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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분들이 노조에 넘어가? 우리도 사람인데 이런 모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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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분들이 노조에 넘어가? 우리도 사람인데 이런 모욕을..."

[인터뷰] 서울대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청소노동자 남편 이모 씨

"휴게실에서 얇은 이불을 덮고 평온하게 자고 있었어요. 옆에는 컵라면이 있었어요. 치우지도 못하고..."

지난달 26일, 이모 씨는 10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아내 A씨를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마주했다. 누워있는 모습에 피곤해 잠든 것이기를 바랐지만 아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막내딸과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장례를 치른 이 씨는 이후 아내 동료였던 청소노동자들의 증언을 전해 들으며 아내가 죽기 전, 한 달 여간 겪은 일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시험 갑질', '드레스코드 갑질', '청소 검열 강화' 등으로 현재 회자된 일들이었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내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씨는 지난 7일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과 함께 학교 측에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일반노조는 A씨가 생전 가입했던 노동조합이다. 기자회견 이후 아내가 당한 '갑질'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러자 기자회견 하루만인 지난 8일,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청소노동자에게 보게 한 필기시험은 직무교육의 일환이었다', '회의 시간 드레스코드를 지정한 뒤 복장을 보고 평가, 감점 등 말을 한 것은 농담이었다' 등 갑질을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유족이 원래는 순수하고 겸손한 분들인데 노조 때문에 일이 커졌다', '산재를 받기 어려울 것 같자 중간 관리자 갑질 프레임에 좌표가 찍혔다'는 것과 같은 표현도 있었다. 이후 서울대 관계자 사이에서 비슷한 발언이 이어졌다.

이 씨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렸다. 아내가 떠난 뒤 심리치료를 받는 그였다. 아내가 겪은 일과 서울대 관계자들의 대응에 대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열심히 말을 골랐다.

지난 14일 정의당 간담회, 지난 15일 민주당 간담회 등 공식석상에서 이 씨는 서울대 안에 만연한 청소노동자에 대한 편견, 갑질과 노조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대해 눈물을 삼켜가며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서울대의 진짜 '명예'가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지난 15일 서울대에서 이 씨를 만나 그의 속내를 들었다.

▲ 지난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고인의 유족 이모 씨.ⓒ연합뉴스

"우리를 동등한 사람으로 봤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요?"

"왜 껍데기로만 사람을 평가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분들이 청소노동자를 볼 때, 내면의 성품이나 각자 가진 생각의 깊이, 살아온 과정에 대해 생각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가족이 죽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데, '산재를 타려고 싸운다'거나 '원래는 순수하고 겸손한 분들인데 노조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씨가 구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보며 든 감정은 '모욕감'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생각과 힘으로 삶을 결정해온 이들이고 다양한 인생 경로를 가진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씨와 A씨에게도 직업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인생 경험이 있다. 이들 부부는 신념에 따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긴 시간 해외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경영 쪽 일을 했던 이 씨와 경제지 기자였던 A씨는 1999년 방송을 통해 몽골에서 유기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전 재산을 들여 몽골의 빵 공장을 인수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 이후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사람들에게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부부가 한국에 돌아온 건 2017년 9월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자 먹고 살기 위해 일이 필요했다. 이 씨는 내일배움카드 프로그램을 통해 기계 관련 자격증을 따고 2018년 10월부터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로 일해왔다.

A씨에게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건 어떻겠냐'고 권한 것은 서울대에서 먼저 일을 시작한 이 씨였다. 도서관 사서로 취업한 A씨는 어느덧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60세가 넘으면 정년 때문에 사서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이 씨의 제안에 동의한 A씨는 따로 준비를 해 '국민체력 100'이라는 이름의 입사 체력 시험을 통과하고 2019년 11월부터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이런 식의 비극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청소노동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말 때문에 아내와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듯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모욕감은 이 씨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저 순진하지 않거든요. 사회 문제에 관심도 많고 이를 해결하려는 삶을 살기도 했어요. 형편은 곤궁할지 몰라도 저희는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노조에 넘어갔다고 하는데, 저도 아내에게 일어난 일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를 '사람'으로 보면 좋겠어요."

어쩌면, '중간 관리자 갑질 프레임'을 이야기한 구 교수 등이야말로 청소노동자를 바라보는 특정한 프레임에 갇혀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이 씨는 생각했다.

▲ 서울대학교 한 게시판에 청소노동자 죽음에 대한 학교 측의 사과와 근무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부착돼 있다. 서울대에는 유족과 노조의 진상 규명 요구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연합뉴스

"'갑질' 사건의 본질은 경중이나 기간이 아니다"

이 씨는 서울대 관계자들의 해명에도 분노했다. 서울대 관계자들은 논란이 되는 필기시험과 드레스코드 지정 등과 관련해서 갑질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씨는 이를 두고 "갑질에 대한 이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갑질의 경중이나 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는 갑질 사건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한 대만 맞아도 크게 상처를 받는데 어떤 사람은 열 대를 맞아도 상처를 안 받을 수 있잖아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누군가 했고 그 때문에 누군가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봐야 하는 거죠."

아내가 필기시험에서 1등을 했고, 드레스코드 조치에 대해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을 들어 A씨는 이에 불만이 없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두고도 직원들 사이의 관계나 사내 권력관계를 무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동료들은 가슴 아파하는데 제 아내가 필기시험에서 1등을 했다고 학교가 한 일에 찬성한 듯 말하는 변명을 듣고 정말 모욕감을 느꼈어요.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데 대해서는 관리자와 직원의 관계를 봐야죠. 부장님이 회식하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거랑 같은 상황인 거죠."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당한 '갑질'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노조를 '외부세력'으로 규정한 데 대해서는 '노조는 외부세력이 아닌 서울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조직'이라고 말했다.

"저희 아내도 노조 조합원이었어요. 저도 조합원이고요. 노조는 조합원이 죽으니까 학교보다도 먼저 사건을 조사했어요. 노조가 필요 없는 삶을 살아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필요 없는 삶을 사실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노조가 아니면 기댈 데가 없어요."

▲ 지난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을 꼭 쥔 채 서 있는 서울대 청소노동자들. ⓒ연합뉴스ⓒ연합뉴스

"청소노동자가 '서울대는 정말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게 진짜 명예"

현재 이 씨는 노조와 함께 학교에 진상 규명을 위한 노사공동조사단 구성, 총장의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교수협의회'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등 학내 단체도 이 같은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이에 대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사건 발생 17일 만인 지난 1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학내 기관인 '서울대 인권센터'에 사건 조사를 맡기겠다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 고인과 유족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이 씨는 앞으로 서울대가 태도를 바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를 계기로 구성원 모두가 청소노동자와 갑질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점검하고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아내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건이 일어나고 서울대의 명예를 말하는 교수들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정말 서울대의 명예가 뭔지 묻고 싶어요. 조직을 지키는 게 명예인가요? '하찮은 일'을 하는 청소노동자도 '서울대는 정말 좋은 곳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학이 되는 게 서울대의 진짜 명예 아닐까요? 서울대가 정말로 명예를 중요시한다면 이제라도 제 아내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하고 앞으로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어요.

2년 전에도 서울대에서 열악한 휴게공간 때문에 하늘나라로 가신 청소노동자가 있었잖아요. 그때 서울대가 청소노동자를 사람으로, 다른 이들과 동등한 구성원으로 봤다면 단순히 휴게공간에만 관심을 갖는 걸로 그치지 않았을 거에요. 더 많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봤겠죠. 이번에도 사건이 터졌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끌려가듯 대응한다면, 제 아내와 같은 일을 겪는 청소노동자가 또 나올 거예요. 만약 그렇게 되면 이 학교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 씨의 바람대로 서울대는 청소노동자도 '정말 좋은 곳이야'라고 말하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전 사회적 주목과 많은 이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 사건 앞에서도 그럴 수 없다면, 서울대에는 정말 희망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 씨가 자신의 직장인 서울대학교와 싸우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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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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