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그리고 춤...
탈(面)을 쓰면 내가 없다
나를 벗어(脫) 탈(面)춤을 춘다.
탈(面)을 벗으면 내가 있다
가식을 벗어 탈(脫) 춤을 춘다.
써도 탈(面)이오
벗어도 탈(脫)이다
내가 춤을 추는지
탈이 춤을 추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세상 어느 춤에서
속없는 춤을 춘다.
탈춤을 춘다.
윗글은 무용 작품내용으로 해마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여 풀어보고자 하는 나의 작업 주제이다. 근 40녀 년 간 나의 작품주제는 탈 혹은 인형, 꼭두 등에 관련된 주제로 일관했었다.
인형놀음, 종이광대, 광대의 옷자락, 미얄할멈의 하소연, 꽃보다 미얄, 탈 그리고... 춤, 꼭두산조 등 나의 작업의 대부분이 인간의 참과 허구를, 아니 나의 안과 밖에서 방황하는 애매한 상징으로 탈과 관련된 주제를 선호하고 있다.
그것은 나라는 실체와 잘 대비되는 또 하나의 나로 탈과 꼭두의 비유가 나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탈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 역할을 나타내기 위해, 과장과 상징의 의미로 쓰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속성이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많이 감추어져 있는가. 아니 내 안의 이러한 욕구가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수시로 여러 개의 탈을 바꾸어 써가며 많은 역할들을 감쪽같이 해내는 광대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에, 탈을 쓰던 그렇지 않던 우리는 탈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탈춤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이다
무용교육학과에 입학을 하고 나름대로 대학 생활을 재미있게 해보겠다고 찾은 것이 청운가면극회라는 탈춤 동아리였다. 무용전공인 나는 전공과 관련 있는 활동으로 접근이 쉽고 또 전공에도 도움이 될까 싶어 선택한 동아리였다. 예상한 대로 나는 쉽게 춤추기에 빠져들어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춤을 추면서 토해내는 추임새와 흥은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무용을 배워왔던 나는 지금까지 해온 춤의 양식과는 사뭇 다른 춤추기가 오랜 훈련을 통해 내 몸이 만들어 놓았던, 잘 정리된 움직임의 틀을 조금씩 부수어 갔다. 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한국 춤추기의 조심하고 절재하고 눌러주던 마음가짐이 탈춤을 통해 조금씩 드러내기를 소망하게 된 것이다다.
그런 재미로 방학 때면 연수다, 강습이다, 탈판에 재미를 붙여 쫓아다니게 되었다.
청운가면극회에서 첫해에는 팔먹중 중 두 번째 먹중 역과 무당역할을 했었고 그 다음 해 부터는 미얄 역을 맡았었다. 낙양동천 이화정 ∼∼ 불림을 외치고 덩덕기 덩따∼ 타령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던 그때가 그립고 이제와 생각하니 새삼 새롭다.
아직도 청운가면극회 선배님들에게 기본춤사위를 호되게 훈련받고 다리에 근육통이 생겨 몇일을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생각하면 그래도 그때 나는 정말 날아 다녔던 것 같다.
위 사진은 1982년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월악산 부근 송계로 농촌 봉사활동과 탈춤 연수를 갔을 때 이다. 빛바랜 사진을 보니 그때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봉산탈춤의 김선봉 선생님과 같이 갔는데 직접 밥도 해먹고 길가 나물도 뜯어 반찬으로 먹곤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송계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 버스가 다녔고 슈퍼나 가게가 없어 어쩌다 작은 트럭이 찬거리를 싣고 와서 파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 들과 밭, 길, 개천에서 얻어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밥맛이 꿀맛 이었다. 하루는 몇몇이 반바지를 입고 동네를 다니며 가지, 고추, 나물을 캐고 있는데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 한분이 큰소리로 우리를 막 나무라며 얼른 들어가 옷 갈아입으라고 호령을 치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당황하고 무서워서 흩어져 도망을 왔다 그때만 해도 아주 시골에서 그것도 여자가 다리를 내넣고 다니는 것이 큰 일 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재미있었던 경험이었다.
2주 정도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며 탈춤을 배우고 연습하는 동안 서로는 많이 친해졌고 어색함이나 부끄러움도 많이 없어졌다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그때 그 친구들, 선배들이 보고 싶다.
그 후 양주 별산대 놀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봉산과는 좀 다른 강도와 짜임새를 가진 양주 별산대놀이도 나에게 좋은 영감과 색다른 춤추기를 접할 기회를 주었었다.
한번은 지도교수님(채희완교수님)과 어느 날 연습 뒤에 단합대회를 빙자한 술판을 벌린 일이 있었다. 그때 교수님은 우리에게 탈춤을 추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공동체감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민족의 정서를 흠향하기 위해 등등의 대답을 했다. 내 차래가 되었는데 나는 도무지 그런 대답과는 거리가 있었다. 달리 둘러대기도 그렇고 해서 솔직히 탈춤이 좋아서 춘다고 했다. 춤을 추니까 재미있고 신나고 몰입된다고... 나는 정말 탈춤이 재미있었다. 이러한 재미와 함께 서서히 탈춤이 가지는 매력에도 빠지게 되었다.
탈춤에는 우리들 삶의 이야기들을 슬프지만 재미있게, 더 나아가 비극적인 현실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현실의 고통과 갈등을 극(劇)의 형식을 통해 해결하게 하여 힘들고 지친 현실에서도 새 힘과 웃음을 갖게 하는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힘은 탈춤을 추면서 서서히 체득 되는 매력중 하나이다.
탈판의 여러 과장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시대를 초월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며 이야기 속에서의 교훈은 자신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소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담아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해주는 것 같다.
탈춤의 예측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의 하나는 풀어 나갈 이야기의 줄거리를 던져놓고 연희자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 가는 의외성과 즉흥성, 현장성과 일회성의 특징이 잘 녹아나는 독특한 한국적 작업이다 그래서 하는 이와 보는 이의 가슴속에 공감과 통함으로 자리 잡게 되며 그것이 우리라는 공동체로 하나임을 느끼고, 나임을 학인 할 수 있게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름대로 생각의 틀도 변화가 생겨났다. 지금까지의 내가 가졌던 미(美)의 가치, 생각의 폭, 작품 해석의 방법 등의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계획한대로 진행되었던 작품 활동에서 이제는 생겨나는 춤과, 거칠지만 솔직한,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우리방식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 춤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맛있는 춤은 생겨나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철학(?)도 생겨났다.
탈춤을 추면서 좋았던 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탈춤을 몇 해 공연하니 점점 익숙해 져가면서 그저 순서대로 반복하고 있었고 한낮 몸 풀기 정도로 여겼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 바로 탈춤이 시시해지고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탈춤을 춰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탈춤을 그저 추는 즐거움으로만 계속 할 수 있을까?
탈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춤과 노래와 극과 관객을 참여시키는 재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뿐이라면 탈춤의 강한 전승력과 에너지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질문과 대답, 그리고 내가 자부할 수 있는 탈춤에 대한 가치를 찾기 위한 방황이 시작되었고 탈춤을 추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을 찾기를 갈망했었다.
이러한 의문 끝에 표면적인 보여 지는 것뿐이 아닌, 예로부터 그때의 현재를 껴안고 변화도 굴곡도 다 감싸고 흐르는 큰 강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다.
강물은 보기에는 유유히 흘러가는 것 같지만 강바닥의 바위, 잡초, 쓰레기, 움푹 파진 구덩이, 그리고 물고기든 벌래든, 편편한 곳이나 굽어진 곳도 드러내지 않고 멈춤도 없다.
아직도 나는 이 유유한 강물 속의 다양한 이치와 지혜를 알기 위해 애쓰고 있고, 그래서 아직 탈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는 다양한 방식의 공연들이 수없이 출연하고 있고 과거에 비해 많은 장르의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특히 과학기술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1초 생활권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얼마나 많은 정보와 자극에 유혹을 받고 있는가. 그러나 저때만 해도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기도 쉽지 않았던 때고 공연도 그리 많지 않았던 시대이다. 탈판공연은 몇 시간씩 이어지고 막걸리와 빈대떡, 사자춤에서 쓰러진 사자를 격려하기 위한 촌지 몇 개가 더욱 흥을 돋게 하였고 넉살로 뻔뻔한 에드립을 만발하게 하였다 이제는 그런 공연을 하기도, 보기도 쉽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현대는 점점 속도를 더해가는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 이에 힘입은 영상문화의 발달은 영역과 경계를 확대해 가며 현대 문화를 주도해 가고 있는 현실이다. 공연예술 분야는 경제적, 시간적, 인적 자원을 투자하여 어렵게 작품을 제작하지만 정해진 공간과 시간이라는 제약으로 속도와 편리함에 익숙해져가는 현대인들을 공연장으로 불러 오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전통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보다도 쉽고, 편리하고, 자극적인 것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현대인들에겐 탈춤을 접할 기회, 공연을 볼 기회조차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 거의 모든 대학에 있었던 탈춤동아리들이 현재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상황을 비추어도 보더라도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전통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흐를 물.
우리의 문화와 생활양식, 가치, 갈등과 책임, 삶의 냄새, 이러한 우리 삶 자체를 다 끌어안고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에까지 흘러갈 막지 못할 거대한 물줄기, 그래서 살아있고 그러므로 체험하고, 그 속에 녹아들어 같이 흐르게 되는 것, 이것이 전통이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탈춤은 살아있는 현재의 것이라는 인식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방식대로 풀어내는 우리들의 것이라는...
한때는 탈춤이 어떠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또한 저항의 한 방법으로 자주 연희 되었었다.그래서 탈춤의 여러 장점보다 반국가적, 반사회적 측면이 강하게 각인 된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공연들이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융.복합적 연희방식, 특히 관객의 직접 참여 등의 형식은 우리 탈춤이 오랫동안 가져왔던 특성이다.
우리의 민속춤들은 마당에서 극장으로, 다시 극장에서 온라인상으로의 변화와 혁명, 융합과 접목, 현대화와 국제화라는 각 시대의 요구와 필요성이라는 명분으로 끝없는 변화와 시도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제 잠시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리 새로운 문화예술의 플랫폼이 다양한 방식과 지속적으로 강요되는 유혹, 그리고 접근성이 좋다 해도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하고 해야 할 것은 해야 할 것이다. 유행이나 대중의 열광을 위함이 아닌 진정한 우리를 알고 이어가는 것, 그것이 곧 우리다움이며 세계적으로 선명하게 구별되고 드러나는 우리의 색깔일 것이다.
살아 흐르는 우리 춤, 탈춤!
춤을 추면서 알게 되었고, 춤 구경하면서 알게 되었으며,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면서 깨달은 사실들이다. 그러나 현대는 이러한 기회조차 어려워진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여기에는 교육제도나 문화정책의 문제점, 우리고유의 생활양식의 변화 등에도 원인도 있겠지만, 가장 우리다운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원인과 우리 것에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도 크다고 하겠다.
우리 민족 나름대로의 정서와 문화를 품고 같이 호흡해온, 우리임을 잘 알게 해주는 가장 우리다운 춤, 탈춤. 나는 아직도 탈춤에 파묻혀 산다. 탈도 좋아하고 탈과 관련된 것들을 좋아하고 수집한다.
학생 때처럼 탈판을 쫓아다니거나 탈춤을 배우러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탈이나 탈과 관련한 주제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방법이고 우리다운 소재이며,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이인숙
현 : 청주대학교 영화과 교수,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이사, 청주시 문화도시 추진위원회 부회장,
역임 : 주성대학 여가문화과 교수, 목원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학부 교수, 중국 북경수도사범대학교 과덕대학 공연예술대 부학장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원고 마감 : 2021년 9월 30일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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