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창궐 이후 북한은 외부와 통하는 문을 걸어 잠궜다. 무역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2월 발간한 <KITA 북한무역>에 따르면 북중 간 2020년 무역액이 2019년에 비해 80.7% 급감했다.
여기에 북한을 상대로 한 국제적 제재가 여전히 강고하고 설상가상으로 수해까지 겹쳐 3중고를 겪게 될 북한 경제가 버텨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프레시안>은 <북한경제 '전환기' 읽기>를 연재한 북한연구자인 유영구 전 언론인과 함께 북한 경제에 대한 향후 전망과 변화 양상을 들어봤다.
유영구 북한연구자는 1978년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후 대학원에 진학해 1984년 중소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당시에는 주로 중국의 개혁개방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14개 연안도시 개방에 대한 원고를 <월간조선>에 연재하기도 했다.
특수 자료 취급 인가가 있었던 연구소의 연구 환경 덕에 북한 언론의 각종 자료들을 원문으로 보게 되면서 북한에 대해 연구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마침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청년 학생 사이에 소위 '북한 바로 보기'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의 글을 원하는 곳이 많아졌다.
이후 1989년 <중앙일보> 동서문제연구소(현재 통일문화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입사했고 기자 겸직 발령을 받은 이후 1945년에서 48년 사이에 북한에서 일어난 일을 토대로 한 '비록-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라는 연재를 1년 10개월 동안 이어가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김정일 시대의 북한' 이라는 10개월 분량의 연재와 안기부에서 지원을 받아 탈북자 50명을 인터뷰 한 연재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취재 및 기사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또 1997년에는 유홍준 교수와 북한문화유산답사기를 취재했고 그해 겨울 풍수전문가인 최창조 당시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를 가이드해서 북한을 다녀온 뒤 기사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중앙일보> 퇴사 이후에는 <민족 21> 편집기획위원회에 참여했고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을 하면서 북한에 대한 연구를 이어왔다. 2007년에는 <중앙일보>에서 진행했던 평양의 혁명열사릉 및 애국열사릉 취재에 자문격으로 함께 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30여 년간 북한에 대한 연구를 했던 베테랑 연구자인 그는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유영구 연구자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회담과 그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을 보고 남북관계가 진행되면 반드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실질적인 담론이 되고 실제 실천행위로서 진행될 텐데, 우리가 북쪽 경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책 발간 취지를 밝혔다.
2021년 북한 경제가 '자력갱생'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력갱생은 이전부터 북한에서 쓰여 오던 것으로 북한에는 매우 익숙한 것"이라면서도 "김정은 시대가 이전과 다른 점은 문제를 공개하며 곧바로 대응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8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년)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했는데, 지도자가 이렇게 거의 전 부분에서 미달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북한 경제의 돌파구 마련 방안에 대해 유영구 연구자는 "북한은 일정 기간은 버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구히 대외교역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8차 당 대회 때 나온 메시지를 봐도 대외 경제 교류를 하겠다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라며 "김 위원장이 1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보낸 축전을 보면 양측 관계가 상당히 좋아져있고 미국과 대치 전선에서 서로 협조를 통해 위기를 타개해 나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지난해 말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이라는 책을 냈다. 두 권이나 되는 북한 경제 관련 저서를 출간한 이유가 무엇인가?
유영구 :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회담과 그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을 보고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전에도 자료는 모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진행되면 반드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실질적인 담론이 되고 실제 실천행위로서 진행될 텐데, 우리가 북쪽 경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쪽 경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경제학 공부가 돼있지 않으면 북한 경제의 술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주의 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한다면 그 다음에는 주체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했다. 이런 부분에서 책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북한 경제에 대해 현실적인 데이터가 너무 없다는 측면 때문이었다. 사실 경제학은 숫자인데, 북한 경제에 대해서는 숫자가 너무 없었다. 물론 구소련이나 중국 쪽 경제를 봐왔기 때문에 북한 경제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데이터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운 측면이긴 하다. 그래서 북한 실물경제 자체를 분석하기보다는 북한경제의 발전 전략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경제통계, 즉 숫자가 없이도 북한의 경제에 대한 접근방식이나 전략을 알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탈북자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탈북자 자신의 경험 세계 위주일 수밖에 없고, 북한 경제 시스템의 전체상을 모른 채로 본인들이 아는 내용만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나 서구에서는 대외 경제 제재 속에서 북한 경제가 살아날 것인지, 북한의 장마당에 관심이 많은데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유영구 : 세 가지 구조로 돼있다. 첫 번째는 북한 경제의 기초가 무엇이지에 대한 기본 성격과 토대, 이를테면 정신적 기초, 정치적 기초, 경제적 기초에 주목했다. 두 번째는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한 전략적 노선이 어떻게 변화돼 왔는가의 문제인데, 이렇게 두 부분을 묶어서 1편으로 구성했다.
두 번째 책인 2편은 김정은 시대 들어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과 경제발전 총력 집중노선, 이 두 가지가 핵심인데 이를 경제 부문별로 다룰 때 북한 경제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접근이다.
<프레시안>의 연재에는 북한 경제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문제 및 북한 경제가 과연 살아남을 것이냐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의식은 올해 1월에 있었던 8차 당 대회부터 시작해서 그 뒤 일련의 정치 행사에서 제안된 최근의 각종 경제 정책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은 다소 교과서적인 스타일이었는데 이번 연재는 바로 문제로 들어가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2021년에 시작된 변화들을 담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책과 연재가 보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북한, 3중고로 체제 위기?
프레시안 : 북한이 이른바 '자력갱생' 노선을 표방한 것이 지난해 초부터고, 올해 들어와서 당 대회 이후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북한이 코로나 19와 제재, 자연재해 등의 3중고를 겪으면서 견디기 힘들어 지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유영구 : 우선 경제적 자력갱생은 북한이 1950년대 주장한 자립적 민족경제건설 노선에 기원을 두고 있다. 북한에서는 자력갱생을 피해갈 수 없다. 자력갱생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폐쇄경제로 비춰지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소련, 북한-중국의 관계가 좋았을 때는 외부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기에도 북한은 자력갱생을 했다. 주민들에게도 익숙하다.
흔히 자본주의 경제학과 사회주의 경제학에서 자본의 원시적 축적, 본원적 축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개인 회사가 잉여가치를 전부 떼어서 재생산에 투자하면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된다.
국가단위에서 보면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매우 중요하다. 잉여가치가 높지 않으면 확대 재생산이 어렵다. 자본주의 국가의 발전 전략도 확대 재생산, 이 과정에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이뤄진다. 노동자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거기서부터 잉여가치를 가져올 수도 있고, 방식은 여러 가지다.
사회주의도 자본의 본원적 축적 없이는 확대 재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절약 증산투쟁과 저축의 증대 등 잉여가치 부분에 대한 축적이 필요하다. 외국으로부터 금융 지원이나 대출을 받아서 자본을 빌려오기 어려운 조건에서는 자력갱생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람들이 2020년 코로나 19 사태 이후 북한을 바라볼 때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연상한다. 마침 지난해 자연재해도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고립되고 대북 제재도 있다.
그런데 북한은 오랫동안 자립적 경제건설 노선을 지속해 외부 교류가 양적, 질적으로 제한돼 있었다. 북한에 없는 것만 수입하는 것에 익숙하다.
물론 1995년 이후에 경제가 전반적으로 무너지니까 장마당이 생기고 인민들이 생존을 위해 자생적인 경제활동을 영위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중국 국경 지역에서 경공업 제품들을 대거 수입해 와서 인민 생활 경제가 유지되는 구조가 됐다. 그래서 지금도 그 방법 밖에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와 지금은 전혀 다른 부분이 있다.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개인이나 기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무력기관 등이 각자 도생하는 자력갱생이었다. 지금은 국가가 완전하게 주도하고 7-8년 성장기를 유지하다가 정체기에 빠진 것이다. 즉 현재의 국가적 자력갱생은 국가가 관리 가능한 자력갱생이다.
실제 북한은 국가적, 계획적, 과학기술적 자력갱생을 말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올해 1월 국영상점망의 정상적 가동 노력이 공식 정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건 이전 고난의 행군 시대와 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진 자력갱생이다. 특히 자력갱생에서 과학기술적 자력갱생, 즉 각 생산부문과 단위에서 과학기술발전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도 유의할만한 대목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고 해도 지금 북한의 대외 교역 자체가 거의 없는데, 이 상태로 얼마나 갈 수 있겠냐는 전망도 많이 나오고 있다.
유영구 : 버티기의 시간문제와 북한의 자력갱생을 통해 유지하고 있는 경제 순환, 재생산 구조 문제가 엮여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일정 기간은 버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구히 대외교역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8차 당 대회 때 나온 메시지를 봐도 대외 경제 교류를 하겠다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다만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제 결의가 존재하는 한 북한이 문을 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 방역 사태 때문에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문을 열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버티기 일환으로 생각한 것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식량의 배분 문제다. 군대에 비축한 식량 중에 군인들의 식량과 비축미를 일단 민간에 풀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군대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민간에서 식량이 언제 얼마나 생산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군의 비축 식량을 민간에 공급한다는 것은 확인된 것인가?
유영구 : 당 제8기 3차 전원회의의 결정사항 중 특별명령서에 경제상황과 인민 생활 안정, 방역 강화가 명시됐다. 인민생활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다.
일부 보도를 보면 북한 내에서 쌀값이 세 배 정도 뛰었다고 하던데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에 식량 사태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할 정도였으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해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결 못할 문제면 아예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식량 생산이 안 되면 식량을 이동해야 하고,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군의 식량을 풀어서 일단 인민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군인들이 식량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제8기 3차 전원회의와 제8기 제2차 정치국확대회의를 보면 인민생활 안정에 대한 언급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는 현재의 불안정한 요소를 고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이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번 결정서에는 자원 재배분 이야기가 들어 있을 것이다. 중공업에 대한 투자를 일정 부분 민생 쪽으로 전환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당 8기 2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갑자기 열려서 정치국 상무위원부터 교체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사진 및 동영상 자료를 판독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리병철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이 물러난 것 같다고 분석했는데 이건 맞다고 본다. 총참모장은 예하 군종‧병종사령부와 각 군단을 관리하고 군심을 다독여야 하는데, 명령이 먹히지 않아서 시간을 질질 끌게 된 것 같다.
최상건 당 과학교육 비서도 물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교육 비서가 보건 분야까지 같이 담당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 발언을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다 드러난다. 국가 방역 사업에 대해 조직기구적, 물질적, 과학기술적 해결 방안에 대해 소홀했다고 나온다. '조직기구적'은 군대를 포함해방역을 위해 만든 조직으로 보인다. 즉 군대를 포함해 모든 조직이 이 조직의 지휘를 받도록 한 거 같은데, 여기서 미적미적한 것이다.
물질적 문제는 생활안정 부분인데, 국경이 폐쇄되고 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 당연히 생활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과감하게 식량 이동이 됐어야 했는데 그게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과학기술적 문제는 백신 개발이나 보건 문제 쪽 관련해서 예방에 관한 각종 조치들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지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세 분야에서 문제가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관련자를 경질하게 된 것이고, 쌀이 가장 문제니까 이 부분에서 위기를 넘기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자력갱생에 대해 김정은 시대가 이전과 달라진 것이 문제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며 곧바로 대응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8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년)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했는데, 지도자가 이렇게 거의 전 부분에서 미달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례적이다.
과학기술적 자력갱생 부문도 좀 더 문제를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예전과는 다르다. 그런 유의미성에 착안해서 볼 때, 그렇게 할 때 대북 정책도 올바른 것이 나온다.
프레시안 :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중앙정부가 손을 놓고 국민들에게 '알아서 먹고 살아라' 라고 한다면 지금은 적어도 중앙정부가 나서려고 하고 있고 적어도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 같다. 북한이 대외 교역을 스스로 거부한 것이 아니라 국제환경 때문에 버티면서 뚫고 나가려는 기회를 보고 있는 걸로 봐야 한다는 말인가?
유영구 : 그렇다.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중국 비료가 들어간 거라고 보고 있는데 이건 중국에서 어쨌든 가능한 범위에서는 북한을 지원하는 것으로 읽힌다. 김 위원장이 1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보낸 축전을 보면 양측 관계가 상당히 좋아져있고 미국과 대치 전선에서 서로 협조를 통해 위기를 타개해 나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교류, 아직 기회는 있다
프레시안 :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북한과 대화한다고는 하지만 북한과 미국 모두 서로에게 셈법을 바꾸라고 하고 있는 형국으로 보이는데, 북미 대립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지?
유영구 : 오늘(1일) 시점에서 보면 중국 공산당 100주년 맞이해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 사이에 축전을 보냈고 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이 1면에 낸 사설 등을 보면 북한은 중국과 협력 및 교류를 확대하려고 하는 것 같다.
중국은 당연히 환영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북중 관계 협력의 양상이 이전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즉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유엔 제재 등을 일부 어길 수도 있다. 즉 상당한 대북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자국을 상대로 미국이 만들고 있는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 있도록 북한에 협력을 구하고 있는 것이고, 여기서 한국과 미국이 현 상태를 유지하면 북한은 버티기 전략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남북관계는 상당 기간 동안 접근의 기회를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아직 기회는 있다. 북한 내의 경제 정책 담당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에서 남북 간 경제 협력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더 나을 거라는 판단도 나올 수 있다. 남북관계는 잘만 풀면 미국, 일본과 관계도 풀어갈 수 있는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중요하다. 북한도 중국에 기대어 자주성이 훼손 당하는 것까지는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남북관계에 대해 기대가 있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한국의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남북한이 부지런히 움직여왔던 전례도 있다. 2007년 10.4 선언도 그렇고, 한국에서 선거를 앞두면 남북은 바쁘게 움직였다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양측이 접근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오는 8월에 있을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서 한미 양측이 북한을 심각하게 자극하지 않으면 남북 간에 비공개로 유지되고 있는 '접촉 통로'의 체면이 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접촉 통로에서 대화해온 내용에 대한 불신이 발생하고 공개대화의 기회가 멀어질 수 있다. 남북 간 기존 통로가 유지되면서 가을에 진전을 이루려면 한미 훈련에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가을에 무엇인가에 합의한다면 북한은 남북간 합의 실천의 제도화를 상당히 요구할 것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합의만 하고 끝냈기 때문에 서해평화지대 구상 등이 수포로 돌아간 전례가 있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 쌍방이 합의를 국내외적으로 제도화해서 실행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에 관심이 높을 것이다.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과 다른 점은
프레시안 : 김정은은 어떤 변화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김정은의 목표는 무엇인가?
유영구 : 우선 1970년대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가 될 때는 김일성과 역할을 분담했다. 국가의 일은 김일성 주석, 당의 일은 김정일 조직비서가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와 당의 일 모두를 하고 있다. 그리고 당의 중요 회의를 통해서 일을 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아주 직설적인 표현으로 자신들의 문제점과 해결방향을 공개한다는 점이다. 이건 김일성, 김정일 시대와 비교했을 때 대단히 큰 변화다. 시스템에 의존하고 공개성, 투명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건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경제 문제는 굉장히 예민해서 성과를 내기 어렵고 잘못하면 경제 때문에 체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본인이 직접 경제 문제에도 나서고 있다. 이건 굉장한 변화다.
상대가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한다면 우리도 예측 가능한 대응을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예측 가능한 위험이 생겨날 수 있다.
세 번째로 지난 1월 8차 당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 지난 시기의 무기 개발을 나열하고 이제부터 어떤 무기를 개발할 것이라며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군사적 위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호응하지 않고 우리를 계속 괴롭히면 군사 개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네 번째로 계획경제가 실패하는 이유가 허위‧과장보고인데,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숫자 경제를 중시한다. 특히 8기 2차 전원회의에서 통계를 중앙집중화 하자고 했다. 중앙 통계국에 각종 통계들이 정확히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데, 가장 문제가 권력집단 및 무력기관 등이 제대로 된 통계를 내놓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정확한 통계를 건네주기 시작하면 전부 공개해야 하고 그러면 자신들의 이권을 다 뺏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한국은행의 북한 관련 통계는 어떻게 산출되는 것인가? 주로 탈북자 면접을 통해서 정보 얻는다고 하던데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 경제에 관한 정보가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유영구 : 한국은행 통계의 기저를 이루는 것은 1970년대 중앙정보부에서 만든 '남북한 경제력 비교'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이 기본이 된 상태에서, 북한은 항상 전년 대비 몇 %가 성장했다고 발표한다. 이 두 가지를 합해서 추계를 해온 것이다.
추계를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까 경향성, 즉 추세를 알 수는 있다. 다만 현재의 북한 경제를 이해하는 데 그 데이터가 얼마나 정확한지, 딱 들어맞는지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건 북한에도 1차적 책임이 있긴 하다. 경제 관련 데이터를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도 어느 순간에서는 경제 관련한 데이터를 내놓아야 한다. 다국 간의 경제협력과 교류가 커지면 상대 국가들과 국제금융기관들이 경제 데이터를 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경제는 전부 숫자가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생산능력은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투자하면 얼마나 생산능력이 향상되는지, 자금은 얼마나 필요한지 등등에 대해 상당한 자료가 있을 텐데 이런 부분을 언젠가는 공개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내놓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지만 국가 특급기업소들의 도약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순간에는 공개해야 할 데이터다. 북한 공장‧기업소의 방문객에 따르면, 혹은 북한의 조선중앙TV의 보도를 보면 그 내부에 그래프도 있고 표도 있다.
즉 자신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통계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경제 관련 통계를 서서히 공개하길 원할 텐데 남북 간 경제협력과 교류 과정에서 미리 다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탈북자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경제상황 관측을 그동안 주로 했던 곳은 정부산하 통일연구원이다. 여기서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광범위하게 채록해서 연구에 활용했다. 편견과 경향성 있는 진술이라도 정보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는 이를 계량화한다. 전에도 계량화는 했는데 여기는 여론조사 결과를 지속적으로 추계하여 계량화한다. 그런데 이건 경제적 수치와 일치하기 어렵다. 탈북자들의 편견과 경향성뿐만 아니라 질문도 다소 문제가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북한에 살 때 자본주의를 좋아했냐, 사회주의를 좋아했냐는 설문이 있는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정의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가능한가. 이건 이미 추상화된 질문이다.
북한의 탄소하나와 주체철
프레시안 : 장기적으로 봤을 때 외국은 석유화학이라면 북한은 석탄화학 공업 체제를 가지고 있고('탄소하나')와 코크스를 사용하지 않는 독자적 제철공법('주체철')을 북한 특유의 자력갱생 기반으로 추구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그 성공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고 있는 것같다. 이에 대한 의견은?
유영구 : 과거에는 북한이 과학에 기초한 자력갱생 토대가 약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주체철과 관련된 금속공업 부문에 대해 내각 총리들이 현장 지도 및 관련 발언을 많이 했다. 만약 주체철이나 탄소하나 화학공업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이의 추진이 사실상 사기라면, 국가의 내각 총리가 현장에 가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겠나.
북한은 총리가 한 번 왔다 가면 그 내용을 가지고 기업소의 전체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하급단위까지 협의하고 회의한다. 그런데 이게 거짓말이고 사기라면 회의가 불가능할 것이다. 거짓말이고 사기라면 중앙당에 바로 '신소' 가 들어간다.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 중 하나가 직접 현지지도를 늘리고 있고 신소를 많이 받고 있다는 측면이다. 과장하거나 속이지 말라는 지시도 있고, 대응 방법도 다 공개하고 솔직하게 어려우면 어렵다고 이야기 하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북한이 올해 국가투자를 제일 늘리려는 것이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인데 그걸 다 사기라고 간주할 수 있겠나.
프레시안 : 주체철이나 탄소하나는 상용화된 것인가?
유영구 : 아직 상용화된 단계는 아니고 개발 단계에 있다. 한 군데에서 100% 완성된 것은 아니고, 예를 들어 연합기업소에서 한 가지 기술을 개발하면 다른 연합기업소에서 받아들여서 자기들 스타일로 또 개발한다.
현재는 이러한 실험이 확대되고 있고 부분 시험가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성과가 산업현장에서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2021~25년)이 끝난 뒤에도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무인화, 자동화 기계 설비에도 국가적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무인화‧자동화와 유연생산체계에 투자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에는 규모가 작은 공장들이 대단히 많은 것 같다. 남한은 규모가 굉장히 큰 극소수 공장이 경제를 이끌어 가는 것과 대조된다.
유영구 : 북한에는 우선 1급기업소부터 5급까지 공장의 급수가 정해져 있는데 1급이나 특급처럼 중앙기업소들은 크다. 그런데 지방에 있는 산업공장, 그러니까 209개 군에 각 군마다 지방 산업공장이 20개 쯤 있으니까 약 4000개 정도가 흩어져 있으니까 많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은 처음부터 지방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인민들의 소비품은 다 지방 공장에서 만든다. 중앙 경공업 공장, 예를 들면 평양의 류원 신발공장 같은 곳은 규모가 큰 편이고 여기서 만드는 물건은 품질이 좋기 때문에 전국에 보낸다. 대신 지방 산업 공장은 품질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해당 지역에서 부족한 수요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은 연합기업소 체제를 만들었는데 이는 큰 공장 하나에 여러 새끼 공장들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연합기업소에 중간재를 공급한다든가 여러 기능을 맡은 공장들은 위계질서로 나눠져 있다. 연합기업소 밑에 하부 기업소들이 많기 때문에 한 지역에 공장 하나가 전부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흩어진 인근에 있는 공장들에서 지역 또는 산업 연관성을 고려하여 연합기업소를 만든다.
장마당과 달러화의 변화
프레시안 : 2016, 2017년부터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은 장마당 경제가 매우 활성화 됐다는 것과 북한 당국의 화폐개혁이 실패하면서 달러화가 사실상 주요 거래 통화가 됐다고 전하고 있다. 달러와 장마당으로 북한 경제가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할 정도다. 그런데 현재 북한 정부는 정부 주도로 종합시장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달러와 장마당이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나?
유영구 : 소비재 부분은 당연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봐야 한다. 연도로 보자면 2004~2010년까지는 활발했지만 중간에 화폐교환이 있으면서 혼란에 빠져 달러화 경향이 더 커졌다. 그런데 그 뒤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또 물가가 안정됐다는 보고도 있다. 공급과 수요가 일정하게 균형관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탈북자들의 정보가 대부분 2017년 이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뒤로 탈북자 수가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정치적, 경제적으로 북한 경제가 안정세에 접어든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국영상점에 대해서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이 나오는 것 역시 상품 공급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공업 분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에 실물 공급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국영상점망을 정비해 사회주의의 스타일에 맞게 국영상점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는 것이다.
국영상점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국영상점도 있고 종합시장에서 국영상점적 기능을 높이는 방식도 있다. 지금 종합시장에서는 개인들이 와서 판매와 구입을 하는데 여기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거나 가격과 판매물건의 종류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영상점과 종합시장을 점차 활성화하다보면 장마당 기능은 저절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만 달러 부분은 판단하기 어렵다. 화폐교환을 하면서 달러화(dollarization) 경향이 심화된 것은 맞다. 북한의 원화가 구매력 및 가치 축적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북한 원화에 대한 기능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어서 달러에 대해서도 유입이 많이 안 될 것이라고 보는데, 2017년 이후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다. 달러화 때문에 오히려 경제 안정이 이뤄졌다는 분석이 있긴 한데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북한 당국 입장에서 보자면 달러를 어떻게 해서든지 상업은행으로 유입시켜서 그걸 가지고 다시 수출입에 써서 석유, 식량, 첨단공장설비의 부속품 등 국가적으로 가장 긴요한 부분의 물자를 수입해오고 싶을 것이다. 그게 국가경제적 차원의 요구에는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달러에 대해 가장 유리한 환율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북한은 이중 환율이라 시장과 은행 환율의 차이가 현격히 나는데, 금융당국이 이 격차를 줄여가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2017년 이후는 탈북자가 현저히 줄고 있어서 자료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지금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북한뉴스사이트에서 보도하는 물가동향이 있긴 한데 예전에는 중국을 거쳐서 정보가 정기적으로 들어왔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정보를 어떻게 유입하는지 모르겠다.
프레시안 : 중국이나 베트남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세계 시장에 편입됐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과 대립이라는 대외조건이 있기 때문에 이같은 예측을 한 것인가?
아니면 조건이 좋아지면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가게 되는 것인가? 대외적 조건이 좋아져도 북한은 계속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집할 것으로 보는지? 구소련 사례를 보자면 이미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영구 : 북한은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는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계획과 시장의 공존을 섬세하게 배워 나가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시장신호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걸 해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시장신호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가격을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공급의 신호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의 공장 기업소들이 대부분 국영이라서 계획경제 틀에 있지만 원자재 수급의 경우 급할 때 시장의 신세를 지도록 돼있는 구조다. 여기서 시장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상품-화폐의 형태적 이용이라면서 이론적으로 시장을 활용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인정 안했는데, 지금은 공장 기업소가 실제로 시장 신세를 지도록 돼 있다. 그러면 이건 계획과 시장의 공존이다. 북한도 시장과의 공존을 통해서 계획적 시장의 작동 원리를 배우는 중이다.
다만 시장 쪽의 의존도가 높으니까 균형을 잡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계획과 시장의 공존을 깨려는, 즉 전면적인 계획경제는 아니다. 시장은 실제로 존재하고 기능도 많이 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와는 달리 주식 시장, 자본 시장, 노동 시장, 이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들을 시장에 맡기는 것은 아니긴 하다. 그리고 북한 경제당국은 '시장'을 허용하면서도 '시장경제'는 아니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우리도 자산불평등 때문에 소득불평등이 오고 그래서 세금과 토지 공개념 문제가 나오고 있듯이 북한도 토지는 생산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에 따라 공개념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사회주의적 소유가 중심이고 개인소유가 적다보니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걸 회복하기 위해 공장 기업소 간에 인센티브의 차등을 두는, 일한 만큼 벌도록 하고 번 만큼 쓰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시스템의 부작용을 치유하는 과정은 각각 다르다. 사회주의도 치유 과정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그 사이의 중간지점에 있는데, 북한에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중국이나 베트남은 미국과 화해해서 해외 자본이 들어올 수 있었고 화교 자본이나 베트남계 해외동포 자본도 있었지만 북한은 그런 것에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시장경제의 도입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진정으로 도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바뀌려면 정세가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유지되는 조건이면 어렵다. 북한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한다.
미국이 북한을 옭아매는 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안보적 위협이 높아질 수 있다. 그걸 우리가 감당할 수 있냐의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우리 자본시장에는 전 세계의 자본이 다 들어와 있다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의 고립압살정책의 유지나 강화로 인해 극단적인 위협을 선택하게 하는 것보다 현명한 방법, 즉 민족이 공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방법을 찾으려면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와서 생긴 변화를 유의미하게 보고 여기에 맞게 우리도 대책을 수립하고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이 올 수도 있다.
참고로 해외 자본과 관련해 재밌는 것이 북한이 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당 규약에 해외 동포들이 조국의 통일발전과 융성번영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해외동포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내용이 나오면 부속되는 법률 등이 따라 나오게 된다.
북한의 변화에 맞춰 남한도 변해야
프레시안 : 북한의 변화가 결국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 텐데, 이를 위해 경제학자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유영구 : 우선 남한에서 북한 경제를 다루는 분들이 경제학 전공인데 대부분 이론보다 계량경제학이 많을 것이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경제철학, 경제이론, 경제정책이나 제도사, 실물경제 그 중에 어느 것을 전공했을 텐데 경제이론이나 경제철학 하는 분은 많지 않다. 대부분 현실 경제를 다루는 분이 많으니까.
거시경제를 하더라도 대체로 국가 재정 정책이라든가 국제경제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 경제의 정책 방향을 어떻게 할지 등의 연구가 많았다. 이들은 북한 경제에 대해서 경제학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 나온 잡지나 계간지를 보면 북한식으로 써 있구나, 이게 재미가 없구나 하면서 구체적 함의를 잘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여기 경제학과는 너무 다르니까. 그게 하나의 어려움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 경제 다룰 때도 이쪽의 접근 방식으로 다루니까 저쪽의 접근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 북한 경제를 우리식으로 재단하지 말고, 그들이 생각하고 운영하는 방식대로, 즉 북한 것을 북한식으로 한 번 봐주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의 이론, 정책, 제도, 실물경제 등을 북한식에 근거하여 봐주고 그러고 나서 우리와 차이를 보고 또 그렇게 본 다음에 평가해도 늦지 않다.
우리식으로만 재단하면 후에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해 나갈 때 상당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북쪽도 수많은 경제학자가 존재하고 연구하고 논문도 나오고 있다. 사회주의 경제에서 출발한 나라이기 때문에 경제에 관심이 많다. 주체경제학이라는 이름하에 나름대로 경제학이 상당히 발전돼 있다.
또 하나는 이론적 부분, 철학과 관련한 부분인데 자본주의 경제학도 국가마다 수용방식이 다양하듯이 사회주의 경제학에도 구소련식도 있고 중국식도 있고 북한식도 있는 것 아니겠나. 현 시점에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북한식만 남았으니까 북한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그걸 하지 않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하던 국가들이 붕괴된 것을 기준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궤멸될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학문적 태도는 아니다.
또 학자들이 시야를 넓혀야 일반인들의 인식이 넓어지고, 일반인의 인식이 넓어져야 정책을 푸는 당국 역시 다양한 정책을 펼칠 수 있다.
프레시안 : 북한만 이상한 나라라는 인식이 큰 것 같긴 하다.
유영구 : 어려운 문제인데, 이 선이 돌파되려면 남북 경제가 실제로 협력 관계에 들어서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들어가 특별 개발구가 됐든 특정 지역이 됐든 어떤 식으로든 개발을 위해 손을 맞잡아보면, 북한 경제가 나름대로 질서와 발전 방법론을 갖고 있고 인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지,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때서야 알게 되면 너무 늦고 고치기도 어렵다. 지금 이 상태로 지금처럼 북한 경제를 연구하면 나중에 남북관계 열려서 기업들이 진출했을 때 지금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것이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어렵다는 얘기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획하고 있는 경제발전 구상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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