁을 벌여야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9위 국가로서 국제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현재보다 상향 조정해야 함을 지적해야 한다.
한편, 산업 분야에서 온실가스 감축은 기업에 비용을 부담시킨다. 노동자들은 실업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력 계통 확충 비용 증가 등으로 전기 요금의 상승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물질과 에너지 소비 감축을 위해 비닐 포장 금지, 수선 장려 등으로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대형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더욱 커질 수 있다. 탄소 중립 사회로의 이행은 한편으로 그린산업의 성장 등 새로운 경제 성장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 갈등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경선 후보들은 이러한 사회 갈등 요인들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방안들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정책 논쟁을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미래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선 후보 경선의 시간이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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