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불교계 원로 월주스님 영결식에서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부·여당을 겨냥하고 나섰다. 고인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보호 시설인 '나눔의 집' 이사장을 맡고 있던 중 정의기억연대 사태 및 내부고발이 있었고, 경기도가 감사·제재에 착수한 일을 도마에 올린 것이다.
윤 전 총장은 26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서 열린 월주스님 영결식에 참석해 "월주스님이 (나눔의집 사건으로) 큰 상심을 한 뒤 대상포진으로 이어져 결국 폐렴으로 입적했다는 이야기를 조계종과 금산사 관계자들에게 들었다"면서 "인격 말살을 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나눔의집에 대한 제보 내지는 시민단체의 고발이 들어와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했지만 특별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되지 않았다"며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서 인격 학살적 공격을 많이 했다", "군사독재 정권보다 정교하게 국민의 자유를 말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눔의집 운영에 많든 적든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는 조계종 측 역시 전면 부인하지는 않는다. 후원금 모금액 사용에 있어 할머니들을 직접 지원한 금액과 유보금·시설투자금 등으로 배분 비중이 적절했는지는 논란이 있어도, 시설 입소자인 할머니들의 결핵 검진 누락, 소방시설 미비 및 규정 미준수, 직원 급식비를 할머니들 식비 국고보조금에서 충당 등 행정적 미비는 분명 있었다.
월주스님은 불교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인물로 나눔의집 설립 외에 다른 업적도 많다. 해방 후 일본 불교와의 단절을 강조한 이른바 '불교 정화' 운동에 앞장섰고, 광주민주화운동 위령 법회를 주관해 전두환 군사정부에서 보안사로 끌려가 고문까지 당했다(이른바 '10.27 법난' 사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대표도 맡았다. 영결식에서 굳이 나눔의집 사건을 언급한 것은 결과적으로 고인의 공은 미뤄두고 흠을 들춰낸 격이 됐다.
월주스님에 대해 나눔의집 이사장 해임 결정을 한 것은 경기도다. 윤 전 총장이 대선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은 이유다.
정작 경기도가 나눔의집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당시에는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도 비판에 가세했었다. 문화방송 <PD수첩>이 나눔의집의 후원금 사용 실태에 문제 제기를 최초로 하고 나선 것은 작년 5월이었고, 경기도와 광주시는 같은 시기 점검·감사를 벌인 데 이어 6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고 7월말 이사 전원에 대한 직무정지 처분을, 12월 해임 처분을 결정했다.
같은해 8월 미래통합당 김은혜 당시 대변인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 집에 대한 민관합동 조사단의 결과가 발표됐다. 국민들이 마음으로 내 준 88억 후원금 대부분을 부동산 투자를 하거나 건물 세우는 데에 썼다고 한다. 심지어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후원금을 더 많이 모으자'는 등 상상할 수 없는 모의도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최형두 당시 원내대변인도 "후원금 88억을 모금하고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서는 2억밖에 내놓지 않은 나눔의 집이 민관조사단에 적발됐다"며 "조사단은 할머니들에 대한 폭언과 학대 사실도 세세하게 공개했다"고 지적했다.
나눔의집의 소방시설 미비, 급식비 사용규정 미준수, 결핵검진 누락 등의 잘못을 세상에 드러낸 것은 <서울신문>과 MBN 방송의 보도였다. 신문과 방송이 밝힌 자료 출처는 정진석 의원실이다. 정 의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연을 팔아 잇속을 챙긴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공교롭게도 정진석·최형두 의원은 모두 '윤석열계'로 분류된다.
검찰은 올해 1월 29일 월주스님 등 승려인 이사 4명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고, 안신권 전 소장과 김모 사무국장 등 2명을 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윤 전 총장이 말한 "특별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되지 않았다"는 대목은, 월주스님과 이사직을 맡은 스님들에 한해서는 맞는 말이지만 나눔의집 사건 전체가 무리하거나 부당한 의혹 제기였다고 볼 수는 없다.
월주스님 입적 후 그의 상좌(제자 격) 스님들이 모여서 전날 연 기자 간담회에서도,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은 "(큰스님이) 이사장 직무 정지까지 됐는데, 굉장히 상심하셨다. 그래서 마음에 병을 얻으셨고 지병을 얻으셨다"면서도 "(월주스님이) '나눔의 집과 관련해 행정적으로 미비한 사항이 있으면 전부 시정하라',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전부 수용해서 세상 사람들이 나눔의 집에 대해서 잘못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조처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역시 월주스님의 상좌인 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근래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특히 나눔의 집 문제로 인해서 (월주스님이) 충격을 받으셨다"며 "(24일 추모차 금산사를 방문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나눔의집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했는데 일이 좀 꼬였다. 죄송하게 생각하고 최대한 빨리 매듭을 지어서 큰스님 유지를 잘 받들겠다'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원행스님은 이 지사와 전날 약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이 지사 측은 이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편 나눔의집 내부고발 당사자인 김대월 전 나눔의집 학예실장 등 7명의 직원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어 윤 전 총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나눔의집 문제는 정치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로 진보·보수,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나, 윤 전 총장이 처음으로 나눔의집 문제를 정치화 했다"며 "유감을 표하며 윤 전 총장의 사과를 공식적으로 요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윤 전 총장에게 묻는다. 검찰은 전 운영진과 법인을 기부금품법·보조금법·지방재정법 위반, 사기(공사비 부정수령, 입찰가장, 각종허위 증빙 등) 등으로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데 무슨 근거로 '특별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는지 답해 달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만약 월주스님 개인에 대한 기소가 없었다는 것을 이유로 이같은 발언을 한 것 이라면, 윤 전 총장도 현 정부 책임자가 아닌 각각의 담당자를 비판하여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나아가 "만약 나눔의집 관할 지자체가 경기도가 아니었어도, 경기도지사가 차기 대권 후보가 아니었더라도 이같은 발언을 했을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윤 전 총장 본인이 할머니들과 공익제보자의 '인격을 말살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게 아닌지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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