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가 도깨비 방망이인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최저임금만 주고 '청소 나와라 뚝딱. 위생 나와라 뚝딱. 청결 나와라 뚝딱. 바깥에 가서 풀도 뽑으세요. 계단 청소도 하세요' 하면 뭐든 다 하라고 한다. 청소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주고 지시만 하면 뭐든 다 하는 존재로 취급된다."
지하철, 학교 등 청소노동자가 코로나로 겪는 어려움을 조사한 바 있는 김영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 청소노동자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가장 밑바닥 을'로 살아가는 청소노동자의 삶을 나타낸 말이다. 대부분의 청소노동자가 중고령, 저학력, 여성,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휴게공간 부재, 성희롱 등 복합적 차별을 겪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22일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TF가 주최한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무엇인 문제인가' 토론회에 참여한 김영 교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서울대 등에서 청소노동자가 직접고용 된 이후에도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이들에 대한 차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이를 바꾸려면 우선 정기적 조사로 청소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도있는 제도적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고인이 생전에 가입했던 노조 간부, 서울대에 재학 중인 학생 등이 참가해 청소노동자 사망과 이후 서울대의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저학력, 여성, 고령, 간접고용...청소노동자는 다양한 차별에 노출된다
발제를 맡은 김 교수는 "지난달 26일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과로사 사망의 대표 증상인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과로사로 의심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이 나왔다"며 한국사회에서 산재 사망을 막기 위해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캠페인이 일어난 일을 회상했다.
김 교수는 "구의역 사건이나 김용균 사건은 기성세대의 정규직 노동자인 제 입장에서는 너무 마음이 아파 울기도 미안한 사건"이었다며 "하지만 한 호흡을 거르고 다시 생각하면 왜 당연한 권리를 두고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고인과 비슷한 처지에서 일하는 한국사회 청소노동자가 대부분 여성, 고령, 저학력, 비정규직이라는 점도 상기시켰다.
통계청의 <2020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청소는 매장판매에 이어 여성이 두 번째로 많이 일하는 소분류 직업이다. 청소노동자 중 89%는 50세 이상, 중졸 이하 학력자는 55.8%다. 또한,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저임금 일자리의 동태적 변화와 정책과제>를 보면, 청소노동자의 72.2%는 파견, 용역업체 등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다.
김 교수는 청소노동자에게 다양한 사회적 약자 정체성에 따른 복합적 차별이 발생한다며 이의 대표적 사례로 휴게공간의 부재, 일이 많아 일찍 출근해야 하는 데서 비롯되는 과중노동과 무급노동 등을 거론했다.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는 청소노동자도 많았다. 김 교수가 조사한 청소노동자 중 한 명은 "관리장이 일상적인 성적 요구를 하며 괴롭혔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하면 더 노골적으로 괴롭힐 것이 걱정돼서 남편의 죽음조차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체 회장의 술 마시고 노래하는 자리에 참석하라는 강요를 거절했다 해고 위협을 당했다는 청소노동자도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짤릴까 봐" 항상 걱정해야 하고, "산재하면 그 자리에서 끝나는" "제일 밑바닥"이라고 표현했다. 한 청소노동자는 "이게 내 짊어진 업"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코로나 이후,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방역 조치에서는 차별받고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는 코로나 이후 청소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김 교수의 조사에서 더 단적으로 드러난다.
우선 인력 충원이 이뤄진다거나 청소노동자들이 이를 요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됐다. 조사 대상 청소노동자 84.4%가 코로나 이후 '일이 힘들어졌다'고 답했다. 벨트 소독, 엘리베이터 손잡이 청소 등 업무가 추가됐다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하루에 한 번씩 닦던 변기를 네 번씩 닦게 됐다는 노동자도 있었다.
방역도 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지하철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재택근무, 시차출근제, 식사시간 분산, 동선 분리 등 조치가 취해졌지만 청소노동자의 업무 특성에 맞춘 방역적 변화는 없었다. 한 청소노동자는 지하철공사에 "마스크를 달라"고 요구했다 '직원이 아니라서 못 준다. 용역업체한테 달라고 해라'는 말을 들었다.
양적 조사에서도 청소노동자 96.6%가 '내 일은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직접고용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차별적 대우와 시선
직접고용도 청소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2018 ~ 2019년 국공립대학 및 공립학교 간접고용 노동자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임금이나 복지와 관련한 개선은 거의 없었다.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며 노동시간을 깎거나 임금을 깎고 인원을 축소해 외려 노동조건이 나빠진 경우도 있었다.
청소노동자를 유령으로 보는 차별적 시선도 사라지지 않았다. 한 청소노동자는 "같은 무기계약직인데 미화원은 차별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동자의 고용안정이 없으면 기본적인 권리조차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접고용은 물론 굉장히 중요하다"면서도 "직접고용이 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일과 관련해 김 교수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실행하는 건 사람"이라며 "우선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인식을 갖기 위해 현실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소노동자에 대한 정기적인 조사로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을 먼저하고 축적된 자료를 통해 필요한 제도를 심도있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험, 복장 갑질'..."칭찬 받은 사람 있으면 모욕과 갑질 구조는 없는 게 되나"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박문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법규정책국장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이후 경과를 전한 뒤 사건에 대한 서울대 대응의 문제를 지적했다.
박 국장은 지난 13일 발표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의 입장문에 사과 표현이 등장하지 않은 데 대해 비판한 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느냐에 따라 2, 3차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국장은 "그런데 학생처장 보직을 맡았던 구광모 교수 등의 발언을 보면, 학교 측은 사망 사건 이후 가해자의 말은 철썩 같이 믿고 있고, 노사공동진상조사단 구성 등 현장 노동자와 노조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박 국장은 또 '필기시험 및 점수 공개'와 '회의시간 드레스코드 지정 뒤 감점 발언'이 갑질인가 아닌가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에 대해 "누군가는 시험에 1등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옷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며 "칭찬받은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모욕감은 없는 게 되나. 갑질 구조는 없던 게 되나"라고 물었다.
이재현 '서울대 비정규직 만들기 공동행동' 학생대표는 이번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해서 서울대 인권센터가 조사를 맡은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재현 학생대표는 "서울대 인권센터는 센터에서 주최하는 인권주간에 학생들에게 교수의 학생 대상 권력형 갑질 및 성폭력과 관련한 코너를 운영하지 말라고 해 인권주간 보이콧을 당한 적이 있는 곳"이라며 "학보사 <대학신문> 기자들이 교수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해 신문 1면을 백지로 발행하자 인권센터가 학생 기자들이 교수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인권교육 이수를 권고한 황당한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인권센터가 교수의 권력형 갑질과 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때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조사에 대한 학생 참여를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솜방망이 처벌 권고만을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며 "학생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지 않았던 인권센터가 노동자에 대해서도 같은 시선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고 인권센터를 통한 사망 사건 조사를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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